
한국영화 흥행 거품이었다? :::

양유창 | 2002년 03월 20일 조회 10818
언론들이 기사거리가 없는 것일까? 최근 한국영화의 흥행이 약간 부진해지기 시작하자 신문에 이어 방송에서도 '한국영화 흥행 거품이었나'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한국 언론의 냄비근성은 작은 현상 하나까지도 무조건 확대해석하려고 난리다. 잘 끓는 냄비 앞에 두고 '불 꺼진거 아냐?'라고 소리치는 격이다.
최근에 개봉하고 있는 한국영화의 라인업을 보면 알겠지만, 2월말부터 3월에 개봉한 영화들은 그다지 흥행이 잘 될 만한 영화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흥행 보다는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완성도에 중점을 둔 영화들이었다. 이달 말 개봉예정인 한국영화들까지 난 모든 영화를 봤는데 <버스, 정류장>을 제외하고 대부분 만족스러운 작품들이었다. 작년 조폭 신드롬이 사회적인 욕을 먹은데 대해 영화계는 즉각 조폭 소재를 줄임으로 화답했다. 작은 영화 지원과 내실화 다지기 등에 대해 내부적으로 계속해서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고,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보인다. 이것이 어떻게 거품일 수 있단 말인가?
강한섭 교수 같은 사람이 한국영화 거품일 수 있다 라고 문제제기 하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과 삼성경제연구소가 단지 박스 오피스 추세만을 근거로 제시하는 견해는 선뜻 동의할 수 없다. 마치 조금만 잘 되면 '대박'이고, 조금만 잘 안되도 '거품'이라고 확대해석하는 꼴이다.
중앙일보는 한 기사에서 <고양이를 부탁해>에 대해 쪽박 찬 영화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어떻게 같은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는 "한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좋아한" 영화로 소재될 수 있는건지 궁금하다. 또, SBS는 보도에서 기존 감독들의 차기작이 흥행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 그들의 행로가 불투명하다는 투의 언급을 하였는데, 내 생각에는 홍상수나 박찬욱 감독이 결코 흥행 때문에 영화를 만들지 못할 위치에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한국영화가 무조건 계속 잘 된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한 달도 안되는 기간 동안 상업적인 영화가 등장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산업적 지형도를 속단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올해 한국영화의 키워드인 SF는 이제 겨우 첫 단추를 꿰었을 뿐이며, 흥행에 기대를 걸고 있는 <예스터데이>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개봉은 각각 6월과 8월로 예정되어 있는 상태다.
주지하다시피 3,4월은 비수기다. 작년 3월 31일 <친구>는 정말 하나의 현상이었을 뿐이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 연속 흥행 신기록 작성을 해온 한국영화 입장에서 2002년을 맞아 조바심이 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한 편의 영화가 8백만명씩 관객을 쓸어가는 현상 보다는 수 편의 영화가 골고루 적당히 흥행에 성공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바람직하다. 계속되는 한국영화를 위해 '한 편'에서보다는 '여러 편'에서 다양하게 더 배워갈 점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컨텐츠는 많을수록, 다양할수록, 질이 높을수록 좋다.
그나저나 언론은 왜 이러한 기사들을 유포시키는 것일까? 여러 국제 영화제들에 진출하고 있는 한국영화, <실미도>에 투자한 소니픽처스 같은 기사들보다는 한국영화 거품론이 더 흥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돈 받고 기사 써준 스포츠 신문 기자들의 그동안 융숭했던 대접기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비판적 기사로 눈을 돌린 까닭일까?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기사가 될 수 없어도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사람이 개를 물 생각도 안하는데 물 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쓰면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언론에 대해 한 마디 더 하자면, 최근 대선후보 여론조사결과를 SBS가 발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 있다. 조사결과 노무현이 이회창을 10%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는데, SBS는 이것이 기존 조사와 너무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방송을 연기하다가 결국 불방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튿날 중앙일보의 같은 조사에서 노무현은 이회창을 무려 22% 이상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결과적으로 SBS가 과민반응을 한 꼴이다. 자신이 시행한 여론조사조차 믿지 못한다면 도대체 조사는 왜 했는지 모르겠다.
노무현이 갑작스럽게 인기를 얻는 것에 대해 나는 바라던 바이면서도 내심 조금 불안하다. 이 인기를 계속 유지하는 길목에는 언론사들의 방해공작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대선은 짧은 승부라 언론에서 작정하고 뒤집어 씌운다면 그 후보는 치명타를 입을 수 밖에 없다. 나중에 그게 사실로 밝혀지건 밝혀지지 않건 간에 이미 여론은 언론에 의해 조작된 뒤인 것이다. 지난 1997년 대선에서 이인제가 조중동에게 당했던 것처럼. 오직 기득권과 손잡지 않고 꿋꿋하게 기존의 지지자를 배신하지 않는 길 만이 노무현을 승자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아, 어쩌면 언론사들은 개를 물 생각조차 없는데, 미리 걱정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제발 이 걱정이 기우였으면 좋겠다. 해마다 이맘때면 대학교의 학생회는 반복적으로 등록금투쟁, 제2캠퍼스 문제, 자판기가격 등등을 가지고 학생들을 선도한다. 그런데 묻고 싶다. 도대체 그런 것들이 이 땅에서 언론의 기득권을 줄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인가? 또, 선거를 통해 호전적인 부패 세력을 몰아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가? 역대 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은 25% 정도로 저조한 편이었다. 20대의 투표참여야 말로 바로 그들을 위해 필요한 일임을 자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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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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