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쥐> 박찬욱의 취향에 매혹될 것인가 그를 놓아줄 것인가 :::

양유창 | 2009년 05월 03일 조회 6313
일단 <박쥐>를 본 소감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아트하우스 영화에 왜 관객들이 많이 몰릴까?" 하는 것이었다. 예술영화 전용 소극장에서 상영하기에 딱 알맞은 정도의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의 관객동원을 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마치 컴백한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 음반이 차트 1위를 석권하고, 예술영화가 한국에서 부활하던 90년대 중반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코아아트홀에서 10만 관객을 동원하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도 <박쥐>는 곧 매니아 취향 영화로 슬슬 잊혀지고 소문은 잦아들겠지만, 한편으로는 이 영화를 칭송하는 팬들은 박찬욱이 계속해서 스스로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에 고무될 것이다.
<박쥐>에서 부족한 것은 사람의 심리에 관한 것이다. 영화를 기술적인 영화와 심리적인 영화로 나눌 수 있다면 박찬욱은 사실 기술적인 영화감독이지 심리를 다루는 데 능숙한 감독은 아니다. 사실 따져보면 <복수는 나의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등에서 관객을 매혹시킨 것은 스타일리쉬한 화면과 기발한 트릭, 그리고 자극적인 소재 자체이지 어떤 감정적인 이입이나 심리적인 동요가 아니었다. 박찬욱 감독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가 그리는 인물들은 상당히 경직되어 있다. 사건의 인과관계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마치 그 인과관계를 위해 모든 성격들이 맞춰져 있는 듯 보인다.
<박쥐>에서도 그 단점은 드러난다. 송강호와 김옥빈이 신하균을 죽이고 난 뒤에 그들은 악몽에 시달린다. 다소 과장되게 영화적인 트릭을 사용하여 돌덩이를 안은 신하균이 이곳저곳에서 등장하여 두 남녀를 놀래킨다. 이 부분은 분명히 인과관계상으로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장면은 관객에게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일 것이다. 머리로는 납득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 것이다. 둘이 남편을 죽이고난 뒤 이제 욕망이 극에 달할 것 같은데 갑자기 죄책감에 시달리는 과정이 지나치게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찬욱은 예나 지금이나 극단으로 몰고가지만 새로운 것이 없는 극단주의는 지루하다. 가령 <친절한 금자씨>의 후반부에서 이미 인물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고문하는 장면을 찍었던 박찬욱이다. 그 장면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박쥐>의 형광등 가득한 집 안 풍경은 무척 낯익을 것이다. 오달수와 송영창 등 박찬욱 영화의 단골 배우들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더 익숙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흰 색 바탕에 빨간색 피를 쏟는 장면은 <쓰리 몬스터>나 김지운의 <커밍 아웃>에서 봤던 장면이다. 기술적으로도 새로운 것은 없는데 스토리상으로도 마지막 장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장면들이 러닝타임을 지나간다. 마치 서울에서 부산을 가기 위해 대전을 거쳐야하는 것과 같은 뻔한 루트를 통과하는 장면들이지만 그래서 새롭지 않은 대전역은 지루한 것이다.
이쯤에서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을 밝혀야겠다. 필자는 박찬욱 감독의 많은 팬들과 마찬가지로 박찬욱의 영화적 취향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한계는 역시 <올드보이>의 기발한 트릭과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판타지 정도까지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영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다. 첫 장면은 마치 장 르느와르 감독 영화의 도입부를 연상시키는 장면인데, 병원에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이 벽에 비추어지고 그 사이에서 문을 열고 신부 복장의 송강호가 입장한다. 어둠이 벽을 타고 음습하는 가운데 나뭇가지가 마치 인간의 마음처럼 흔들리는 듯 보이는 이 장면은 그 상징적인 의미 뿐 아니라 미장센 자체에서 마치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을 보는 듯 회화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후 영화는 자크 리베트의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와 르네 끌레망의 <태양은 가득히>처럼 배 안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F.W.무르나우의 <뱀파이어>처럼 흡혈귀의 잔혹한 모습이 펼쳐지다가 드디어 이 영화에서 가장 황홀한 장면인 송강호와 김옥빈의 말없는 슬랩스틱으로 나아간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을 맞기 위해 자동차 위에 앉은 두 남녀의 모습은 마치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의 젤소미나와 잠파노를 떠오르게 한다. 이처럼 대부분 유럽의 고전영화에서 차용한 것 같은 장면들 때문에 <박쥐>는 컬러영화지만 마치 흑백영화를 본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하는 영화다.
애초에 영화의 원작이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깽]이라고 밝히고 있는 만큼 <박쥐>는 마르셀 까르네의 <테레즈 라깽> 만큼이나 철저하게 고전 프랑스영화와 유사한 화면을 선보이고 있다. 모든 화면을 흑백으로 바꾸고 등장인물을 프랑스인으로 바꾸면 옛 프랑스영화라고 해도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유럽 관객들을 배려한 탓에 몇몇 부분은 한국 관객으로서 낯설게 느껴진다. 필자는 아직도 <박쥐>에 마작이 등장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왜 한국영화에서 마작을 등장시켰을까? 중국인은 한 명도 나오지 않고 필리핀 여자만 양념으로 한 명 등장할 뿐인데 말이다.
시종일관 무게에 짓눌리고 쾌쾌한 냄새에 질식할 법한 이 영화는 다행스럽게도 박찬욱의 장난끼어린 유머감각 덕분에 곳곳에서 숨쉴 공간을 찾는다. 아마도 여기가 김기덕과 박찬욱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일 것이다. 둘 다 굉장히 상징적인 영화를 만들고 둘 다 괴팍한 소재를 가지고 무척이나 진지해보이는 영화를 만들지만 결국 유머감각의 차이가 흥행스코어와 평판에서 두 감독의 평가를 극단으로 갈리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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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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