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리더> 인생을 바꾸어놓은 한여름의 로맨스 :::

양유창 | 2009년 04월 25일 조회 5881
이번 아카데미 영화상의 결정은 참 이해가 안된다. <밀크>는 보지 못했지만 <슬럼독 밀리어네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프로스트 vs 닉슨> 그리고 <더 리더> 중에서 한 편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더 리더>를 선택하겠다. 그만큼 이처럼 강한 울림이 있는 영화를 최근에 만나기 힘들었다.
제목이 문제다. 특히 한글 제목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는 90년대 프랑스영화 <책 읽어주는 여자>가 떠오르니까. 필자도 미우-미우가 나왔던 약간 야하기도 하고 실험적이기도 했던 그 영화가 오버랩되면서 비슷한 영화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혀 다른 영화다. 케이트 윈슬렛이 비슷하게 야하게 나온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한 중년 남자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도입부는 한 소년과 그보다 스무살은 더 많아보이는 한 여자의 정사 장면이다. 호기심 가득한 소년과 삶에 지쳐보이는 여자의 로맨스는 스웨덴 영화 <아름다운 청춘>이나 이탈리아 영화 <말레나>, 혹은 한국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보았던 것처럼 성적 판타지에 다름 아니다. 소년은 "날 사랑하느냐"고 묻고 여자는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무표정하게 "응" 하고 대답할 뿐이다. 소년은 학교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를 찾아오고 여자도 소년을 기다린다. 소년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전에 여자는 소년에게 제안을 한다. 책을 읽어달라고.
<오디세이> <개와 함께 다니는 여자> <채털리 부인의 사랑> <전쟁과 평화> 등 많은 책들이 읽혀지고 그해 여름을 소년와 여자는 함께 보낸다. 하지만 격정적인 로맨스는 늘 그렇듯이 시간과 함께 시들어가고 소년은 다시 학교에 돌아가고 싶어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두 사람이 자전거 여행을 갔을 때이다. 부쩍 나이 들어보이는 케이트 윈슬렛이 성당에 앉아 성가대의 노래를 듣고 있다. 소년은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하지만 여자는 눈물을 흘린다. 이 사랑이 지속될 수 없음을 아는 눈물, 혹은 잃어버린 젊음과 흘러간 세월에 대한 눈물이 화사한 햇살 속에 빛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 장면은 나찌 시절의 아우슈비츠의 기억과 관련된 다른 의미를 상징하지만 그 자체로서도 멋진 장면이기도 하다.
소년시절 한여름에 만났던 한 여자와의 첫 경험.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그 여자는 소년의 인생을 바꿔놓았고 마찬가지로 그 여자의 인생에서도 그 시절은 가장 소중했던 순간으로 남았다. 두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그 한 순간, 한여름의 로맨스. 바로 그렇기에 영화 도입부의 정사장면들이 그렇게 뜨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원작 소설은 나찌 시절 비자발적인 나찌 협력자들을 용서할 수 있는지 또 미화해도 되느냐는 문제를 놓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동안 유태인을 동정하는 너무 많은 영화들에 오히려 거부감마저 드는 탓에 지금은 약간 해묵은 논쟁처럼 보이기도 한다.
케이트 윈슬렛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두번째 전성기를 맞았는데 그 결정에는 토를 달기 힘들다. <빌리 엘리어트>로 찬사를 받으며 명성을 얻었던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이번에도 미장센에 큰 공을 들이지 않고도 과묵한 스타일로 큰 울림을 주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감옥에 갇힌 그녀에게 혹은 스스로에 갇혀버린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다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감동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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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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