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 나이트> 선과 악의 경계는 어디인가 :::
양유창 | 2008년 08월 29일
조회 9601
슈퍼히어로를 심오하고 무거운 패러독스에 빠뜨린 <다크 나이트>는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열광시켰다. <다크 나이트>는 배트맨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조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 더 가까운데 조커라는 인물이 주는 무자비함, 폭력성과 호기심이 영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조커의 딜레마
두 척의 배가 있다. 시민들이 타고 있는 배와 죄수들이 타고 있는 배. 서로에게 상대방의 배를 폭파할 수 있는 기폭장치를 주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그리고 조커는 두 배를 모두 폭파할 수 있는 기폭장치를 가지고 있다. 어차피 모두들 죽을 운명이다. 조커는 이들이 서로를 죽이든 죽이지 않든 어차피 기폭장치를 누를 생각이니까.
하지만 시민들과 죄수들은 모두 기폭장치를 포기한다. 다수결에 의해서 민주적으로 포기하든 한 사람의 죄수의 생각에 의해 일방적으로 포기하든 어쨌든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기를 원한다. 어쩌면 이 부분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희망적인 부분이다. 오히려 희망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철학 서적에 단골로 등장하는 '죄수의 딜레마'가 노골적으로 등장하면서 <다크 나이트>는 좀더 묵직한 질문들을 던진다.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잔잔한 반향을 이끌어냈던 철학적 질문들을 <다크 나이트>에서는 내러티브를 끌고가는 힘으로까지 밀어붙인다.
그 질문들은 이런 것들이다.
"영웅의 등장이 사회를 더 평화롭게 만들었는가?"
"선과 악의 경계는 어디인가?"
"초법(배트맨)과 무법(조커)의 구분은 가능한가?"
"법 테두리 안에서의 선이 사라지면 세상은 누가 구원하는가?"
배트맨은 존재하는 것 만으로 광기와 혼돈의 조커를 불러온다. 그래서 시민들은 배트맨이 없었다면 범죄도 없었을 것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배트맨이 '화이트 나이트'라고 부르던 법 테두리 안에서의 영웅 하비 덴트는 조커에 의해 모든 것을 잃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투페이스가 되어버린다. 선과 악은 결국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하나의 얼굴로 합쳐지고 이런 상황을 즐기는 조커는 관객들을 향해 키득거린다. "뭐가 그리 심각한데?"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해져가고, 법의 잣대가 권력과 이익추구의 도구로 사용되며, 진지함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정의가 질서유지라는 명목으로 짓밟히는 사회. 고담시는 그렇게 점점 어두워져가고 있다. 그런데 극장을 나오면서 고담시가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어두워 지기 전의 고담시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는 1930년대에 만들어졌다. 알 카포네로 대표되는 갱단이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가던 시절의 미국. 사회는 자경단을 필요로 했고 배트맨은 시민들의 열망에 부합하는 대리 자경단으로 탄생했다.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달리 외계에서 오지도 않았고 초능력도 없는 배트맨은 한 부자의 이중생활이라는 컨셉트로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다.
코믹스로 인기를 끌던 배트맨이 영화로 처음 기획된 것은 1986년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노블 [다크 나이트 리턴즈]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부터이다. 이 코믹스의 음울한 분위기와 철학적인 주제가 팀 버튼을 자극했고, 팀 버튼은 <배트맨>을 영웅신화를 비트는 엽기 환타지로 그려냈다.
그리고 그후 20년. 팀 버튼 이후 좀더 가벼운 히어로 영화로 탈색된 배트맨 시리즈를 선보이던 워너브러더스는 조엘 슈마허의 가벼운 색채를 버리고 배트맨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원작사인 DC코믹스와 손잡고 새로운 배트맨을 기획하는데 이것이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과 크리스찬 베일의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이다.
기존의 <배트맨>이 범죄가 만연하는 어두운 고담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다크 나이트>의 고담시는 아직 범죄가 만연하기 전의 평범한 미국 도시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배트맨과 조커의 모습도 굉장히 현실적이다. 브루스 웨인의 비밀 사무실 역시 고층건물 사이의 허름한 창고의 모습이고 잭 니콜슨보다 덜 분장한 히스 레저의 조커는 좀더 인간답게 보여서 역설적이게도 더 악랄하게 느껴진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조커는 은행을 털고 갱들을 협박하며 서서히 절대악과 혼돈의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한다. 악이 진화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헐리우드 영화가 이렇게까지 리얼리티를 살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배트맨의 딜레마
박쥐 옷을 입고부터 배트맨은 고뇌한다. 왜 경찰이나 검찰이 아니라 나여야 하는가. 내가 정당하다면 나는 왜 박쥐 가면을 쓰고 있는가. 나는 단지 내 부모를 죽인 사회를 위해 복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범법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저지르는 위법은 정당한가. 딜레마에 빠진 배트맨은 가면을 벗으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한 발 물러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정의의 검사 하비 덴트였다. 배트맨은 하비 덴트를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정의의 영웅은 조커에 의해 반영웅이 되어 버린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지우고 모든 것을 버려 극단이 되어버린 조커와 지킬 것이 너무 많아 아무 것도 파괴할 수 없고 조커를 죽일 수도 없는 배트맨. 그 지독한 모순.
결국 비극적인 슈퍼히어로는 결국 의도하지 않게 또하나의 악을 만들어내고 만다. 하비 덴트와 레이첼 중 한 명만 구할 수 있는 상황. 배트맨은 주저없이 레이첼을 선택하지만 그곳에 도착했을때 레이첼이 아닌 하비가 있었다. 무능한 슈퍼히어로가 구해낸 하비는 배트맨과 조커의 이중성을 얼굴 한쪽면에 각각 복제해낸다. 마치 만날 수 없는 동전의 앞뒷면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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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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