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대체 왜 국내에서는 합법적으로 비디오를 구입할 수 없는걸까? :::
양유창 | 2000년 04월 01일
조회 8589
필자가 비디오 업계와 스멀스멀 알게된 것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비디오 상점간의 거래를 보면서 타 유통과는 상당부분 '다르고', 또 그것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내 비디오 상점과 거래 이전에 필자는 개인적으로 미국의 비디오 상점에서 비디오 상품을 몇 작품 구입한 적 있다. 직접 구입할 때나 인터넷을 통할 때나 그들로부터는 항상 '고유번호'가 찍힌 제조된 '상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내 비디오 유통 시스템은 조금 다르다. 비디오 상점에 가서 알음알음 중고비디오를 구입하거나 청계천 등지에서 때묻은 다품종 소량수집된 비디오를 구입하는 것 외에는 달리 출시된 비디오를 구입할 경로가 없는 것이다.
물론 판매용 시장이 거의 없는, 즉, 사람들이 비디오를 구입할 물건으로 생각하지 않는 국내 시장의 현실을 감안하면 비디오를 구입할 수 없는 현실이 별로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현 비디오 유통 시스템에 있다. 즉, 비디오 테이프의 제작사들이 구매자들의 의사를 전혀 묻지 않고 그저 기존의 관행 방식대로 판매수량을 예상하고 상품을 생산하여 공급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부분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판매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일까? 왜 고객의 의사를 묻지 않는 걸까? 예를 들어 <러브레터>의 경우 기존의 관행대로 8만장 정도가 출시되었다. 하지만, 이 수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오히려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경우 더 심해, 적어도 12만장 정도는 출시되었어야 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작품들은 예상보다 많이 출시되어 공급과잉으로 수지를 맞추지 못하기도 한다. 제작사들이 출시량을 결정하는 기준은 단 한 가지다. "관행". 여기에는 "극장개봉작", "극장개봉흥행작" 등등의 수식어가 포함된다. 작품을 정말 원하는 관객의 입장이 아닌 관행에 의해서만 수량을 결정하고 출시해서 끼워넣기 식으로 비디오 대여점에 판매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방식을 "푸쉬(PUSH)"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이는 미국과 같은 국가의 "풀(PULL)" 시스템과 대비되는 전근대적인 방식이다. 즉,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향해 그저 밀기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국내 비디오 유통시장은 항상 제작 물량의 반품율과 씨름하기 마련이었고,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70%라는 엄청난 소모전을 치루게 되었다. 이 반품들은 다시 다음 작품들에 복제되어 재출시되는 경향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비디오 제작사들은 일반적으로 비디오 대여점에 비디오를 판매하면서 여러 가지 편법을 동원한다. 첫째, 제작사들은 반품율을 줄이고자 하는 자구책으로 작품을 대량으로 묶어버린다. 예를 들어 <러브레터>를 5장만 구매하려는 대여점주에게 2장을 더 사라고 권한 후 그에 대한 보상책으로 3장을 무료로 밀어주는 것이다. 결국 대여점주는 총 10장을 소유하는 셈이고, 한달이 지난 후 무료로 준 3장은 반품을 시키게 된다. 물론 대금결제는 7장뿐.
둘째, 제작사들은 비인기 비디오를 유명상품에 끼워넣는다. 예를 들어 <주유소 습격사건>를 구입하려 할 때 잘 구입하지 않는 B, C급 영화들을 함께 끼워파는 것이다. 이럴 경우 대여점주는 <주유소 습격사건>이라는 대박을 구매하지 않고서는 고객을 불러들일 수 없으므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B, C급 작품을 함께 구매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잘 나가는 작품곁에 덤으로 끼워파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합법적 가격할인 즉, '꺽기'라는 것이 있다. 보통 비디오들은 열흘이 지나면 중고가 돼 가격이 떨어지는데, 이 점을 이용한 대형 비디오점들은 다량의 테이프를 구매하는 조건으로 월말 결제시 구입한 가격을 인하해 대금 결제를 한다. 이 경우는 대형 비디오 샵들의 일방적인 횡포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에 부화뇌동하는 제작사들의 경우에도 결코 손해는 아니다. 왜냐하면 비록 자신들의 이윤이 얼마간 줄어들지라도 반품율이 그만큼 줄어든다면 오히려 더 많은 이윤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 세 가지 관행은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 시정이 불가능할 만큼 현 비디오시장에 깊숙히 뿌리박혀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비디오시장의 규모는 세계 10위권에 들 정도로 성장해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이 단지 규모의 경제로만 머물러 있어서는 곤란하다. 앞서도 지적했다시피 가장 큰 문제점은 역시 제작사와 비디오 대여점의 불법거래로 인한 "푸쉬" 시스템이다.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업계에 자리잡지 않는 한, 비디오 시장도, 비디오를 기반으로 한 DVD 및 뉴미디어 시장도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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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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