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츄리안 캔디데이트> 비현실적 음모

Imitation of Life

<맨츄리안 캔디데이트> 비현실적 음모 :::

양유창 | 2005년 03월 13일
조회 7699

대통령 선거가 열립니다.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에 당당하게 맞설 후보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사병으로 걸프전에 참전, 영웅으로 돌아온 남자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숭배하고 그의 애국심을 찬양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 자신도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 비밀을 아는 자들은 그를 이용해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걸까요? 그는 누구이며 그가 치르고 있는 이 선거는 누구를 위한 선거일까요?

1962년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의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양들의 침묵>, <필라델피아>로 유명한 조나단 드미 감독의 작품입니다. 스탠리 도넌의 <샤레이드>를 리메이크한 <찰리의 진실> 이후 연속해서 고전을 리메이크하고 있는데요. 이번 작품은 악평을 받았던 <찰리의 진실> 보다는 다행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1991년 걸프전입니다. 존 프랑켄하이머의 작품이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했다면 이번에는 걸프전을 배경으로 한 거대한 기업과 그에 결탁한 정치권의 음모가 영화의 핵심입니다. 감독은 조지 부시의 집권 이후 안보를 중시하는 국가가 된 미국의 상황을 극단적으로 설정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인간의 기억까지 조작하는 유전자공학과 전쟁산업, 그리고 대통령 선거의 음모가 결합돼 흥미로운 스릴러가 탄생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소 비현실적인 음모론을 너무 진중하게 다룬 탓일까요? 60년대 다양한 음모론과 첩보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는 이런 소재가 의미심장하게 보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다소 터무니없게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음모론을 파헤치는 영화에 늘 등장하는 '나약한 주인공-결정적 증인-증인의 죽음-주인공의 문제해결-반전'으로 이어지는 플롯은 한편으로 식상해 보이지만, 다행히 TV 화면과 떠들석한 정치 분위기를 긴박하게 활용해 긴장감을 잃지는 않고 있습니다.

한편, 이 영화의 소재를 고려해보면 조나단 드미 보다는 오히려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연출을 맡았더라면 더 그럴듯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1983년 <데드 존>이라는 영화에서 대통령 선거와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가볍지만 쿨하게 풀어낸 적이 있기 때문이죠.

다시 영화로 돌아와볼까요? 제목으로도 사용된 '맨츄리안 글로벌'이라는 회사는 전쟁 물자를 납품하는 거대 글로벌 기업입니다. 스스로 EU보다 더 돈이 많다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한 상원의원과 결탁해 대통령 선거를 치루려고 합니다. 자기 혼자 7%의 득표율 정도는 거뜬히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 당찬 상원의원은 메릴 스트립이 맡아 연기하고 있는데요. 이번 선거의 후보로 나선 걸프전의 영웅이 바로 메릴 스트립의 아들 레이먼드 쇼(리브 슈라이버 분)입니다.

영화는 한 흑인 육군 소령의 시점에서 이 선거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덴젤 워싱턴이 연기한 마르코 소령은 걸프전 당시 레이먼드 쇼의 상사였고, 어느날 당시 왕따였던 레이먼드가 영웅으로 부상한 점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됩니다. 당시 부대원 누구도 그의 행적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않았고, 또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실제 경험이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영화는 기억과 인간 두뇌에 관한 무자비한 폭력, 그리고 도망자처럼 쫓기면서 이 모든 음모를 파헤치는 마르코 소령의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음모의 배경에는 아들에 대한 비뚤어진 모정이 있고, 또 현대 금권정치의 거대한 탐욕이 또아리를 틀고 있습니다. 다른 감독이라면 기억과 정치라는 소재를 통해 좀더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을 수도 있겠지만, 조나단 드미는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적당히 짜임새 있는 스릴러는 결국 파국의 결말을 준비하고 누구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현실은 마지막 반전을 남겨둔채 막을 내립니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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