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미도>에 헌정된 제25회 청룡영화상 :::
양유창 | 2004년 11월 30일
조회 8325
<실미도>가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등을 거머쥐며 25회를 맞은 올해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막을 내렸습니다. <실미도>와 함께 관객 1천만 시대를 연 <태극기 휘날리며>는 장동건의 남우주연상과 홍경표의 촬영상, 정도안의 기술상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가장 논란을 낳은 부분은 이나영이 받은 여우주연상 부문이었고요. 그외 수상결과에 대해서는 네티즌들 사이에 큰 이견이 없는 듯합니다.
인터넷에서는 김민정의 도발적인 드레스와 김혜수의 독특한 헤어스타일 정도가 회자되고 있고, 정준호의 썰렁한 멘트가 어떻게 시상식 분위기를 돋구었는지 정도가 화제거리입니다.
청룡영화상은 영화계에서 꽤 권위있는 상이기는 하지만, <애니깽> 이후 심사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대종상의 몰락을 거울삼아 오히려 지나치게 안정화되고 또 대중적인 작품 선정 경향을 보이고 있는 상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니 당연히 관객이 많이 든 영화를 후보에 올리고 상도 주는 것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만, 한편에서는 올해의 좋은 영화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이 영화상을 주최하는 조선일보사의 성향에서 영향받은 것일 수도 있겠는데요. 과연 청룡영화상의 심사위원 11명 중에는 정중헌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박용재 스포츠조선 문화연예부장이 포함되어 수상에 영향을 끼칩니다.
이번주말에 진행되는 '제3회 대한민국 영화대상'과 후보작들을 한 번 비교해볼까요? 후보작 선정 기간이 달라 <올드보이>나 <선택> <스캔들> 같은 경우에는 작년 청룡영화상에 출품된 영화들입니다만, 올해 극장 개봉한 가장 중요한 한국영화 중 한편이었던 <송환>은 청룡영화상에서는 누락되어 있습니다.
또 송일곤 감독의 독특한 심리스릴러 <거미숲>이나 공수창 감독의 섬뜩한 전쟁 공포영화 <알포인트>, 박흥식 감독의 환타지 드라마 <인어공주>, 김기덕 감독의 최고 걸작이라 불리는 <빈집>, 류승완 감독의 경쾌한 도시무협 <아라한 - 장풍대작전> 등 올해 한국영화계에서 중요했던 몇몇 작품들은 청룡영화상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조선일보사를 이유로 2002년 청룡영화상 출품을 거부한 사건은 당시 시상식이 대통령 선거기간 중이었던 관계로 조용히 잊혀졌지만(당시 청룡영화상 작품상을 수상한 <취화선>이 MBC 영화대상 출품을 거부한 것과 함께 여러 정치적인 해석이 오가기도 했죠), 사실 조선일보사에 대한 극단적인 이미지는 그 회사가 1990년 청룡영화상을 17년만에 부활시켜 여기까지 끌고오는데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상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의 수상결과를 하나씩 살펴보죠. <실미도>가 올해 가장 중요한 영화 중 한편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작품이었는지는 의문이 남는군요. 특히 작년 <올드보이>의 아성을 깨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작품상을 준 청룡영화상이었기에 <실미도>를 선택한 것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여기 이번 영화상의 심사표를 한 번 볼까요? 심사위원들 중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강한섭 교수, 김유진 감독, 윤정희 배우가 <실미도>에 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조선일보사의 두 인사가 <실미도>를 밀었습니다. <말죽거리 잔혹사>나 <인어공주>가 모두 2표씩을 얻고 있었음을 볼 때 조선일보사의 두 인사가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었다는 말도 되겠지요.
감독상 역시 <실미도>의 강우석 감독에게 돌아갔습니다. <빈집>의 김기덕 감독에 대한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최근 CJ엔터테인먼트와의 불협화음으로 영화계 파워 1인자의 자리를 위협당하고 있는 강우석 감독에 대한 응원으로 봐줄 수는 있겠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심사위원들 모두 김기덕을 무시하고 강우석과 강제규에게 표를 몰아주었다는 것입니다. 강제규 감독은 <쉬리>로 이미 한 번 감독상을 수상했으니 이번에는 강우석에게 표가 간 것 같네요.
남우주연상은 <태극기 휘날리며>의 장동건입니다. 그동안 다소 뻣뻣한 이미지를 벗고 철저히 망가진 모습으로 열연한 것이 많은 점수를 얻은 것 같습니다. <효자동 이발사>의 송강호나 모처럼 후보에 오른 <주홍글씨>의 한석규도 2%가 부족했죠.
드디어 여우주연상 부문입니다. 이나영은 확실히 작품을 잘 고르는 배우이긴 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 모두 확실하게 아우라를 갖고 있는 작품이지요. <네 멋대로 해라>와 <아일랜드>의 팬들은 분명히 이나영을 숭배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는 여자>의 이나영은 쉽게 수긍하기 힘듭니다. 나쁘진 않았지만 지극히 평범했다고 할까요? 오히려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가장 물오른 코믹 연기를 선보인 김하늘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남우조연상은 <범죄의 재구성>의 백윤식과 <실미도>의 정재영의 경합이었습니다. 둘 다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기 때문에 덧붙일 말이 없군요. 다만 백윤식은 <지구를 지켜라!>에서, 정재영은 <귀여워>에서 훨씬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는 것은 언급하고 싶습니다.
여우조연상은 <범죄의 재구성>의 염정아가 수상했습니다. 팜므파탈의 가능성을 보여준 염정아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인어공주>의 고두심이 연륜을 바탕으로 뱃살연기를 과감하게 선보인 것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결과입니다.
신인상을 수상한 <빈집>의 재희와 <가족>의 수애, 그리고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 감독에 대해서는 아마 누구도 이견을 달지 못할 것입니다. 모두 최고의 재능을 갖춘 영화인들입니다.
또, 헐리웃 서스펜스를 변형한 숨막히는 각본의 <범죄의 재구성>, 아마도 한국영화사상 가장 깨끗한 화면과 실감나는 전쟁 화면을 선보인 <태극기 휘날리며>는 각각 각본상과 촬영상 기술상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영화들이었죠.
음악상을 수상한 <꽃피는 봄이오면>의 조성우는 한국 영화음악계의 가장 행복한 이름 중 하나고, 미술상은 <말죽거리 잔혹사>에 돌아갔지만 <얼굴없는 미녀>의 황량하면서 유머있는 세트도 언급할 만합니다.
그외 인기상과 한국영화 최고흥행상이 있는데요. 사실 이 상들은 왜주는지 잘 모르겠군요. 청룡영화상이 1990년 부활할 때 한국영화의 부흥을 노리고 신설한 상이지만, 한국영화가 충분히 인기 있는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옥상옥이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차라리 인기스타들에 가려져 소외받고 있는 여러 스탭들을 위한 상이 부족한 것이 아쉽습니다. 편집상, 음향상, 조명상, 단편영화상, 다큐멘터리상, 애니메이션상 등등 한국영화를 이끌어오는데 공헌한 숨은 일꾼들을 위한 격려가 더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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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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