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공포는 가슴으로부터 온다 :::
양유창 | 2004년 08월 10일
조회 8103
본디 선혈낭자한 장면에서도 눈 한 번 꿈쩍 않는 영화감상 스타일(?)을 갖고 있는 덕분에 가끔 저와 함께 영화를 보는 친구들은 오히려 제게 더 놀라곤 합니다. 한 번은 <스피시즈>라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데 당시에는 그렇게 음향으로 놀래키는 영화가 익숙치 않았던지라 관객들이 꽤나 소리를 질러댔지요. 저와 함께 영화를 본 친구도 스스로 강심장이라고 자부하던 친구였는데 괴물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면에서 꿈쩍도 않는 제게 혀를 내둘렀습니다.
하지만 저도 어릴 적에는 TV에서 귀신만 나와도 이불 뒤집어 쓰고 잠도 제대로 못자던 아이였습니다. 셜록 홈즈의 [흡혈귀]라는 책을 집으면서도 단지 제목이 '흡혈귀'인 바람에 손을 벌벌 떨던 기억도 있지요. 한마디로 성장해오면서 영상물을 너무 많이 접한 탓에 왠만한 영상기법에는 속아넘어가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어떤 때에는 감독이 의도한 바에 너무 속아주지 않는 제가 좀 얄밉기까지 합니다만...
<좀비오>에서 머리를 잘라내는 장면이나 <배드 테이스트>에서 머리 뚜껑(?)만 잘라내고 두개골을 파먹는 장면, <톡식 어벤저>에서 사람 내장을 빼내 줄넘기(?)하는 장면, <네크로맨틱>에서 몸통에 다른 얼굴을 붙여 섹스하는 장면 등등. 처음에는 소문만 듣고 두 눈 뜨고 보기 힘들 것 같았던 장면을 노컷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보면서 어느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런 장면을 구상하느라 얼마나 고심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헬레이저>의 핀헤드,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크루거,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스크림>의 비명 마스크, <에이리언>의 괴물 에이리언, <사탄의 인형>의 처키, 그리고 수많은 드라큐라, 늑대인간, 좀비, 흡혈귀 등등. <프랑켄슈타인>을 먼 친척으로 둔 공포영화의 괴물들이 스크린을 피바다로 물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스케치북이 낙서되어지고 북북 찢겨져 나갔을까요?
그러나, 저도 한 사람의 관객인지라 가끔 무서운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무섭게 보이려고 만든 영화보다는 서서히 다가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스멀스멀 다가올 때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서스펜스란 드러나는 5분을 위해 30분을 끌고가는 힘이라고 했지요. 무언가 나타날 법한 것이 드러나지 않는 순간, 심리적인 초조함이 계속되는 순간이 사실 가장 무섭습니다. 공포영화의 마스터피스라 불리는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은 이러한 순간을 가장 완벽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존 카펜터의 <할로윈>과 <괴물>이란 영화를 비교해보십시오. <할로윈>도 물론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괴물>에 비해 공포감이 덜했습니다. 무참하게 난도질하는 슬래셔 영화인 <할로윈>에 비해 <괴물>은 폐쇄공간에서 심리적인 공포로 관객들을 사로잡습니다. 남극이라는 극한의 곳에서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과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서서히 아드레날린을 증가시킵니다. 정작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은 많지 않지만, 사실 괴물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서운 것이지 괴물의 생김새는 별로 중요한게 아니죠.
한편 <좀비오>의 감독 스튜어트 고든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지라가 도쿄를 부수는 것보다 손가락을 면도날로 자르는 장면이 더 무섭다"라고요. 즉, 자신의 경험에서 생생한 것들이 아주 개인적인 공포를 불러낼 때 그 공포감은 극에 달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제가 지금까지 가장 무섭게 본 영화들은 <큐어>(구로사와 기요시) <디 아더스>(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새>(알프레드 히치콕) 등입니다. 긴장을 풀게 만들고 있다가 서서히 공포효과를 증폭시키는 이 영화들은 영화에 집중해야 그 재미를 더욱 느낄 수 있습니다.
같은 좀비 영화이지만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밤> 시리즈가 최근 개봉한 <새벽의 저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보다 좀비들이 더 인간과 가까운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또 같은 흡혈귀 영화이지만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같은 영화보다 아벨 페라라의 <어딕션>이 더 무서운 것은 이 영화가 뱀파이어들의 진지한 존재의식까지 그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 영겁의 굴레에서 고통받는 장면은 인간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가지 버전으로 각각 50년대, 70년대, 90년대에 만들어진 <신체 강탈자들의 침입>을 비교해보세요. 50년대 영화에서 공산주의자를 상징했던 '그들'은 단지 주인공의 악몽일 뿐이었지만, 70년대 영화에서는 가족을 파괴하지요. 90년대 영화에서 군대라는 갇힌 조직에서 벌어지는 공포보다는 70년대 영화가 더 피부에 와닿을 만큼 무서웠습니다.
아쉬운 것은 찾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한국영화 중에서는 그다지 무섭다고 생각할 만한 영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 공포영화는 사운드로 놀래키는 '유령의집' 영화라 실망스럽고요. 또 여고생들의 감정싸움에만 너무 소재가 국한되어 있어 안타깝습니다. 60~70년대에 한을 품고 죽은 처녀귀신이 등장하는 사극이 계속해서 제작되었던 것과 비슷한 유행인지도 모르겠군요.
|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
|
국가별 검색
가격대별 검색
국가별 검색
가격대별 검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