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드보이> 판도라의 상자 :::
양유창 | 2003년 11월 13일
조회 8959
보랏빛 네모난 상자. 그 상자를 열기 전까지 복수는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았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자 비밀이 밝혀지고 비극이 시작된다. 아아, 몬스터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았어야 했다. 옛날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마저 괴로워했던 감당하기 힘든 진실 앞에서 처량한 개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면 말이다.
올드보이 -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라
박찬욱 감독은 이제 어떤 경지에 올라선 것만 같다. 관용어구 중 혀를 내두른다는 표현은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놀라움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이 영화는 가히 혀를 내두를 만하다. 아니, 내두른 혀를 누가 잘라가버려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잘 만들었다.
<복수는 나의 것>이 지나치게 한쪽에 치우친 영화라면, <올드보이>는 균형추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선 영화다. 여전히 파워풀하고 기이하면서도 좀더 친절하고 위트까지 있다. 마치 절정기의 샘 페킨파 영화를 보는 것 같은데, 페킨파처럼 야성적이면서도 마틴 스콜세지처럼 웰메이드 필름을 지향하고 있다. 최민식이 감옥 아닌 감옥에서 체력단련을 하는 장면은 <케이프 피어>의 로버트 드 니로와 겹치고 총을 쏜 뒤 옷에 피가 묻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유지태는 하비 케이틀이 갱스터 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와 겹친다. <케이프 피어>는 원작이 있는 영화고, 하비 케이틀 역시 수많은 영화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변주한 배우다. 박찬욱은 이 영화에서 그가 알고 있는 캐릭터를 차용하고, 일본 만화를 제멋대로 비틀고 뒤집어놓았다. 그 방식이 마틴 스콜세지와 너무 흡사하다.
박찬욱은 한국의 마틴 스콜세지가 되려는걸까? 가능하다. 대박 영화 하나 없는 스콜세지보다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불후의 초절정 흥행대박을 맛본 박찬욱이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은 있다. 스콜세지가 항상 종교적인 관점에서 구원을 찾아 헤매는 감독이라면 박찬욱은 감정의 변화를 강조한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인과관계가 부족한 감정만으로 알베르 까뮈적인 결말을 선보인 것처럼 <올드보이>는 결정적인 부분의 아이러니를 최면으로 메꾼다.
 <올드보이>는 스토리를 미리 알면 반전의 묘미가 떨어지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자세한 언급은 삼가도록 하겠다. 사실 기자시사회가 끝난 뒤 제작사에서 메일을 보내왔다. 결말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어조였다.
15년 동안 한 남자를 가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영화 중반부에 과거 어린시절 장면이 등장하면서 다소 어정쩡한 뉘앙스를 풍기지만, 결국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내러티브는 15년이라는 세월을 잊을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을 갖게 된다. 단순하게 복수치정극인줄 알았던 이야기가 신화의 영역으로 이어지고 심리극으로 진화한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굉장히 물리적으로 한껏 멋을 부린다.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감독, 과장되고 우스꽝스럽지만 폭발력이 있는 배우와 댄디하면서도 예의 그 유약함을 많이 극복한 또다른 배우, 여기에 조영욱의 멋진 음악 앙상블, 비밀이 밝혀지는 시간을 심장박동에 맞춰 연출해내는 꼼꼼한 촬영이 한 데 뭉쳐 괴물 한 편을 만들어냈다. 15년이란 세월이 한 남자에게서 몬스터의 속성을 끌어내는 시간이었다면 이 과정을 지켜보게되는 2시간은 자기 앞에 놓인 괴물을 마주보게 되는 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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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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