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헐크> 분노와 자유 :::
양유창 | 2003년 07월 07일
조회 10636
이안(A)의 <헐크>는 마블 코믹스의 원작과도, 또 만화를 TV 시리즈로 만든 루 페리뇨의 [두 얼굴의 사나이]와도 다르다. 이것은 이안이 창조해낸 새로운 세계다. <스파이더맨>, <데어데블>처럼 정의의 사도를 외치던 기존의 만화 캐릭터 영화와 전혀 다른, 자신의 두 얼굴에 대해 괴로워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의 괴물이 등장한다.
만화적 형식, 인간적인 캐릭터
<쎄븐>, <파이트 클럽> 이후 최고의 오프닝씬이 2시간 16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실존적 프랑켄슈타인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영화의 소재인 유전자 실험을 근접촬영하고 빠른 비주얼로 편집한 화면 구석구석에 크레딧을 첨가한 이 오프닝은 영화로 몰입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오프닝 크레딧을 없애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버린 최근 헐리우드에 경종을 울려준다.
영화 <헐크>는 원작이 만화임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만화의 형식을 빌려왔다. 화면을 칸칸 분할하고 글자도 그 칸에 새겨넣는다. 하지만, 만화적 형식과 달리 그 안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만화 보다는 우리 일상에 존재할 것 같은 젊은이다. 순수한 열정을 지닌 두 명의 과학자는 그들의 과거를 질문하고, 부모가 물려준 유산 때문에 괴로움에 처한다. 부모와의 갈등은 동양에서 서양으로 건너간 이안이 줄곧 다루던 주제였으며, 그래서 이안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즉, <헐크>에서 이안은 만화적 감수성을 영화 형식으로 표현하면서도 그 내용에서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드라마를 만들었다. 동성애자인 남자와 부모간의 갈등을 코믹하게 다룬 <결혼 피로연>,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거의 부녀간의 관계로 승화시킨 <와호장룡>처럼 <헐크>에서의 갈등도 주인공 브루스와 친아버지 간에 발생한다. 원작에서 거의 강조되지 않았던 친아버지가 특수한 능력을 갖고(별개의 캐릭터였던 업서빙맨이 아버지 캐릭터와 합성되었다) 브루스를 통제하려 한다. 그래서 이윽고 <엑스맨 2>의 자비에 박사처럼 선한 능력이 악으로 돌변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극단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안은 헐리우드 안에서 100%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유니버설 픽처스가 올해 최고의 예산인 1억 6천만 달러를 투자한 영화이기도 한 것이다. <와호장룡>으로 북미에서 1억달러의 수입을 올린 이안은 이 영화의 감독직을 수락하면서 헐크에 무명배우를 캐스팅하는 등 자신만의 스타일을 접목하였지만, 헐리우드의 고전적인 서사구조를 버릴 수는 없었다. 즉, 이 영화에서 부자는 화해하지 않는다. 선은 선이고 악은 악일 뿐이다. 한쪽이 두 손 들거나 죽어가면서 용서하는 그런 미덕은 권선징악의 서사구조에서 존재할 틈이 없다. 그래서일까? 이안의 전작들과 달리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다소 생뚱맞게 보이기까지 한다.
이안은 헐리우드로 간 이후 지금까지 <센스, 센서빌리티>, <라이드 위드 데블>, <아이스 스톰> 같은 미국적인 혹은 서양적인 영화를 만드는데 거리낌 없었으며, 때로는 시침 뚝 떼고 <와호장룡> 같은 영화로 동양인으로 돌아간 것 같은 변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드라마를 만드는데 재능이 있는 이 감독은 오우삼처럼 매니아를 거느린 것은 아니지만, 말 수 적은 작은 체구에 헐리우드가 무시 못하게 하는 내공을 차곡차곡 쌓아가는데 어느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만드는 영화마다 일정 정도의 완성도를 약속하는 그는 그의 영화 속에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낼 줄도 안다. 헐리우드에서 동양인 이안이 걸어온 길은 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드물다. 헐리우드의 이방인이 지금 미국적인 영화를 자신의 방법으로 찍고 있는 중이다. 때로는 타협하면서 때로는 밖으로 빠져나와 한 템포 숨을 쉬면서... 아마도 그 정점에 <헐크>가 놓일 것 같다.(이안은 <터미네이터 3>를 포기하고 <헐크>를 맡았다)
프랑켄슈타인의 또다른 변형
 '헐크'는 프랑켄슈타인의 만화 버전이다. 19세기말 프랑켄슈타인이 소설로 억압받은 인간의 심리를 대변했다면, 20세기 중반, 헐크는 만화로 '분노'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메리 셸리에 의해 창조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당시 남성들의 세계에 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마블 코믹스의 1960년대 전성기를 이끈 스탠 리가 62년 발표한 캐릭터 헐크는 당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를 휩쓸었던 전쟁반대와 히피문화, 자연에 대한 동경 및 원자폭탄에 대한 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을 융합하며 탄생하였다.
<엑스맨>, <스파이더맨>, <데어데블>, <블레이드>, <스폰>, <판타스틱 소녀백서>, <헐크> 등 마블 코믹스 원작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영웅은 영웅인데 무언가 결핍된 듯한 영웅, 현실에 존재할 것만 같은 친근함 등이 그것이다. 유전자 변형이나 커다란 외상, 어릴적 트라우마 등의 요인으로 주인공은 특수한 능력을 갖게 되지만, 결국 그 능력 때문에 대인관계가 사라지고 절대고독에 빠진다. 괴물의 고독은 빌 콘돈 감독이 98년작 <갓 앤 몬스터>에서 이미 감동적으로 다룬 바 있다. 그 영화에 묘사되고 있는 제임스 훼일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괴물은 "친구 좋아"라는 한 마디만을 반복해서 되뇌는데 그 대사는 마치 암흑 속 절규처럼 들린다.
이처럼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헐크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창조주인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데이빗 배너는 엄청난 일을 해내고도 결국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창조물에게 버림받는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자신과 똑같은 여자 괴물을 갖고 싶어하고, 헐크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작아질 준비가 되어 있다. 또, 이들은 닥치는 대로 부술 정도로 자기 통제력이 약하다.
영화 <헐크>는 원작 만화와도 다르고 TV 시리즈와도 조금 다르다. 원작 만화에서 헐크는 회색 괴물이었으며, 우주로 날아가 여러 행성을 돌아다녔다. TV 시리즈에서 헐크의 크기는 인간이 보디빌딩을 해서 조금 커진 정도였으며, 괴력도 만화의 상상력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 <헐크>는 만화나 TV 시리즈보다 진지하다. 그 이유를 나는 다음 두 가지에서 찾고 싶다. 첫째, 쫄쫄이 팬티나 <슈렉>을 연상시키는 초록색 피부처럼 황당해 보일 수 있는 헐크라는 캐릭터를 관객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이안은 사실적인 드라마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안 이전에 <헐크>의 감독을 맡기로 했던 사람은 <주만지>의 조 존스턴이었으며, 그는 헐크의 액션에 치중하는 각본으로 유니버설 스튜디오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사정이 그러하니, 스토리가 살아있는 블록버스터를 헐리우드가 이안에게 요구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둘째, 아마도 이 영화가 [프랑켄슈타인]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헐크의 역할모델이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눈보라 속을 외롭게 홀로 걸어가는 장면은 헐크가 <와호장룡>의 주윤발처럼 유유히 광활한 산을 점프하는 것과 겹친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켄슈타인]을 인조 괴물이 등장하는 자극적이고 오싹한 소설로만 오해했던 것처럼 <헐크> 역시 단순히 화가 나면 괴물이 되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제작진은 대변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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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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