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구야, 나의 지구를 지켜줘!
글: 양유창
2003년 04월 06일
다음주에 개봉하는 다른 영화 이야기로 시작해볼까요? <레옹 2>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조금 이상했지만 정말로 뤽 베송이 장 르노와 함께 다시 레옹을 찍은 것인가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와사비 - 레옹 파트 2>라는 제목으로 개봉할 프랑스-일본 합작 영화는 레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 장 르노는 킬러가 아닌 형사로 나오고 그에게 일본인 딸이 있다는 설정이 단지 <레옹>의 킬러-소녀 관계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라면 그런 말 절대 못하겠습니다. <레옹>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아마도 이따위 영화에 이런 제목을 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영화의 수입사와 홍보사는 정말 대단한 '깡'으로 이 제목을 밀어부쳤습니다. <제5원소>를 개봉할 때 수입사인 삼성영상사업단이 영화를 5분 가량 삭제했다고 해서 뤽 베송이 기자회견 취소하고 귀국한 적 있었죠? 아마 지금 뤽 베송이 <레옹 2>라는 제목을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척 궁금합니다.
정말로 여기는 허구의 세계인가 봅니다. 있지도 않은 영화 제목이 판치고, 죽지도 않은 빌 게이츠는 죽었다고 속보로 등장하고, 이미 죽은 이라크 시민들과 미-영 군인들은 죽지 않았다고 CNN에 나옵니다.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요? 정말 장국영은 죽은 것일까요? 정말 바그다드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기는 한 것일까요? <바그다드 카페>의 뚱땡이 아줌마는 아직 살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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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구, 강사장, 순이의 캐릭터가 모두 좋습니다. 상업영화에서 극단까지 밀고가는 고문장면도 잔혹하기는 하지만 마음에 듭니다. 무엇보다 병구 한 사람의 소망, 그 혼자서만 믿고 있었던 것이 실현되는 그 진실함이 좋습니다. <판타스틱 소녀백서>에서 영화 초반부터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노인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 결국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떠납니다. 저는 그 장면을 무척 좋아했는데,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오랫동안 꿈꾸던 것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위해 존재하는 영화에는 진정성이 있습니다.
영화를 안보신 분들에게 방해되지 않는 정도로만 말한다면, 결국 병구는 지구를 지켜내지 못합니다. 한국영화사상 비운의 캐릭터로 사라져갑니다. 아마도 그 모든 것이 외계인과 소통하려했던 그의 집착 탓이었겠죠. 역사적으로 외계인과 교신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들 일찍 죽어갔습니다. 요즘 같은 때에는 조지 부시라는 사람이 외계인이 보낸 첩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미국인들을 세뇌하고 있다고 말이죠. 그렇다면 그에 맞서는 우리는 모두 일찍 죽어갈까요? 조지 부시가 말끝마다 내뱉는 'God'이라는 단어가 결국 자신의 상층부를 지칭하는 신호가 아닐까 의심해봅니다. 언젠가 그 외계인놈의 정체가 밝혀질 겁니다. 우리가 외계인에게 정복당하기 전에 그의 정체를 밝혀내고 지구를 구해야 합니다. 병구가 사라진 지금, 그 일을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요? 물파스 하나로 조지 부시의 능력을 초토화시킬 수 있을까요?
병구가 그립습니다. 가난과 고통의 구렁텅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병구가 그립습니다. 온갖 핍박과 박해 속에서 그는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사고를 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사회가 그에게 던져준 '악의 재생산'에 다름아니었기에 아무도 병구를 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지금 현실 혹은 그 핍진성의 허구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량학살 앞에서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사상자, 사망자, 전사자들은 이제 단지 숫자에 불과할 정도로 무감각해지진 않았나요? 지구를 정복하려는 외계인의 무차별 학살 앞에서 우리는 공범자가 되었습니다. 아, 잔인한 4월. 작년 12월 촛불시위에 나왔던 5만명의 시민들은 지금 다들 어디에 계신가요? 살랑살랑 봄바람에 벚꽃구경은 빼놓지 않고 잘 다녀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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