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과외하기> 비만아에게 드리는 초콜릿
글: 양유창
2003년 02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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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엽기적인 그녀>가 얼마나 잘 만든 영화였는지. 오, 곽재용 감독이시여 죄송합니다. <엽기적인 그녀> 개봉 당시 그 영화를 폄하하는 잘못을 범했나이다. 물론 그 영화 역시 현실로 안주하는 보수적인 여성관으로 귀착하는 중대한 패착을 보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짜임새에 있어서 보면 볼수록 다듬어진 모습이 발견되는 영화였다.
하지만,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어떤가. 개인기에만 의지하는 영화다. 김하늘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해서 김하늘의 클로즈업으로 끝난다. 권상우의 후까시로 시작해서 권상우의 후까시로 매듭짓는다. 으레 그러려니 하는 방식에 이 얘기 저 얘기 뒤섞여서 정신없이 떠들다가 영화 참 길다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넘버 3>에서 재미있게 써먹었던 4자성어 풀이로 되새김질해보자면 '중구난방'이 이 영화의 실패요인이다.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갈래갈래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학교에서 짱먹는 지훈과 한다면 하는 명랑 여대생 수완의 이야기가 어느새 고아원을 들락거리더니 갑자기 러브스토리로 바뀐다. 일시적 재미를 위해 고용된 사소한 장면과 등장인물이 큰 줄거리를 가로막는다. 한 번 막힌 길은 다시 발견되지 않고 허공에 맴돌 뿐이다.
영화의 초반부는 그럭저럭 괜찮다. <엽기적인 그녀> 만큼은 아니지만, 김하늘의 상상장면 같은 부분은 통통 튄다. 칭찬에 수줍은 듯 우쭐한 표정은 김하늘의 전매특허처럼 잘 어울리고, 권상우와 티격태격하며 쏘아붙이는 대사들도 살살 웃어줄 만하다. 권상우는 사실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가끔 무표정하게 돌아서는 장면은 제임스 딘을 연상시킬 정도로 반항아 이미지가 닮았다.
싸움은 잘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남자와 평범하고 발랄한 여대생이 만났다. 서로의 개성을 부각시키면서 도입부부터 시선을 끄는 전략은 그러나 중반부에서 두 캐릭터를 융합시키는 과정에서 마찰음을 내기 시작한다. 두 캐릭터가 양극으로 너무 튀기 때문에 왜 갑자기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고 전화를 하게 되는지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지훈이 왜 유학을 가지 않으려고 하는지, 지훈이 왜 피만 보면 열을 받는지, 수완이 그렇게 싫어하던 지훈에게 과외가 끝난 뒤에도 왜 연락을 하는지 설명되지 않고 있어 감정의 흐름이 이어지지 않고 붕 뜨는 느낌이다.
후반부로 가면서 영화는 지나치게 '볼거리'를 의식한다. 김하늘의 댄스쇼, 각종 싸움꾼들과의 결투 등으로 영화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다. 여기에 신부가 되어버린 수완의 첫사랑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한 영화에서 모든 것을 다 하려는 신인감독의 욕심은 영화를 산으로 끌고가 버렸다. <두사부일체>가 조폭과 학교 코미디라는 진부한 소재주의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이지만 교육의 문제를 다루어 관객을 끌어모았고, <엽기적인 그녀>가 두 사람의 관계를 과거-현재-미래로 나누어 배열하면서 엽기적인 만남을 '인연'으로 승화시켜 사랑받은 반면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재미있는 커플의 관계가 더 발전하는 것을 보기도 전에 격투기 영화로 전락해 중심을 못잡고 있다. 별볼일 없는 이런 액션영화는 이전에 수도 없이 많았다.
<품행제로> 같은 썩 괜찮은 학원물이 80년대를 배경으로 했다면,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요즘 아이들 이야기를 발랄하게 그릴 거라 기대했지만, 결과는 역부족이어서 안타깝다. 이 영화를 물고기처럼 살아 숨쉬게 하려면 후반부 10여분을 잘라내고 편집을 다시 해야 할 것이다.
PS) 중반부에 수완의 첫사랑이 신문을 집으려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신문은 '한겨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도 엄정화는 감우성에게 한겨레를 들고 있으라고 시켰다. 영화인들은 신문이 들어갈 자리에 한겨레를 넣는걸 선호하는 것 같은데, 아마도 영화인들의 개혁적인 성향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해본다. 물론 이 영화와 관계 없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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