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itation of Life

<재밌는 영화> 소문난 잔치, 연설이 너무 길다


글: 양유창
2002년 04월 04일

과연 소문난 잔치답게 <재밌는 영화> 기자시사회에는 입구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시네마서비스와 친분 있는 합동영화사의 서울극장에서 진행된 이날 시사회에는 기자와 영화인 뿐만 아니라 김정은 팬클럽까지 참석하였는데 아마도 영화를 띄우기 위한 홍보사측의 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이 장내 분위기를 띄우는 데에는 별로 성공한 것 같지 않다. 박장대소하는 웃음보다는 "아! 이건 저 영화였지" 하며 확인하는 정도의 가벼운 웃음이 더 많았던 탓이다.

'이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도와준 한국영화에 감사드린다'는 문구로 시작된 영화는 정말 많은 한국영화를 패러디하고 있다. "숟가락은 왜 ㄷ 받침이죠?"라는 <번지점프를 하다>의 대사 한 마디 패러디부터 영화의 전체적인 골격을 빌려온 <쉬리>까지. 심지어 <서편제>의 패러디도 있으니 좀 '떴다' 싶은 영화들은 장르 불문하고 죄다 들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간을 뛰어넘어 무선통신으로 사랑을 나누는 <동감>의 남녀가 남북 대치상황의 두 정상으로 바뀌어 처음 '접속'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이들은 한 번 약속이 어긋난 이후 남북정상회담을 감행하고 월드컵 남북단일팀을 만드는데 합의한다. <쉬리>에서 빌려온 영화의 전체 줄기는 북한의 특수부대 용사를 일본의 테러분자(?)로 바꾸었고, 이들은 한일 월드컵 기념 축하공연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으로 투입된다. 김정은, 김수로는 각각 김윤진, 최민식이 되어 남한에서 접선하고, 이를 저지하는 경찰들인 임원희, 서태화한석규, 송강호가 되어 추격전을 벌인다. 그러나 물론 이들이 단지 정해진 이런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임원희와 서태화는 <친구>의 유오성장동건이 되어 시다바리를 들먹거리고, 쫓기던 김수로는 <박하사탕>의 설경구가 되어 "나 돌아버리겠네"라고 외친다. 무엇보다 첫 스크린 데뷔로 관심을 모았던 김정은은 특유의 다양한 애드립으로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부터 <주유소 습격사건>의 이성재까지를 무리 없이 소화해낸다.

이밖에 위에서 열거되지 않은 수많은 한국영화들이 <재밌는 영화> 속에 녹아 있다. 한국 최초의 패러디 영화라는 타이틀답게 의욕적으로 사소한 것에까지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각본을 쓴 손재곤은 단편 <너무 많이 본 사나이>로 독특한 패러디 유머를 선보인 적 있고, 제작자인 김익상은 영화 마니아를 위한 책을 낸 적이 있을 정도라 제작과정에서 이들이 얼마나 깔깔대며 웃으면서 작업 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너무 의욕이 과해서였을까? 영화는 다소 지루하다. 그리고, 때로 유치하다. 나는 '재미있는 코미디'는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슬쩍슬쩍 재미있는 장면을 집어넣거나 혹은 아예 슬랩스틱으로 재치있게 웃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장면을 기대하기 그리 쉽지 않았다. 어중간하게 둘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임원희의 습관인 장풍 날리는 것이 엄중한 회의실에서 화면 구석에 슬쩍 비춰지는 것에 나는 많이 웃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습관이 클라이막스에 제 몫을 하는 것에도 나는 잘된 설정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KP 특공대가 빨간 레이저를 쏘며 수색하는 장면에서 레이저가 부러지는 것을 정면으로 보여주는 것이나 임원희와 김정은이 복도에서 슬쩍 스치는 장면에서 <접속> 포스터가 나부끼는 것 등은 많이 아쉬웠다. 차라리 삼엄한 경비 속에서 총부리가 쇠파이프에 걸려 팅소리를 내는 것이 화면 구석에 슬쩍 보여지거나 <접속>의 포스터를 직접 집어넣는 대신 CD 한 장을 슬쩍 떨어뜨리는 것이 더 좋았을 뻔했다. 또, <반칙왕>의 데스마스크를 쓴 서태화가 마지막 장면에 어설프게 등장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 부분은 레슬링을 동원한 좀더 슬랩스틱한 원초적 패러디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지나친 패러디로 관객을 지치게 만드는 과유불급 이외에 이 영화의 또다른 약점은 '메시지를 주려는 과잉된 의도'에 있다. 아마도 제작진은 '아무런 내용도 없이 웃기기만 하려는 영화'라는 비난을 들을까 우려했던 것 같다. 한일관계에 관한 김정은의 장황한 연설과 남북정상의 언약식까지 과잉주입된 메시지는 순간적으로 영화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김정은의 연설이 최민식의 격앙된 연설을 패러디할 의도였다면, 좀더 유머를 섞었어야 했고, 그렇지 않았다면 차라리 <주유소 습격사건>의 이성재처럼 단순하게 가거나 <킬러들의 수다>처럼 꺼벙하게 갔어야 했다. 너무 직설적이면서도 오히려 모순되게도 그 안에 특별히 주장하는 메시지가 없기 때문에 영화에 무게를 주려는 의도는 실패했다. 마찬가지로 성당에서의 언약식 역시 시도는 재미있었으나 너무 오래 끄는 바람에 역효과를 본 경우다. 패러디 영화는 어차피 감정이입은 포기하고 가는 영화다. 따라서 마지막까지 관객을 붙잡아 두려는 시도보다는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게 좋다. 물론 그렇게 실제로 김정일과 김대중이 다시 만난다면 좋긴 하겠지만.

2시간 가량의 영화는 대체로 너무 길다는 인상을 준다. 정신 없이 이 영화 저 영화를 왔다갔다하는 탓이다. 그러나, 부유해진 한국영화의 상징으로서 이 영화가 수행하고 있는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다. 보는 이에게 배부르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다만 배부르다는 느낌을 기분 좋게 받기에 이 소문난 잔치의 초청자는 너무 연설이 길다.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늘어놓으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입맛이 사라지거나 체하기 마련이다. 잔치의 연설은 짧고 깔끔하게 그저 '맛있게 먹고 기분 좋게 돌아가시라' 정도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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