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itation of Life

<해리포터> 과연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인가?


글: 양유창
2001년 12월 25일

아이들과 영화를 보러가기 전에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열기가 국내에서도 뜨겁다. 비단 소설과 영화 뿐만 아니라 장난감, 게임, 아이들의 생활습관 등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여러 언론과 기업가, 정치가들은 이 영화의 상업적인 성공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것들이 헐리우드식 매체융합정책과 영국문화의 산물이고 따라서 우리 컨텐츠산업도 역시 이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개발한 컨텐츠를 다양하게 써먹을 수 있는 역동성을 확보하고 우리 고유의 문화를 상업화하는 전략이 급선무이고 이를 위해서는 '해리포터'를 배워야 한단다. 이러한 칭찬 일색의 분위기에 반해 '해리포터'의 세상접수에 대한 비판적인 움직임이라고는 그저 아이들이 '해리포터'에 집착한 나머지 주문외우기 등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고 걱정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해리포터'처럼 막강한 힘을 가진 컨텐츠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어 있다면, 그 컨텐츠의 내용이 가질 영향력 역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독일에서는 이 영화의 개봉 전에 이 영화가 '아이들에게 나쁜 정치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수입불가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리고 필자 역시 이에 동의하는 바이다. 과연 무엇이 '해리포터'를 정치적으로 불건전하게 만들었는지 살펴보자.

첫째, '해리포터'는 계급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며, 또한 한 아이의 장래 역시 자신의 집안을 배경으로 결정된다. 일부 특수한 계층의 자녀들과 마법에 대해 이미 특정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가정에서만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유일한 예외인 평민집안 출신의 헤르미온느는 그래서 돋보인다) 또,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모자'의 작위적인 결정에 의해 운명적으로 반배정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운명론은 관객의 대부분인 아이들에게 자신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전근대적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둘째, 등장인물들은 거의 모두 백인들이다. 헐리우드의 최근 추세가 다인종의 인물을 등장시켜 보편적인 선을 추구하는 결말로 나아가는 데 있다면, 영국식 암묵적 계층주의에 기초한 이 영화는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단지 런던의 기차역에서 플랫폼을 지나가는 몇 명의 흑인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며, 호그와트 학교에서 군중씬에 아주 가끔 흑인과 동양인이 보일 뿐이다. 그외 주요 등장인물들은 예외없이 백인이다. 이것은 아직 가치관의 형성이 덜 된 아이들에게 인종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 더불어 흑인이나 황색인종 아이들에게는 피부색에 대한 열등의식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영화 속의 현실과 자신의 현실이 전혀 다른 데에서 오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아이들은 환타지를 즐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그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좌절해야 할 것이다.

셋째, '해리포터'만이 특별한 아이라는 점이 위험하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해리포터를 알고 있고, 그만큼 해리포터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선택받은 마법사인 것이다. 그는 아무런 열등감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아이이다. 가정에 불화가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갈등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완벽성이 해리포터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아이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 그것은 단지 해리포터의 선천적인 능력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위험하다. 해리포터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아이기기 때문에 그의 친구는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 한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보다 잘난 아이에게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감정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넷째, 호그와트 마법학교는 '해리포터'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교칙을 마음대로 운영한다. 신입생들의 입학식날 교장은 '금지된 방'을 지정해주고 이곳에 들어갈 경우 퇴학당한다는 것을 일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그곳에 들어가는 용기를 보여주었다는 이유로 우승한다. '용기'를 강조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으나 한편으로는 '규칙'을 어겨도 용기만 있으면 괜찮다는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가치관을 아이들에게 심어줄 우려가 있다. 만약 교장이 악당이어서 그 규칙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그들의 용기가 환영받을 수 있겠으나 이 영화에서 교장은 지혜로운 마법사의 대부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작위적인 교칙운영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처럼 영국식 계층의식을 환타지로 그럴 듯하게 포장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그 뛰어난 특수효과와 문화적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영화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아이를 건전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을 지키는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 키우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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