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itation of Life

<조디악> 집요한 살인의 추억


글: 양유창
2014년 05월 05일

당신이 데이빗 핀처의 팬이고, 범인을 차근차근 추적해가는 심리극을 좋아한다면 <조디악>을 꼭 봐야합니다. 이 영화는 스릴러라기보다는 범죄추리극입니다.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2시간 40분 동안 집요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데 영화는 '미국판 <살인의 추억>'이라는 별명처럼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이 사건이 사건을 추적해온 세 남자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보여줍니다.



1968년부터 1969년 사이 샌프란시스코, 솔라노, 발레이오, 나파. 네 곳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범인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사로 편지를 보내 자신은 '조디악'이며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동봉한 암호를 신문 1면에 싣지 않으면 12명을 더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신문사의 삽화가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제이크 질렌할), 취재기자 폴 에이버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경찰관 데이빗 토스키(마크 러팔로)는 각각 자신의 방식으로 이 사건을 쫓습니다. 취재기자과 경찰은 직업이니 알겠는데 삽화가는 왜냐고요? 호기심 때문입니다. 평소에 암호해독에 관심이 많던 그는 신문사로 보내온 범인의 편지에 이끌려 그 이후 평생을 조디악의 정체를 캐내는데 바칩니다. 이 영화 역시 그가 펴낸 두 권의 책에 기초해 만들어졌습니다.



미해결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점에서,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 용의자를 눈앞에서 풀어줬다는 점에서 <조디악>과 <살인의 추억>은 닮았습니다. 그러나 <살인의 추억>이 사건의 재현과 수사과정에서의 전근대성을 강조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면 <조디악>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당시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늘어놓습니다. 누가 용의선상에 오르고 어떤 이유로 제외됐는지, 방송국에 어떤 장난전화가 걸려왔는지, 스쿨버스를 탄 어린 학생들을 죽이겠다는 협박에 시민들은 얼마나 불안해했는지, 신문은 조디악 킬러를 어떻게 유명하게 만들었는지, 각 지역 경찰은 왜 공조하지 않았는지 등 영화는 그들을 비판하기보다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담담하게 묘사하는 쪽을 택합니다. 그 과정에서 에이버리는 조디악 킬러의 표적이 됐다가 술과 마약에 빠져 은퇴하고, 토스키는 편지 위조 의혹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고, 그레이스미스는 가정이 파탄납니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아서 리 밀러(존 캐롤 린치)는 필체감정이 맞지 않아 풀려나고, 두번째 용의자 릭 역시 증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1969년에 시작한 영화는 며칠 후, 몇달 후, 몇년 후 이렇게 차근차근 시간을 늘려가며 1991년까지 진행해 오는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당시 살인사건의 생존자인 마고가 유력한 용의자였던 리의 사진을 보고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죠. 애초 22년 전에도 마고는 그 남자를 범인으로 지목했었지만 리는 필체감정을 통과하지 못해 증거가 인정되지 않았었습니다. 1991년에 경찰은 DNA 검사를 했지만 수사회의 소집 전날 리가 심장마비로 죽어버려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게 됩니다. DNA 검사는 1986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그린 <살인의 추억>에서 김상경이 미국으로 샘플까지 보내가며 꼭 하고 싶어했던 절차였죠. <살인의 추억>에서 DNA 검사 결과 범인이 아니라고 판명났던 것처럼 <조디악> 역시 자막으로 DNA 검사 결과 리의 DNA와 일치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알려줍니다.



조디악 사건은 영화 속 영화로 등장하는 <더티 해리>의 모티프가 될 정도로 당시 미국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건입니다. 잭 더 리퍼 이후 언론에 직접 편지를 보내 자신이 범인이라고 밝힌 연쇄살인범은 처음이었다고 하는군요. 데이빗 핀처는 <쎄븐>을 만들 때도 조디악 사건을 참조했었는데 <조디악>으로 이 사건을 제대로 고증해냈습니다.

긴 러닝타임과 범인이 잡히지 않는 엔딩, 수많은 인물이 복잡하게 얽힌 관계, 그리고 요즘영화 답지 않게 스피디 하지 않은 편집 등으로 인해 <조디악>은 개봉 당시 관객들의 선택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6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였지만 3천3백만 달러 정도의 수입을 거뒀을 뿐이죠. 그러나 단언컨대 <조디악>은 데이빗 핀처의 최고 작품으로 꼽을 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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