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의 01년
글: 양유창
2001년 04월 30일
지금 나는 전주에서 월요일을 보내고 있다. 4월의 마지막 날, 진달래, 벚꽃, 소나무 등이 가득한 전북대학교 교정을 지나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서 영화를 보고 고풍을 간직한 전통 건축물 사이를 걷고 일교차가 심한 저녁이 되면 고즈넉한 전주의 밤 한가운데에 있음을 느낀다. 전라북도라는 지명은 필자에게 낯선 것이지만, 전라도 여성단체니 전라북도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니 하는 것들이 그리 어색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채 식탁을 닦지 않은 먼지 낀 식당에서 비빔밥을 시켜먹고 영화의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고 - 정말 내게는 평소에 보지 못하다가 영화제에서만 만나게 되는 친구가 있다 -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아 오히려 더 어색한 전주 사람들과 마주친다. 옛날에 미나리 밭이었다는 전북대학교 옆의 고층빌딩 사이를 걸으며, 서울 외곽도시에 온 것처럼 특색없는 전주라는 도시에 편안함을 느꼈다. 대한민국 어느 도시나 특색이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전주에서 본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영화는 두 편이다. <01년>과 <인력자원부>. 모두 프랑스 영화인데, 전자는 POST68 섹션에 속해 있는 작품이고, 후자는 CINEMASCAPE에 속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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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년> |
도시 한복판 아파트에서 채소를 심고 소를 키운다.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게 되자 경영자들은 모두 자살을 하고 뉴욕의 주가는 폭락한다. 뉴욕타임즈를 읽은 뉴요커들은, "프랑스가 드디어 해냈구나!" 라고 감탄하고, 프랑스와 거래하던 아프리카인들은, "프랑스 노동자들이 더이상 무역을 하지 않겠다고 전보를 보냈어요." 라고 말하며 그들의 새로운 시도를 이야기한다. 사유재산이 없어지고 감옥에 갇힌 도둑들이 석방되고 신문이나 방송은 더이상 대통령이나 정부의 말을 앵무새처럼 전하지 않는다. 이런 세상 '01년'은 어떻게 될까? 위트있고 래디컬하고 즐거운 영화.
로랑 깡떼의 <인력자원부>는 <빌리 엘리어트>류의 이야기이지만, 그 영화보다 더 지적이고 내밀하다. 아버지가 단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회사의 인력자원부서에 취직한 아들. 넥타이 매고 사장 및 경영진과 어울려 다니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 아들 역시 아버지가 30년간 다니던 그 회사가 좋아 대학 졸업 후 견습사원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각각 노동자와 경영자측의 입장에 선 아버지와 아들. 어느날 아들은 사장의 방에 들렀다가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해고자 명단에 올려놓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갈등은 시작된다. 사실 이야기가 흥미롭다기 보다는 이 영화가 마음에 드는 것은 오히려 그 차분한 분위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빌리 엘리어트>처럼 감동을 주며 눈물 흘리게 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저 담담하게 아버지와 아들을 바라보게 하는 영화다. 대패질을 하는 아버지에게 다가와 나무판을 잡아주며 노조와 함께 파업하기를 권하는 아들. 가난한 가족에게 외식을 권하는 아들. 식당에서 계산하려는 아들에게 자신이 계산하겠다고 말하는 아버지.
조용한 마을, 소수의 친구들, 회사 사람들, 고지식한 노조위원장 아주머니, 교활하면서도 정이 많은 사장. 그리고 인상깊은 마지막 장면은 그저 파업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그리고 파업으로 자신의 화이트 컬러 인생을 유보한 아들의 착잡한 표정을 비추며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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