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about RE
글: 양유창
2000년 11월 04일
한때 내가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PC통신 모임에서 상영회를 준비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다녔고, 상영장소를 물색했다. 사람들과 만나 술을 마셨다. 시간이 가는 줄 알면서도, 밤새 술자리가 이어졌다. 한 친구는 영화에 관한 엉뚱한 궤변을 늘어놨고, 한 친구는 한국영화계에 애정이 많았다. 그밖의 다수는 그저 술을 마시거나 연애 이야기나 TV 이야기, 기타 잡동사니를 말하였다.
상영회는 10회까지 이어졌다. 거의 매달 상영회를 했고, 한 번은 프린트를 빌려다가 틀기도 했다. 나에게는 이상한 강박관념, 혹은 완벽주의 같은 게 있어서 한 번 상영회를 연 곳에서는 다시 하기 싫었다.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10군데를 돌았고, 10회의 상영회마다 자료집을 빵빵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상영회 때는 지금까지 상영회를 결산하며 하이라이트를 편집해서 보여주기까지 했다. 누가 알아주기라도 하나. 지금 생각하면 참 쏟은 정성이 대단했다.
오늘, 그때 뒤적거리던 잡지며 책이며 다시 들춰보는데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그때 영화에 사랑의 열병을 앓던 나는 아직 그대로다. 하지만, 내 손톱은 많이 무디어졌다.
나는 멋진 표현을 찾기 위해 애썼다.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멋진 표현만을 갈구했다. 사람들이 그게 솔직한 거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더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이게 솔직한 거라고 생각한다. 맞춤법 띄어쓰기 지키지 못하는 글은 글이 아니다. 작가 황순원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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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를 본 적도 없고, 그가 실제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방법도 별로 없다. 그런데 왜 나는 그를 좋아했던걸까. 그는 내가 그의 이름을 알기 전에 이미 죽었는데.. 생각해보면 단지 나는 그가 미디어에 비추어진 모습들, 사진들, 영화들 때문에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르면서 단지 환영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마치 나를 잃는 기분이다. 그는 나에게 환상에 빠지지 말라고 했었다.
어렸을 때 선생님은 일기장에 '나는' 이라고 시작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문장이 너무 딱딱해진다나. 이해가 안된다. 일기의 주체가 내가 아니면 누가 된단 말인가.
나는 고등학교 때 영화를 많이 보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말을 하고, 또 직접 만들었다. 하지만, 가끔 나는 혼란에 휩싸인다.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 걸까? 나는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걸까? 취미가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정말 이런 일을 하고 싶은가?
사실.. 전혀 다르게 살고 싶을 때가 있다. 마분지가 붙어 있는 창문이 여러 개 있다. 나는 방 안에 갇혔다. 등떠밀리듯 방에서 나가야 하는 나이가 다가오고 있다. 내가 쥔 고리를 놓지 않으면서 다른 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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