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산다> 박영규만 웃긴다
글: 양유창
2004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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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광복절특사> 등으로 한국 코미디의 새바람을 일으켰던 김상진 감독과 <불어라 봄바람> <라이터를 켜라>로 입담을 과시한 장항준이 각색을 맡아 콤비를 이룬 영화 <귀신이 산다>. 공포에 코미디를 결합한 기발한 착상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지만 완성된 영화는 한마디로 "헐리우드 키드의 섣부른 잡탕밥"에 불과한 것 같다.
어설픈 섞어찌개
전셋집을 전전하며 살아온 아버지(윤문식)는 아들에게 번듯한 집을 장만하라고 유언을 남긴다. 이에 아들(차승원)은 밤낮으로 일하며 드디어 창밖으로 바닷가가 바라다보이는 근사한 2층집을 마련하며 부푼 꿈에 젖는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귀신이 나온다고 동네에 소문이 흉흉한 그 집에 정말로 귀신이 살고 있었고 이제 차승원은 집을 나가든지 귀신과 동거를 하든지 선택해야 할 처지에 몰린 것이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귀신은 그 집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 모습을 드러낸 귀신 장서희는 차승원과 집을 둘러싼 한바탕 소동을 벌이다가 이윽고 자신의 사연을 고백하고 영화는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분위기를 급격히 전환한다.
귀신은 <아담스 패밀리>의 손가락 장난부터 <링>의 사다코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장서희가 당했던 교통사고 사망자들의 귀신은 일본영화 <원더풀 라이프>의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조한 듯하고, 장서희의 소원은 <사랑과 영혼>처럼 영매를 통해서 풀 수 있는 것이다. 귀신들의 통쾌한 경찰 습격은 <반지의 제왕> 유령들의 분위기를 따왔고, 또 영화 전반적으로 "난 귀신이 보여요"의 <식스 센스>를 들지 않더라도 <캐스퍼>나 <프라이트너즈>, <고스트 버스터즈>의 잔상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활기찬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늘어지는 편이다. 장서희의 사연이라는 것이 [전설의 고향]류의 신파 스토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영화 <편지>에서 <여친소>까지 이어졌던 그 신파 말이다.
영화의 중간에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를 <치킨 런>처럼 변형한 장면도 있는데, 재밌기는 하지만 뜬금없이 러닝타임을 채우고 있다. 또 차승원의 연기는 주성치를 닮았다. 점잖은 얼굴로 슬랩스틱을 구사하는 방식은 무술만 연마하면 빼다박은 주성치다.
이것을 관객을 위한 서비스라고 봐야할지 아니면 대충 만들었다고 봐야할지 모르겠다. 찍어놓은 분량이 너무 많았던 탓인지 후반부로 갈수록 정해진 시간을 맞추기 위한 생략이 늘어나고 편집은 너무 튄다. 최근의 한국 코미디 영화가 늘 그랬듯이 밝은 초반부에 비해 후반부에서는 드라마가 강조되는데 어색한 편집 탓에 관객은 엔딩 크레딧을 보기 위해 지루한 마지막 30분을 견뎌내야 한다.
또 컴퓨터 그래픽임이 확연히 드러나는 장면들은 눈에 많이 거슬려 안타깝다. 닭이 등장하는 장면의 CG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귀신이 차승원을 놀려줄 때 사용되는 CG는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빈약한 CG는 차승원이 보여주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잘 어울리지 않아서 어색하다. 가령 차승원이 기댄 벽에 빨간색 핏자국으로 "이 집에서 나가"라는 글자가 새겨지는데 그 글자들이 CG라는게 금방 티가 나면서 영화는 긴장감을 잃는다.
추석용 기획영화
이 영화를 가장 잘 소개한 문구는 아마도 '추석용 기획영화'라는 말일 것이다. 김상진 감독과 시나리오를 각색한 장항준 감독, 그리고 제작을 맡은 강우석 감독이 합심하여 전통적인 한국영화 히트 시즌인 추석 대목을 노리고 있는데, 영화는 이들의 기가 너무 센 탓인지 세 입김이 한곳으로 모아지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가령 차승원-손태영-장서희는 김상진식 삼각관계를 형성하는데 이들이 티격태격 나누는 대사는 장항준식이고, 여기에 강우석 스타일의 무대포적인 부동산업자와의 갈등관계가 등장한다. 김상진의 이전 영화와 비교하면 뭔가 잘 아귀가 맞지 않고 어색하다. 이들의 내공이 다 소진된걸까 아니면 서로 부딪히는걸까?
물론 적당히 넘어가기로 작정하면 차승원과 장서희의 귀신놀이에 한 번 소리 질러주고 이들의 겁먹은 표정에 또 몇 번 웃어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래도 시간이 잘 안간다는데 있다. 수준급 코미디를 계속해서 만들어온 김상진이라는 이름에 대한 기대감이 있고 또 얼마전 개봉한 <시실리 2km>가 코믹 호러에 몇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더함으로써 독특한 시도로 눈길을 끌었기 때문에 <귀신이 산다>에 대한 기대가 더 컸는지도 모른다.
여러 기존 영화의 섞어찌개, 툭툭 끊어지는 불편한 이음새, 몇가지 에피소드만 나열하는 시트콤적 구성, 코미디에서 드라마로 변질되는 전형적인 한국영화의 상투성, '코믹 공포'라는 신선함을 강조했으면서도 정작 장서희의 캐릭터를 빼고는 전혀 새로움을 찾아보기 힘든 스토리... 아마도 이것이 기획영화의 한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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