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킬러> 썰렁한 농담
글: 양유창
2004년 0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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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킬러>는 영화 보는 재미를 위한 영화입니다.
조엘 코엔의 영화가 으레 그렇듯이 그는 고전 헐리웃 영화들의 시나리오를 짜집기하고
장르영화의 공식을 버무리고 그 속에 소재와 관련한 전문적인 대사들을 덧붙여서 영화를 만듭니다.
<바톤 핑크>로 깐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후
코엔형제는 더 잘나갈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파고> 이후의 작품은 그냥 그랬습니다.
<블러드 심플>과 <아리조나 길들이기>의 재기발랄함은
<위대한 레보스키> 이후 사라졌고 회복될 줄을 모릅니다.
특히 작년 <참을 수 없는 사랑>은 끔찍했죠.
조지 클루니와 캐서린 제타-존스는 라즈베리 어워드의 최악의 황당연기상을 다툴 만했습니다.
<레이디킬러>는 다시 심기일전 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그런데 역시 많이 아쉽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톰 행크스는 지적이고 언변이 뛰어난 범죄집단의 두목입니다.
그의 부하들은 지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어설픈 전문가들이죠.
조용한 마을에 잠입한 그들은 카지노를 털 계획을 세웁니다.
카지노 지하 금고에서 가장 가까운 집에 세를 들어가고
그 집 지하에서 금고까지 땅굴을 파는 것이 이들의 목표입니다.
제목인 '레이디킬러'의 레이디는 그 집 주인인 흑인 노파를 얘기하는데,
독실한 기독교신자이고 뚱뚱하고 친절하지만 고지식한 전형적인 흑인 할머니입니다.
땅굴을 파서 금고를 훔친다는 소재는 영화 속에서 많이 봐온 것이죠.
우디 앨런의 <스몰 타임 크룩스>는 가장 기발하게 그 소재를 비틀었구요.
(이 영화에서 우디 앨런은 땅 파는 것보다 땅 파는 것을 위장하기 위해
시작한 빵가게가 더 잘되어서 그걸로 갑부가 되죠.)
<레이디킬러>도 여러가지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로 가득 차 있습니다.
1920년대 중절모를 쓰고다닐 듯한 헐리우드식 조크가 넘쳐 흐릅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그 시대착오적인 조크가 지금 이 영화와 잘 어울리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코엔 형제는 항상 아이러니한 상황에서도 씁쓸한 페이소스를 그려왔는데,
이 영화는 그냥 우스꽝스럽기만 합니다.
웃음이 넘쳐나던 장면은 아주 기발하고 산뜻했는데,
이 영화는 썰렁한 웃음 뿐입니다.
더욱이 이 영화의 황당한 결말을 보고 있으면,
실망감이 배를 더하지요.
그냥 아주 오래된 농담을 오래된 방식으로 다시 한 번 해봤구나.
이런 느낌 뿐입니다.
코엔 형제는 다시 걸작을 찍을 수 있을까요?
<바톤 핑크>에서 이상한 상자와 바닷가를 바라보던 여인이
현실과 환상을 상상속에서 구분짓게 만들던
그 숨막히게 아름다운 솜씨를 다시 보기는 힘든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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