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규와 강우석 비판
글: 양유창
2004년 0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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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요즘 이런 기획이 많다. 한국영화의 규모를 단숨에 부풀린 두 명의 강씨. 혹자는 라이벌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두 선두마차라고도 한다. 하지만 과연 이들을 대한민국의 대표 영화인이라고 부를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일까?
물론 이들이 이루어낸 성과에 대해 부정하는 바는 아니다. 한국영화 천만 관객 시대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었고 이들이 지금까지 양적 질적으로 한국영화계에 공헌한 바 크다는 것은 공연의 사실이다. 그런데 몇 가지 지적하지 않아선 안될 것들이 있다. 무조건 돈만 많이 번다고 성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강제규의 경우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 데뷔한 이후 신씨네에서 <은행나무 침대>를 만들면서 주목받게 된 강제규는 자신의 노하우와 자산을 '올인'한 <쉬리>로 한국영화 제2전성기의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몇 편의 흥행실패한 영화들을 제작한 뒤 5년만에 <태극기 휘날리며>로 다시 한 번 한국영화의 규모를 업그레이드시켜 놓았다.
그가 세운 강제규필름이라는 영화제작사는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두 편의 영화로 백억대의 돈을 벌어들였고, 강제규 감독은 국민감독으로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 그런데 <쉬리>와 <태극기> 사이의 그의 행보를 보면 불안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쉬리>로 벌어들인 유,무형의 자산으로 그는 영화사의 외형을 키웠다. 시네마서비스와 대적하기 위해 강우석과 손잡지 않고 스스로 제작자의 역할을 자처했고, 인터넷 방송국, 연예인 매니지먼트 사업 등으로 영역을 확장시켰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태극기>의 제작비를 조달하지 못해 촬영이 중단된 적 있을 정도로 강제규필름의 재정상태는 취약했다.
<단적비연수> <블루> <베사메무쵸> 등 그가 제작한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으로 망했고 비평으로도 두들겨맞았다. 또, 인터넷 전성기인 2000년에도 이례적으로 잠실 올림픽경기장에서 화려한 축하공연으로 개국한 iCBN이라는 인터넷 방송국은 무분별한 프로그램 제작으로 인한 수익구조 취약으로 결국 문을 닫았다. 이로 인해 십여명에 이르는 연예인 주주들은 고스란히 투자금을 날렸다. 연예인 주주들 대부분은 강제규필름이 새로 시작한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노하우가 부족해서인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이들을 대부분 싸이더스HQ 등 타회사로 떠나보냈다.
이렇게 문어발식으로 벌여놓은 사업이 줄줄이 실패하면서 강제규의 입지는 좁아져갔다. 다행히 <태극기 휘날리며>는 제작당시부터 언론공개를 열심히 하고 또 국민영화라는 컨셉으로 밀어부쳐 결국 성공했지만 만약 이번에도 실패했더라면 아마도 강제규 감독은 더이상 재기하기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강제규 감독의 능력에 대해 나는 높이 평가한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장면마다 정성이 꼼꼼이 들어간 영화고, 만듦새가 빼어난 영화다. 평생 백여편에 가까운 영화를 만들어온 김수용 감독이 영화의 초벌 프린트를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할 정도고 영화 홈페이지에도 만족한다는 글이 가득한 걸 보니 영화에 대한 칭찬은 마르지 않는 듯하다.
강제규필름은 <태극기>를 애초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면서도 보편적인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한국적인 것들은 죄다 삭제를 하며 보편성을 강화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영화가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지금 언론은 연일 이 영화에 대한 보도를 하고 있다. 세계를 감동시킬 것이라느니 미국 대형 영화사들이 영화의 판권을 사고 싶어서 안달이라느니 하는 기사를 센세이셔널하게 내보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한국인이 보기에 잘 만든 영화와 세계에서 먹히는 영화는 다르다. 더구나 동양인이 등장하는 영화는 솔직히 말해 서구에서 잘 팔리지 않는다. 강제규필름은 이 영화를 미국의 500개 스크린 이상에서 개봉하고 런닝개런티를 받는 것을 최소조건으로 헐리우드 메이저와 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제규필름의 의지대로 누군가가 이 영화의 판권을 사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영화는 아시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이고, 잘만하면 동양영화로 미국에서 <와호장룡> 같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영화에 관심 있을 미라맥스나 워너브러더스 등은 결코 이 영화를 우리가 본 그대로 미국에서 개봉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되었을 때 좋은 흥행성적을 거두지 못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일단 미국 영화사들은 외국영화를 수입해서 멋대로 가위질하기로 유명하다. <화산고> 같은 경우는 30분을 잘라서 선생과 제자간의 갈등을 아예 삭제하여 단순 학원액션 영화로 포장한 적도 있다. <태극기>에서도 이런 것은 예외가 아닐 것이다.
<태극기>에 가위질을 한다면 이 영화가 한국전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몇 가지 지엽적인 사례들을 아마도 모두 삭제할 것이고 결국 어느 전쟁인지를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이 영화는 정말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아류처럼 보일 것이다. 동양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와호장룡>처럼 동양적인 신비한 분위기는 전혀 없고, 성룡 같은 스타도 없으며, 다만 미국영화에서 많이 보아온 전쟁장면만 가득한데, 과연 누가 이 영화를 보러 올 것인가?
따라서 <태극기>의 미국시장 상륙에 대해서는 섣불리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 헐리우드 영화사들이 이 영화의 미주판권 뿐만 아니라 아시아 판권 전체를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는데, 언론들은 이것을 서양인이 <태극기>에 감복한 나머지 모든 판권을 사가려는 것처럼 흥분하여 보도하고 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시아에서는 장동건과 원빈이라는 스타로 충분히 흥행성적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미국 개봉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아시아 비즈니스의 확대를 위해 이 영화를 확보하려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강우석의 경우
강우석은 지난 십여년간 한국영화계의 파워 1인자로 불려왔다. 그가 설립한 강우석 프로덕션이 시네마서비스로 이름을 바꾸면서 한국 영화계를 쥐락펴락했다. 그는 지방 극장업계를 꽉 잡고 있으며, 서울극장의 곽정환 대표와 막역한 사이다. 태원엔터테인먼트, 태흥영화사, 싸이더스, 쿠앤필름, 한맥영화사, 좋은영화사 등 지금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영화사들이 모두 시네마서비스에 소속되어 파이를 키워왔거나 혹은 전적인 지원을 받았으며, 1인자 답게 수많은 추종자와 또 비판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강우석이다.
강우석을 한국 영화계의 1인자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그가 갖고 있는 배급의 힘이다. <실미도>는 사실 천만명이 관람할 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는 너무 밋밋하고 소재에 비해 풀어가는 방식은 지나치게 신파적이어서 기자시사회의 반응은 실망 그 자체였다. 그런데 강우석은 달랐다. 그는 <실미도>에 자기 회사의 모든 금액을 '올인'한 이상 가만히 예매순위가 올라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은 아니었다.
애초 이 프로젝트는 콜럼비아트라이스타가 제작비의 절반을 투자해 해외배급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되었으면 헐리우드와 충무로가 공동제작하는 첫번째 영화로 실험대에 오를 것이 기대되는 영화였다. 그런데 제작이 들어가기 바로 전 콜럼비아트라이스타가 이 프로젝트에서 발을 뺐고, 당황한 시네마서비스는 결국 전액을 투자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합작이 무산되자 강우석 감독은 영화의 방향을 잡지 못해 갈팡질팡했고, 설상가상으로 시네마서비스의 자금사정도 악화되고 있었다. 이제 꼭 영화를 띄워야하는 절박한 상황에 몰린 것이다.
작년 늦여름부터 공중파 방송국의 9시뉴스를 통해 <실미도> 제작에 관한 보도가 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뭐니뭐니해도 강우석의 힘이다. 지금까지 그 어떤 영화가 제작이 끝나기도 전에 프라임타임 뉴스에서 감독 인터뷰와 함께 제작과정이 소개된 적 있던가? <태극기 휘날리며>도 개봉을 앞두고 완성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9시뉴스에서 다루어졌을 뿐이다.
마침내 크리스마스를 맞아 전국 극장의 60% 가량이 <실미도>와 <반지의 제왕>으로 채워졌다. 연휴를 맞아 극장에 찾은 관객들에게 다른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실미도>는 그렇게 떴다. 여기에 '실미도'라는 실화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면서 관객들의 애국심을 자극했다. 애국심 마케팅은 한국에서 언제나 흥행 대박이다. 전국민의 60%가 저녁만 되면 [대장금]을 틀어놓고, 월드컵이 열리면 700만명이 시청앞으로 나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고, 이승연이 해서는 안될 짓을 하면 2천만 네티즌이 나서서 죽일년으로 만들어놓는 이 전체주의 사회에서 결국 천만명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배급의 힘으로 영화의 흥행신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실미도>를 열심히 만드는 도중, 자신의 말을 빌리면 '경영에서 손을 떼고' 감독으로서 소임을 다하는 와중에 M&A와 관련한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시네마서비스는 2년전 싸이더스와 함께 플레너스에 피인수되면서 코스닥 시장에 등록했다. 이로 인해 안정적인 투자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시네마서비스의 김정상 사장이 플레너스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플레너스와는 급속도로 한몸이 되었다. 그런데 작년 초 플레너스의 주가가 급락하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맥을 못추던 엔터테인먼트 주가와 달리 인터넷과 게임 관련 주식들이 일제히 급등하자 플레너스는 인터넷 게임회사인 넷마블과 합병하겠다는 소문을 증권가에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소문을 타고 작년 봄부터 드디어 플레너스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주가는 9천원대에서 2만7천원대로 3배 가까이 뛰었다. 그리고, 이 기간에 강우석 감독은 자신이 보유한 플레너스 주식을 계속 팔았다. 플레너스가 넷마블과 합병을 발표했고 주가는 계속 올랐다. 하지만 강우석은 계속해서 주식을 팔아치웠다. 시네마서비스와 넷마블, 엔터테인먼트와 인터넷이라는 두 사업의 양립 가능성을 밝게 보던 투자자들은 강우석의 지분 매도를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실미도>가 개봉 첫주 흥행 신기록을 세우던 때에도 주가는 올라가지 못했다.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이 강우석에게 지분 매각 이유를 물었다. 이에 강우석은 애널리스트들을 불러 모아놓고 저녁을 대접하면서 말했다. 지분 매각은 재투자를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지 절대로 플레너스를 포기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후 시네마서비스는 플레너스와 더이상 같이 가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강우석은 결국 증권사에 거짓말을 한 셈이다. 그날 플레너스 주가는 하한가까지 추락했고, 결국 이 사태를 전혀 모르던 소액투자자들만 모든 손실을 떠안게 된 것이다.
강우석은 이번 일을 계기로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이다. 주식을 팔아 챙긴 차액으로 백억원대의 이윤을 얻었고, <실미도> 흥행수입으로 마찬가지의 돈을 벌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가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할 것이고 그 돈을 대부분 영화에 재투자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은 돈이 단지 영화에 재투자된다는 이유 만으로 그가 행한 행위까지 용서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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