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개의 시선> 인권 사각지대를 포착한 예리한 시선

리뷰

<여섯개의 시선> 인권 사각지대를 포착한 예리한 시선 :::

유재영 | 2003년 10월 30일
조회 3953

임순례, 정재은, 여균동, 박진표, 박광수, 박찬욱.

차기작이 기대되는 여섯 명의 감독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됐다. 화제의 영화 <여섯개의 시선>을 통해서다. <여섯개의 시선>은 '인권'을 화두로 한 6개의 단편 영화를 한데 묶은 옴니버스 영화로 2002년 12월, 국가 인권위원회가 기획했고 2003년 4월, 전주 국제 영화제의 공식 개막작으로 처음 대중에게 공개됐었다. 영화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외 계층을 세밀히 관찰해 감독의 색을 입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 외에는 6편 모두 장르도, 소재도, 스타일도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것이 없다. 어떤 작품들일까?

임순례 감독의 <그녀의 무게>

평범한 여고생 선경에게 고민이 생겼다. 평균 수치를 웃도는 몸무게와 외꺼풀에 다소 눌린 듯한 작고 째진 눈 때문이다. 취업을 담당한 상고의 교사들까지 다이어트를 외쳐대며 고3 여학생들을 닦달하는 통에 선경의 고민은 몸무게만큼이나 부풀어 가는데...

<그녀의 무게>는 선경의 주변에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마치 아무 일도 아닌 듯, 과장과 꾸밈 없이 얘기하지만 이것이 현대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라는 것을 누구나 간파할 수 있을 만큼 메시지는 선명하며 어느 코미디 영화 못지 않은 웃음을 준다. 그것은 역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자체가 가감 없는 코미디이며 그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야 하는 일반인들의 슬픈 현실, 평범해서 평탄하게 살 수 없는 아이러니를 강조한다.

정재은 감독의 <그 남자의 사정>

시공간이 모호한 미래의 어느 아파트. 가상의 성범죄 사이트에서 신상이 공개된 한 남자가 살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이 남자에게 관심을 갖는 유일한 사람은 이웃의 오줌싸개 아이. 어느 날, 또 오줌을 싼 아이는 엄마로부터 옷을 벗긴 채, 소금을 받아오라는 벌을 받고 궁여지책으로 남자를 찾아가게 된다.

제목과 달리, 아이의 사정에 더 많은 초점이 맞춰져 있어 주제를 말하는 힘이 약해지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미시 탤런트 변정수가 이 영화를 통해 영화 데뷔 신고식을 했으며, 영화 배우 백종학이 성범죄자로 지목된 남자 역을 맡았다.

여균동 감독의 <대륙횡단>

김문주라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의 일상적인 사건과 감정을 열 한편의 짧은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장애인 이동 투쟁으로 잡혀간 친구를 생각하며 홀로 광화문 네거리를 무단으로 횡단하는 마지막 에피소드의 제목이 영화의 제목이다. 김문주씨는 실제 장애인이며 이번 영화출연이 첫 연기이다.

박진표 감독의 <신비한 영어나라>
한 어린이 치과 수술대. 어린 종우가 누워있다. 영어 교육열이 높은 엄마 때문에 설소대 수술을 받고 있는 것. 수술대 위에서 괴로워하는 아이가 롱테이크로 보여지다가 수술실 모니터를 통해 혀를 찢고 꿰매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순간, 영화는 충격적인 다큐멘터리가 되고, 감독의 의도도 적나라하게 표출된다.

박광수 감독의 <얼굴값>

한 병원 장례식장의 주차장. 출차를 하려는 남자와 주차 매표 요원인 여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여자의 외모가 직업과 안 어울린다고 생각한 남자는 얼굴도 예쁜 여자가 불친절하다며 시비를 건다. '얼굴값도 못한다'며 말싸움을 시작한 남자는 결국 '얼굴값 한다'며 열을 올리는데... 뒷차에 밀려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오게 된 남자는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이 문제로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에 접근했다는 점에서 중견작가의 경륜을 보게된 듯 하지만, 마지막 반전과 서스펜스만으로 영화의 장르를 설명하기엔 어설픈 느낌이 든다. 지진희가 남자 역을 맡았다.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한국어를 못해 정신병자로 오인 받아 6년 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수감됐던 네팔 여성 노동자 찬드라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그러나 영화 대부분에 실제 인물 찬드라는 커녕, 찬드라를 연기하는 어느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다. 찬드라의 시점으로 샷이 진행되는 새로운 형식 때문이다. "특정 한사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싶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능, 그리고 그로 인한 슬픔을 그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를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킨 시도였으며 덕분에 관객은 흥미롭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섯개의 시선>은 다양한 영화적 재미를 주는 것은 물론, 장편으로 보여주지 않았던 감독들의 새로운 역량을 확인시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화의 최대의 미덕은 우리의 사고를 넓히는 지적인 영화라는 점이다. 영화의 홍보 내용처럼 영화가 끝난 후, 대부분의 관객들은 '왜 우리는 서로를 차별해 왔는가?', '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지 못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점에서 고개를 드는 의문 하나! '대표 영화, 대표 감독_차별을 거부하는 유쾌한 눈짓'이라는 메인 카피를 달고 있는 이 영화가 왜 마지막 두 편에만 '박광수 감독 작품', '박찬욱 감독 작품' 이라는 타이틀 자막을 표시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