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텔미썸딩> Tell Me Your Lies :::
양유창 | 1999년 12월 01일
조회 3749
감독: 장윤현
출연: 한석규, 심은하, 장항선, 염정아
내게 거짓말을 해봐
모두들 거짓말쟁이가 된 것일까?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스토리가 시작된다. 사람에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컴플렉스로, 사랑의 복수에 대한 집착으로, 혹은 단순한 살인극으로 볼 수 있는 이야기. 장윤현 감독이 1년이상 고심하며 6명의 작가팀과 함께 작성했다는 시나리오. 평단의 평가는 대체로 '절반의 성공', 관객들의 평가는 극찬과 악평이 엇갈린다.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은 발전된 특수효과와 새로운 장르의 시도에 대한 찬사 정도다.
무엇이 텔미썸딩을 특별하게 만드는가
평론가들, 영화광들은 이 영화에 대해 한국에서 이 정도 만들었다는 것이 반갑다는 인사로 시작해 배우의 연기에 대한 불만, 상투적인 내러티브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끝맺는다. 하나같이 비슷한 외국영화들에 비해 <텔미썸딩>은 좀 모자란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무엇이 <텔미썸딩>을 모자라게 만들고 또 무엇이 <텔미썸딩>을 안타깝게 만드는가? 스릴러 영화에 이론이 있다면, 그것은 히치콕이 원안을 쓰고 로빈 우드가 각색한 뒤 여러 영화광들에 의해 리메이크된 보편적 B급 미국영화들에 그 기초를 둘 것이다. 당시에는 푸대접 받았지만, 이후에 여러 사가들과 관객들에 의해 재평가되었다. 그렇다면 재평가의 기준은 무엇이었는가?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이후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일까? 아니면 당시의 가치관에 맞지 않았던 것이 후대의 감수성에 부합되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새로운 이론의 적립을 위해, 혹은 그저 매니아들에 의해 복원된 것이었을까? 이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는 영화와 관객의 관계부터 논해야 할 것이다. 장윤현 감독이 항상 이야기하는 것 - 소통과 단절 - 에 대해 필자는 그의 영화 속에서는 그런 것을 별로 느낄 수 없다라고 생각하지만, 영화의 본질은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순수한 작가정신으로 찍은 영화도 관객에게 보여지고 흡수될 때 의미가 있고, 공개되지 않은 영화는 마스터베이션에 불과하다. 순수하게 그런 맥락에서 좋은 영화란 관객에게 의해 자주 회자되고 사회적으로 반향을 지니는 영화들이다. 사회는 인간들이 어울려 만드는 것이고, 그런 사회는 다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영화라는 대중문화는 흥행수익에 의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그들의 집합이 만들어낸 숫자에 의해 영화와의 의사소통의 척도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텔미썸딩>은 특별한 영화다. 흥행성공과 수많은 논란들 속에서 진실은 가려졌지만(혹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퍼즐과 두뇌게임의 한 자리에 성공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였다. 굳이 컬트라고 칭하지 않더라도 <텔미썸딩>은 스토리에 대한 갈증을 통해 이런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을 성공적으로 흡수해낸 것이다.
영화 속 단서들
 Placebo의 "Without You I'm Nothing"에 수록된 'The Crawl'은 이 영화와 딱 어울리는 곡일 것이다. 여인 두 명이 마주보고 있는 자켓으로 영화에 소개되기도 했는데, 영화 속에서 심은하와 염정아의 관계에 대한 암시를 주는 아이템으로 사용되었다. 약간은 동성애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동성양체적인 이미지 - 사실 현실에서도 둘은 가까운 친구사이라고 한다.
헤랄드 다비드 "캄뷰세스왕의 재판"은 영화 내내 불안감을 조성한다. 한쪽 벽에 걸린 거대한 이미지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마치 중세시대 해부학강의를 연상시키지만, 원래 그림의 내용은 끔찍한 재판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마녀사냥. 그 재판은 마녀사냥으로 기록되곤 한다. 과연 심은하는 중세시대 마녀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예쁜 얼굴로 남자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고 한편으로 알 수 없는 질병으로 마을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마녀들. 하지만 영화의 재판은 마녀에 의해 집행된다.
존 밀레 "오필리어" [햄릿]의 저 유명한 오필리어가 연못에 둥둥 떠 있다. 얼굴만 수면 위로 내민 채. 오필리어는 심은하의 상태와 비슷한 오브제 기능을 한다. 사랑하는 남자에 의해 죽은 아버지 때문에 정신이상이 된 그녀는 호수에 빠져 자살을 한다. 그리고 그녀의 시체는 그녀의 오빠와 햄릿의 결투, 결국 죽고 죽는 햄릿 가문의 비극을 초래했다.
 폴라로이드 사진. 4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 배경은 텅빈 수조가 보이는 심은하의 저택. 그들은 모두 알고 있는 관계였다. 수조 속은 텅 비어있었고, 그곳에는 이제 조각난 시체 혹은 아버지의 얼굴 없는 시체가 안치될 것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사진은 누가 찍었을까? 그녀의 아버지? 단추를 잃어 버린 죽은 소년?
수조 속 시체. 한석규는 불을 켜고 깜짝 놀란다. 얼굴 없는 시체. 성기가 그대로 달려 있는 걸로 보아서 이 시체는 분해되지 않았거나 혹은 정교하게 꿰매어졌다. 한석규에게 배달된 그 얼굴은 이제 한석규의 얼굴이 그 거대한 시체의 머리부분을 장식할 것을 예고한다.
마녀사냥, 702호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수조 속 시체는 과연 누구일까? 그녀의 아버지일까? 혹은 남자들의 조각일까? 심은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견디지 못하는 정신이상자인가? 그 남자들은 심은하를 모두 사랑했고 죽음을 견뎌냈다. 오직 한 사람, 죽음을 의심하던 김기현만이 경찰의 수사망에 걸려들었지만, 그 역시 심은하와 염정아의 계략에 의해 비디오테이프 안에서 사지가 절단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은 죽음에 앞서 항상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멘델스존의 조용한 클래식, 플라시보의 음울한 목소리 등. 염정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702호에서 장항선을 죽인 그녀는 치마를 입고 타워레코드에서 심은하에게 음악을 들려준다. 하지만, 이번에 그 음악은 마녀사냥의 전주곡이 되지 못했다. 또다시 성공적으로 연쇄살인을 마무리한 심은하의 자축곡이었다.
하지만, 702호에서는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 그곳은 조용한 곳이다. 오로지 숨소리만 들리는 곳. 음악을 틀어두었을 때도 그 음악은 관객에게 들리지 않는다. 희생자와 가해자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Tell me Your Lies
필자는 <텔미썸딩>이 1999년 최고의 한국영화 중 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전국 5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쉬리>조차도 <텔미썸딩>만큼 영화 자체로 논란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1999년의 화제작들 - <쉬리>, <거짓말>, <용가리> - 은 영화보다는 영화를 둘러싼 주변환경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에 반해 <텔미썸딩>은 영화와 영화의 내러티브, 영화의 인물들 자체로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장르의 시도는 장윤현 감독과 올해의 한국 관객들에게 무사히 안착했다. 그래서 이제 시작이다. 아직 관객에게 말할 것이 남아있나? 그러면 그것은 남겨두길. 그래서 계속해서 "텔미썸딩!"하고 갈증에 탄 목소리로 외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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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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