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터 댄 섹스> 사랑은, 이렇게 시작됐다

리뷰

<베터 댄 섹스> 사랑은, 이렇게 시작됐다 :::

곽은주 | 2003년 01월 18일
조회 2727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 왔는가/ 햇빛처럼 꽃보라처럼/ 또는 기도처럼 왔는가/ 행복이 반짝이며 하늘에서 몰려와/ 날개를 거두고/ 꽃피는 나의 가슴에 걸려온 것을/....그날 밤늦게, 조용히 네가 내 마음에 닿아왔다......중략.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사랑은 어떻게 너에게 왔는가'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21세기 현대인에게 사랑은 릴케의 시처럼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영화 <베터 댄 섹스>를 보면 사랑은 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영화 제목은 `섹스보다 좋은 것(원제 better than sex )'이다. 사랑은 육체로부터 시작돼도 결국은 마음의 교감이 더 중요하다는 뜻인가.

영화는 호주 시드니가 무대다. 시드니의 여피들이 삼삼오오 모여든 파티. 파티에서 처음 만난 조쉬와 씬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다. 조쉬는 3일후면 런던으로 떠날 사람. 다시는 서로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딱 하룻밤만 같이 지내기로 한다. 다음 날 미련없이 헤어지기로 하고. 그러나 조쉬는 그녀를 떠나지 못한다. 그 다음 다음 날도. 둘은 3일 밤 4일 낮을 한 공간에서 기거하며 오로지 섹스에 탐닉한다. 꿈같은 3박 4일의 동거후 그들은 비로소 깨닫는다. 섹스보다 좋은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그는 내가 목숨걸고 빠져들 상대는 아니에요. 하지만 놀랍게도 날 들뜨게 했어요. 편안한 매력이 있었죠. 그가 날 웃겼는데 그게... 좋았어요."(씬), " 그녀는 솔직하고 당당해요. 불을 끄지 않아도 자신있게 벗죠. 솔직히 미인은 아닌데... 이상하죠. 그녀처럼 흥분되는 여자는 처음이에요(조쉬)."... 영화에 나오는 인터뷰 내용의 일부분이다. 그들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암시하고 있다. 결국 그들은 마음의 빗장을 풀고 서로를 받아 들인다. 결혼에 관심없던 두 사람은 기꺼이 사랑의 감옥에 동거인이 된다.

<베터 댄 섹스>는 호주 출신 조나단 테플리츠키 감독의 데뷔작이다. 뮤직 비디오와 다큐멘터리의 상반된 두 장르를 섭렵한 감독은 `베터 댄 섹스'에서 그에 경험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여주인공 씬의 원룸식 침실에서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이 촬영됐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답답하거나 지루함을 못느낄 정도로 카메라의 움직임이 현란하다. 대담한 크로즈업과 롱테이크로 방안의 자질구레한 소품에서부터 남녀의 마음속 미묘한 생각과 일상의 너저분한 행동들까지 영상으로 뽑아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분명 영화는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생생한 성 경험 인터뷰를 영화 중간 중간에 담아 다큐멘터리 같다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시나리오가 사실적이다. 시나리오를 직접 쓴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영화의 바탕이 됐다고 한다. 정사 장면이 수없이 화면을 덮는데도 영화는 상큼하고 깔끔한 야채 샐러드처럼 싱싱한 식욕을 불러 일으킨다.

조쉬역을 맡은 데이빗 웬헴은 현재 상영중인 <반지의 제왕 - 두개의 탑>에서 '파라미르'로 열연한 호주 최고의 스타. 바람둥이 같은 그에 능청스런 연기도 연기지만 미끈한 벗은 뒷모습이 무척이나 유혹적이다. 씬역의 수지 포터는 이 영화로 각종 영화제 연기상에 노미네이트됐으며 비록 조연이지만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에피소드 2>에 캐스팅되는 행운도 얻었다.

영화음악은 <샤인>을 비롯해 <슬라이딩 도어즈>, <엘리자베스> 등의 음악을 담당한 호주의 국보급 작곡가 데이빗 허쉬펠더가 맡았다. 호주의 마돈라로 불리는 카일리 미노그의 감미로운 목소리도 영화의 맛을 돋아 준다. 테마곡을 포함하여 16곡의 아름다운 선율이 달콤하다.

<베터 댄 섹스>는 성을 화두로 남녀의 에로스적 사랑에 초점을 둔 점이 프랑스 영화 <포르노그래픽 어페어(프레데릭 폰테인 감독 1999년)>와 주제와 형식면에서 닮은 꼴이다. 결말은 상반되게 귀결되지만 두 영화를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포르노그래픽 어페어>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초청 상영돼 전회 매진 됐었는데 영화 제목이 한 몫했다는 후문. 비디오로 출시돼 있다.

그 남자 조쉬와 그 여자 씬의 사랑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