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쉬> 인간-기계-영화

리뷰

<크래쉬> 인간-기계-영화 :::

양유창 | 1998년 09월 01일
조회 2461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 / 제작: 제레미 토마스
출연: 제임스 스페이더, 데보라 카라 웅거, 엘리아스 코테아스
러닝타임: 100분 / ALIANCE Pictures 배급

인간은 몸과 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에 반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혼합하려 하는 것이 <크래쉬>다. 사랑의 섹스, 인간관계, 사회적 관계 등은 낡은 가치로 취급되어 더 이상 수용되지 않는다. 이 영화 속의 인물은 외부적인 변화를 요구하며, 그것은 기존의 개념에 대한 의미를 재발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섹슈얼리티와 사랑, 영화의 처음에서 그들은 서로를 발견하기 위해 그 단어를 재발명하고, 영화가 종반으로 치닫을수록 그들은 스스로 재발명한 것들을 직접 행한다. "아마도 다음 번에는 좋을 수 있을 거야, 다음 번에는 죽을 수 있을 거야." 제임스 딘이 죽어 비로소 영원히 살게 된 것처럼 인물들은 죽는 순간에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을 믿는다. 인물은 비현실적이고, 정신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그것은 영화가 시작될 때부터 그들 내부에 이미 존재해 있는 것이다. 문제가 벌써 거기에 있기 때문에 인물은 그곳으로 끌려간다.

영화는 섹스를 나열하는 플롯을 가지고 있다. 한 중산층 커플을 중심으로 몇몇 관계가 단지 성적 만족을 위해 발생하며, 각자의 리비도를 채움으로써 다음 플롯으로의 진전이 이루어진다. 인물들의 섹스에는 클리토리스를 자극할 만한 가혹한 행위들이 사이에 놓여 있으며, 그것은 기름이 묻은 바지, 상처 부위의 절합선, 제3자의 목소리, 관찰자, 세차장, 동성 혹은 이성에 대한 관심 등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인물들과 주제들과 줄거리가 명백히 드러나는 섹스 시퀀스는 영화가 단지 섹스 만으로도 포르노그래피의 범주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부적인 부분들과 배열은 주제를 다양화시키며, 일정한 간격 하에서의 반복은 변주와 울림으로 작용한다.

플롯과 플롯 사이에서 본이라는 캐릭터는 신비함으로 다가온다. 그는 소외된 캐릭터이면서 열성적인, 그래서 전형적인 크로넨버그적 인물이다. 그는 한밤중에 공항 뒤쪽의 활주로에서 시를 읊고,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자동차를 성적 해방구로 이용한다. 제임스 딘, 제인 맨스필드, 그레이스 켈리는 그에게 리비도를 부여하는 마약과도 같다. 관찰자로서 깊게 관여하게 되는 제임스와 캐서린은 본에게 경도된다. 이것은 그의 쇼이며, 플롯은 그를 향해 열려 있다.

비로소 자동차가 불을 내뿜기 시작하면, 금속판에서 혈관이 튀어나온다. 고속도로는 차들로 붐비고, 익명성을 보장받은 폐쇄된 공간에서 그들은 만족되지 않는, 단지 우울하게 더 나아지기만을 바라는 섹스를 한다. 그들 사이의 섹스는 자동차 충돌로 인한 충격으로 새로운 영역으로 옮아가게 되며, 그곳에 미리 도착해 있는 본은 발라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바로 미래야. 우리 모두가 아주 밀접하게 연루된 거지"

낯뜨거운 얼굴로 스크린을 대하는 관객들에게 이것은 융합하기 어려운 돌연변이처럼 느껴지리라. 그들의 방어기제는 자동차 충돌로 인한 상처와 문신이 여기저기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역겨움에 달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자세히 보면, 성적인 것들은 다분히 직접적으로 메타포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캐서린의 성기는 고도로 응축되어 미니멀하게 느껴지며, 그 아래의 상처 자국은 오히려 육감적으로 드러난다. 또, 제임스와 캐서린의 항문 섹스의 운동성은 자동차의 운동성과 그다지 다른 것 같지 않으며, 제임스의 차를 들이 받으려 하는 본의 표정은 오르가즘에 올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자동차와의 충돌로 기계와 하나가 되려 하며, 같은 차를 구입하는 뻔뻔함은 최소한의 위험부담과 함께 건조한 인물들 사이의 무의식적 애정관계를 함축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발라드가 캐서린에게 다가가 안부를 묻고 섹스할 때 그것이 그들의 진화(혹은 진화로써의 죽음)에 있어 아주 자연스러운 단계처럼 보이는 것이다.

본에 의해 절합된 캐서린과 발라드는 본의 죽음(신화의 죽음) 이후 신화를 재생산하려 한다. 현실은 무수히 많은 자동차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 자동차들이 일제히 어딘가로 사라질 때 그곳은 더 이상 그들에게 현실이 아닌 ('비디오드롬'에 빠진 '네이키드 런치'와 같은) 환각 상태이다. 환각 속에서 발라드는 캐서린을 쫓는다. 그리고 둘 사이의 거리는 마침내 현실에 의해 좁혀진다. 또다른 충돌사고가 두 인물을 한 지점으로, 스크린 밖의 관객을 새롭게 신화화될 두 인물에게로 모은다. 이윽고 그들이 다음 기회를 기대할 수 있는 순간은 이미 상처가 그의 리비도를 자극하고, 자동차는 그의 보호막이 되며, 교통사고를 목격한 관객은 인물들의 관찰자가 되어 있는 고속도로의 그늘 밑에서이다. 더 이상 밀폐되어 있지 않은 그 공간은 크로넨버그에게 있어서는 드문 희망을 암시한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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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s' Comments

	알면 재미있군... filmzone(신상훈) - 2001/11/23

	모르면 약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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