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영화들이 같은 시즌에 무더기로 등장하는 헐리웃의 그것처럼 우리 나라에도 추석, 설을 전후로 한 명절 성수기, 크리스마스 새해를 전후로 한 연말연시 성수기, 그리고 여름방학 성수기가 서서히 자릴 잡고, 거기에 따라 나름대로 다른 성격의 영화가 걸리는 걸 이젠 조금씩 엿볼 수 있다. 명절 전후엔 코미디나 국산 중심의 대규모영화, 연말 연시엔 헐리웃의 일명 '블록 버스터'들이 따뜻한 가족, 애정 영화와 함께 등장하고, 여름엔 방학을 맞는 청소년이나 어린이 중심의 '모든 관객 관람 가능한 등급'의 영화나 공포 영화 같은 식으로 말이다.

'여고괴담 그 두 번째 이야기'가-이후 '여고괴담 둘'-겨울에 우리 곁을 찾은 건, 제작 시간을 맞추지 못한 탓도 있었겠지만, 영화를 본 후, 막상 자릴 뜰 때쯤이면 '그래' 싶을 방학용 영화란 생각이 들었더랬다. 간단히 말하자면, 공포의 함축언어였던 '괴담'은 그 힘을 잃고, '여고'를 강조시켜 여기에 '일기'를 매개로 했으니 '여고생 일기'쯤 이랄까..

청소년을 다룬 영화 대부분이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달아야 했던 전례를 돌이켜 볼 때 '여고괴담 둘'의 '12세 관람가' 등급은 비난 가득한 등급제의 다소 유연해진 선례가 될 것이다. -이번 달 '거짓말'이 조금 잘려 개봉할 것이란 소식이 들려 온다. 나아가 단편 몇 편 연출 경험이 전부인 김태용, 민규동 감독의 공동 연출작인 '여고괴담 둘'은 이전 청소년과 공포를 양념 삼던 수많은 전례에 비낀 다소 다른 방향을 취하고 있다.

해 아래 태어난 헌 것은 새롭게 거듭나는 법.

민아(김민선)는 지각한 등교 길. 개구멍으로 학교에 진입해 숨을 가다듬으려 멈춘 수돗가에서 빨간 일기장을 줍는다. '교환일기' 효신(박예진)과 시은(이영진)이 채워간 일기가 둘이 만난 지 일년 된 '공동생일'날 우연히 잃어 버렸고 민아 손에 들어간 거다. 일기장 가득 신기한 둘의 관계를 민아는 알게되고 신체검사가 있던 5교시 옥상에서 떨어진 효신의 죽음으로 학교가 술렁인다. 벌써 여섯 번째 자살 학생.

'여고괴담 둘'이 공포영화로 가려 했다면 바로 이 열쇠 '여섯 번째 자살 학생'을 키웠어야 했다. 하지만 김,민 두 감독은 '괴담'의 방향을 달리 잡고 있다. 죽음을 이기는 주문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를 수없이 되뇌이더라도 아무도 죽음의 이유를 찾으려하지 않는 것처럼 자살은 '모멘트'일 뿐. 살아있는 자들과 고리를 맺지 않는다. 곧 효신이 남긴 주문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게 아닌 살아있던 자신을 마음 한 켠에 남겨 달라는 요구였던 것. 두 여학생이 빨간 수건으로 발을 함께 묶은 채 물 속으로 가라앉지만 한 명이 풀며 친구를 박차 수면으로 향해 가는 영화의 시작처럼 은은 둘의 관계에 집착하려는 효신에 거리를 두려 했다.

여기에서 효신이 남긴 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자. 일기는 극히 개인적인 도구다. 자신을 비쳐보며 반성과 재기의 칼날을 갈거나, 무작정 생각을 토해 내거나 글이 대상을 갖지 않는 유일한 양식일 것이다. '교환 일기'는 형식상으론 일기의 형태를 보이지만,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한 매체임과 동시에 상대에게 자신을 전하는 일기 아닌 편지의 단행본일 뿐이다. 하지만 여기에 달려 있는 '일기'란 단어는 그것이 극히 사적인 것으로 인식되게 하고 교류의 깊이를 더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민아가 등교 길 수돗가에서 일기장을 주은 것은 우연이었지만, 펼쳐 내용을 보게 된 건 당연한 순서다. 호기심은 비교와 우위를 차지하려는 인간의 본능이기도 한 것이기에..

화려한 일기장. 민아는 아프다는 핑계로 양호실에 앉아 일기장을 읽는다. 우연히 칸막이 건너에는 효신이 앉아 있었고 아프고 힘들 때 먹으라는 사탕, '독약'을 먹은 후 민아는 시은과 효신 사이에 자리잡게 된다. '교환일기'를 소유한 민아가 이제 둘을 잇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민아의 '관찰'은 여기서부터 '전달'로 급전하게 된다. 효신이 죽는 순간 민아는 살아있던 때 복도 저편에서 달려오는 효신의 모습을 본다. 효신과 시은 사이에 통하던 텔레파시를 공유하고, 효신의 환청과 현신이 민아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제 민아는 살아있는 시은에게 다가간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하루를 바깥 틀로 하고, 과거를 혼재시켜 놓은 '여고괴담 둘'은 학생들의 생활로 범위를 또 압축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선생들은 누구하나 학생들의 사고나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관계를 맺고 있던 국어선생마저 효신의 죽음에 원인이 되기 보단 오히려 영향을 받아 자살을 할 정도로 이야기 중심엔 학생들이 자리잡고 있다. 흔히 등장하는 '불완전(不完全)한 가정'으로 인한 '사고(思考)의 불안정(不安靜)' 공식도 제쳐두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그들이 풀어가야 한다.

무당의 등장은 신과 인간 아니 자연과 인간이 교류를 시작함과 때를 같이한다. 세상이 정보의 양보다 접근을 허락하는 'Gate keeping'의 중요성을 알아 가는 것도 이와 의미를 함께 한다.

교환일기를 가진 민아는 죽은 효신과 시은을 잇는 무당같은 존재가 된다. 과거 '교환 일기'가 했던 일이 교환일기를 소유한 민아에게로 옮겨진 것이다. 이것은 죽은 효신이나 살아있는 시은 어느 쪽의 의도가 아닌 불가항력의 결과였다. 신병을 앓고 끝내 신내림을 받는 무당처럼 민아 역시 운명에 끌려 흘러갈 뿐이다. 일기를 내 놓으라며 덮치는 효신의 물리력이나 시은이 가로채간 일기가 어느 순간 민아에게 돌아오는 것 역시 바로 그런 이유다.

김,민 두 감독은 이쯤에서 '여고괴담'과 '여고생 일기'사이에서 한참 고민한 듯 보인다. 왕따와 사제간 연애, 양호실과 신체검사가 후자라면 자살로 시작한 효신의 영적 물리력 들이 전자라 할 수 있는데, 그들의 선택은 앞서 말한 'Communication Story'에 낙점된다.

민아는 시은이 겪어야 할 유사 동반자살을 경험하고 혼란에 빠진 학교 한 가운데 죽은 효신처럼 누워 둘을 연결한다.

푸리의 정서. 닫혔던 학교의 문은 열리고 지붕 가득히 채우던 효신이 멀리 사라지는 것 역시 '친구의 사랑을 기억하게'한 민아의 선택받은 역할극 수행 완료을 통해서 인 것이다.

결국 '여고괴담 둘'은 공포의 양식을 얹은 성장 영화가 됐다. '효신의 죽음을 통해 친구들이 변화를 겪는다.' 식으로 말이다. 김,민 두 감독은 '동성애'와 '자살'을 하나에 몰아 거부감을 줄이는 데 성공적인 효과를 거뒀다. 여기선 이야길 풀어가는 표현 방식이 한 몫을 하고 있는데, 화면의 질감을 달리한 시간의 교차-명확한 것은 죽은 효신의 시점쇼트 뿐이다.-가 다소 처질지 모르는 성장의 단계를 '혼란'이라는 약점을 안고서도 차근히 진도를 더하게 한다. 또 가득히 등장하는 조연들의 실감나는 대사들은 멀어 보이는 '영적 현상'부분을 집는 집게가 되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사제간의 애정문제 아니 여학생의 순결 강박이 효신의 자살을 이끌었을 지 모른다는 의혹은 다소 위험한-빈부냐 진부냐 기로에서-설정이었다. 극의 중반 국어선생에게 따져 묻는 학생과 선생이 자살하기 직전 등장하는 효신의 손길 등은 전체를 통해 풀어간 '거부감 없는 동성애'코드를 스스로 거부하고 있다.

영화는 스케일 가득한 음악과 넘치지 않는 효과음으로 깔끔한 공포영화의 새로운 지표를 세우는 듯 했지만 '공포'는 꼬리를 잇지 못했고 '혼란'은 공포를 표현하지 못했다. 결국 '괴담'이란 이름표는 전편에 두고 온 것임에 틀림없고 화려하고 예쁜 화면, 혼잡하고 이가 맞지 않는 구성은 전술한 자아부정의 내러티브와 같은 방식으로 운명을 함께 한다.

첫 장편을 연출한 두 감독의 교류가 낳을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만 잔뜩 선물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