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감> 그리고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윤상열 | 2000년 10월 10일 조회 2704
그리고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맨 마지막 글귀
나는 그곳에 내 첫사랑이 살고 있기를 바란다.
그녀는 스물 다섯 해 전에 그곳을 떠났지만 이제는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인줏빛 햇살에 머리를 빗어 내리면서 내 목소리를 닮아 있는 그 사람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면 좋겠다.
나는 막 열아홉 살이 되었고, 갑자기 키가 부쩍 컸다.
마치 해바라기처럼, 깊은 진흙탕 속에서 하늘까지 뻗어 나온 것처럼.
나는 곧잘 그렇게 생각했다.
 | 20년을 사이에 둔 사랑 <동감> | 내 방. 어딘가에 숨어 있을 소란스런 주파수의 변적을 따라 날 가둘 수 있는 유일한 곳. 그곳에서 그녀를 발견했고, 그녀의 시간에 내가 가로지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서든지 난 그녀를 생각할 수 있고,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와 내가 일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 모든 것을 은폐시킬만한 이유가 되기에 너무나도 충분했다.
1979년 그녀는 나의 아버지를 발견하였고, 그로부터 정확히 20년 후 그녀는 나에게 발견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세계에 깊숙이 빠져든 나의 아버지에게 몰두하기 시작하였고, 나 또한 나의 세계에 깊숙이 자리한 그녀에게 몰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공동(共同)안에는 나의 어머니 "선미"와 나의 아버지 "동희"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나의 사위(四圍)안에는 "현지"가 도담스럽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거기서부터 그녀와 나의 혼란스러움은 두려움보다는 사랑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그녀와 마주한 동시대의 조우보다 안타까웠으며 끝없이 흘러나오는 HAM의 무선보다 더욱더 알기 어려운 부호처럼 느껴진다는 것이 서글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것은 습관처럼 내 주위에 흩어져 있던 기억의 단선들의 복합체로 그녀를 만들어 가기 시작할 무렵 이였으니 그 아쉬움은 내게 너무나 큰 상처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렇게나 마이크를 붙들고 주파수를 조절해 가며 취한 듯 그녀를, 혹은 당신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사실인지 가슴이 쓰라려 견디기 어려울수록 난 더더욱 당신을, 혹은 그녀를 지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내 눈물 마냥 흐느낄 뿐 이였다.
나의 사랑보다는 그녀의 헌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직감한 것은 나에겐 커다란 불행이였다. 무엇가에 질서에 순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사랑에 눈 먼 자들은 익히 깨달았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기에 그 질서를, 그 순화를 거스르려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해 보았고 끝없는 추락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녀의 결단에 달려 있음에 난 신음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아파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의 생과 그녀의 생이 이토록 어긋나 있을 줄이야...
그녀를 너무나 보고싶다. 만지고도 싶다. 함께 이 시공간을 거스르지 못한다는 것이 무선 사이에 놓인 그녀의 신비인 동시에 나의 신비고 어지러운 우연이였다. 그 우연에 기쁨과 혼란을 느끼기도 잠시 그녀는 나로 인해 자신의 사랑 없는 미래를 깨달았고 난 누군가의 아픔을 통해서만 잉태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나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현지의 아낌없는 나에 대한 배려는 그 모든 것의 해방이 아니라 봉쇄였음에 어눌한 신경이 하루종일 곤두 서 있기도 했다. 따라서 나를 좋아하고, 나를 두려워하고,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배신과 좌절에 대한 깊은 증오의 샘에서 떠온 더려운 오염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나 했을 것인가!
다시금 그녀의 시대와 나의 현재가 교차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난 잠시라도 나의 마음을 진정키 위해 나의 울음을 감추기 위해 어느 누군가의 순결한 교리에 따르리라고 마음먹는다.
선탑(禪榻)에 앉았습니다.
당신은 운치가 있게 제 주위를 서성거립니다.
삼배가 끝나도록 그 길지도 않은 시간에 당신은 절 가슴에 담습니다.
멀리서 떨어져서 당신 곁을 지나다니다가 당신에게 어슴푸르하게 다가갑니다. 그 점이 그 선이 당신과 제 사이에 깊숙한 폐부를 만들어 놓았다 하더라도 전 당신에게 다가갑니다. 그 걸 저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설령 누군가가 절 기다리고 서서 당신을 뒤에서 가려가며 절 되돌리려 해도 전 잊을 수 없습니다. 전 다가갑니다. 그게 당신의 마음이라고 굳게 믿으며, 나 또한 그랬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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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상열 아..아름다워라....
여..여자가 그렇게 보일 때...
사..사내는 그 여자를 본다...
아..아직도 모르는가 그대는...
여..여태 깨닫지 못했는가...
사..사랑은 당신에게 허용되지 않는 유일한 삶이란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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