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수지의 개들> 선험적 연결의, 영화의 고리 :::
양유창 | 2000년 03월 01일
조회 2560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제작: 로렌스 벤더
출연: 하비 케이틀, 팀 로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점점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인디펜던트 영화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핏빛 살인과 담합시키고, 시간의 흐름을 철저히 거부하는 플롯으로 무장한 뒤, 난무하는 패로디와 패스티쉬 영화의 현대적 묵시록 속을 탐험해가는 여정과도 같다.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그의 영화는 선망의 대상으로 군림하게 되었으며 많은 젊은이들은 자신이 제 2의 타란티노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그렇게 신 어메리칸 드림이 영화를 통해 재현되고 있고, <저수지의 개들>은 그 꿈을 실현시키는 영화이다.
그러나, 또한 <저수지의 개들>은 단지 영화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영화매니아로서의 타란티노는 영화 이외의 다른 것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으며, 철저히 영화 위에서 사고하고 영화로써 모든 것을 대체하려 한다. 영화의 기본 바탕 위에서 쓰여진 그의 시나리오는 마치 '기존의 영화'라는 노쇠한 건물을 부수어 버리고 건물 기저에 자리잡고 있던 땅을 한 번 일구어낸 뒤, 그 토대 위에 새롭게 재건축해 놓은 번지르르한 고층 빌딩처럼 화려하면서도 웅장하다. 하지만, 정작 건물 내부로는 무언가 빽빽히 들어차 있으나 아직 실내 장식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듯 안온한 느낌은 주지 못하고 차가운 공기만 싸늘히 맴돌 뿐이며, 또 여기에 지독히 고집스럽게도 건물의 외경을 통해 보이는 풍경 속으로 어떠한 장치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 단촐한 모습으로만 비칠 따름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단촐함은 미숙함이 될 수는 있어도 단점이 될 필요는 없다. 아니, 오히려 그는 떳떳하게도 영화를 통해 관객을 사로잡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영화를 매개체로 설정해 놓고 영화를 마주대하는 관객들과 자신이 직접 대화를 해나가는 것이다. 그는 잠시라도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한눈을 팔면 혼을 내주려는 듯이 의기양양한 기세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런 면에서 그는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이며 동시에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독설가이기도 하다. 또, 만약 관객들이 한 인물에 관해 궁금해하면 그는 친절하게 터치 스크린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듯 과거로 돌아가 그 인물에 관한 자세한 내막을 설명해준 뒤, 다시 현재로 환원하여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영화광 다운 패기만만함과 포화상태에 이른 나르시시즘 사이를 통과하는 것이다. 정돈되지 않아 번잡한 체계들은 '형식 혹은 양식으로써의 영화'와 '영화로써의 영화'라는 두 개의 챕터로 구분되며, 여기에 분류된 조각들을 하나의 고리로 연결하여 풀어내 보기로 한다.
먼저 '형식 혹은 양식으로써의 영화'라는 맥락에서, 일단 타란티노는 내러티브를 영화의 중심에 둔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화법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있어서 그는, 대체로 전반부에서는 추리극 형식을 기반으로 배신자를 찾는 것이 주목적인 양 갈등을 만들어 내지만, 미처 후반부가 되기도 전에 그 형식 자체를 조롱하려는 듯 범인을 발설해 버리고 태연자악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그렇게 전통적인 내러티브를 파기한 댓가로 그는 각각의 인물이 주는 시점과 사건 자체 - 비록 사건이 전면에 직접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 에 대한 비약적 강조를 획득한다. 이것은 마치 <네 멋대로 해라>에서 관객이 신문기사에 의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여기에서도 관객은 범인이 누구인지를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제는 각각의 인물의 시점이 되어 - 전반부에서 범인을 찾으려 할 때는 가능한 객관적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 도대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역추적할 수 있는 참여의 기회를 제공받는다. 말하자면 그는 전형적인 추리극의 내러티브를 빌어 새로운 형태의 추리극을 잉태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또한 교활한 플롯을 지배하고 있다. 여러 인물들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장치는 시간을 재구축하는 단선적 편린으로 구속되고, 좌표를 이루지 못하고 수직선 상에서 갈등하는 시간은 또다른 시간을 낳는다. 그렇게 유기적인 시간의 흐름은 단편적인 시간으로 재구축되어 마치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 사다리게임을 하듯 이쪽저쪽으로 전진한다. 하지만, 변질되지 않은 나머지 부분은 끔찍하게도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실제시간을 계승하여 대안 속의 복원이라는 명제를 만들어내고 그 명제 속으로 플롯을 유린한다.
내러티브와 플롯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체제는 또한 인물의 시점이 미치는 영향권 하에 속하게 되고, 그렇게 각 인물들의 시점에 따라 카메라에 잡힌 모든 것들은 미장센을 경이롭게한는 데 기여한다. 인물 사이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는 인물간의 거리는 카메라와 관객과의 거리에 근접해 있고, 장면마다 정밀하게 계산된 듯한 미장센은 인물마저 제어하여 연극적인 화면으로 이끈다.
 그리고, 이러한 연극적인 구도는 결국 영화를 다시 인물 중심으로 배치시킨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한 것은 모두 인물이다. 전체 사건의 단연 핵심부에 해당될 강도 사건은 어느 한 컷 조차 보여지지 않으며, 단지 관계에 관한 담론들만 난무하는 가운데 영화는 무조건 각자의 시점이 되어 - 혹은 관객의 시점으로서 - 사건을 진술할 따름이다. 그렇게 타란티노는 철저히 영화의 중심축이 되는 사건을 구류시키고, 관객들이 그 핵심을 파고들려는 사이에 모든 것을 외부에서부터 멋대로 뒤섞어 놓으며, 인물을 중심으로 시간을 해체한 뒤 제각기 배열하여 시점의 산란을 초래하는 등 혼란을 야기한다. 하지만, 방향성을 지닌 그 혼란은 제대로 된 길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 서두르거나 우물쭈물하지 않으며 너무도 차분하게 그 길을 따라 전진한다. 그리하여 영화는 시간의 흐름에 편승하여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곳은 어떻게든 이전 보다는 진일보한 공간으로 남는다.
인물을 보여주는 데에 있어서도 그는 리얼리즘을 바탕으로한 저속한 언어들의 남발 속에서 철저히 그들의 정체를 숨김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상태를 지속시키며, 그 대신 아무런 감정도 없는 듯하던 캐릭터들에게 그들 각자의 성격을 창조해줌으로써 아이덴티티를 부여한다. 이것은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넘나드는 구성 - 과거에서 인물의 성격을 창조하여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 과 자막까지 마련된 각자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시퀀스들, 그리고 그들의 대사 등을 통해 구현되며 그렇게 창조된 그들의 성격은 영화를 이끌어가는 추진력에도 공헌한다.
영화의 추진력은 또한 영화를 이끌어가는 여러 양식적 요소들의 영향력 하에 놓인다. 먼저 영화를 영화답게 하는 음악의 사용은 타란티노에게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제안하도록 유도하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빌리-K'의 수퍼사운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각각의 장면들과 교묘하게 모순되는 음악들은 반어의 미학을 소화해낸다. 여기에 덧붙여 안드레이 세쿨라의 감각에 충분히 빚지고 있는 촬영은 원색적인 화면과 인물간의 설득적인 구도 만들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으며, 빛을 최대로 흡입해낸 조명은 일반적인 창고의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대한 기대를 전복시킴으로써 리얼리즘을 포기하는 듯하지만, 대신 강렬한 이미지를 불러모으는 데에는 성공하여 영화를 이미지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인물과 함께 이미지는 영화의 중요한 코드로써 작동한다. 각각의 캐릭터들은 이미지를 양산해내고 그러한 이미지들은 캐릭터들에게마다 배당된 색깔이라는 기호에 의해 부축받는다. 이러한 색깔들은 인물들의 아이덴티티를 결정지어주는 제 1요소이고, 그리하여 결국 익명성 속에서 그들 각자의 이름 대신 관객에게 주어지는 서로 다른 색깔들은 화면 속의 뚜렷한 색조들 - 강조된 피의 붉은 색, 옷의 검은 색과 흰 색 등 - 과 더불어 다시 이미지를 소유한 영화의 주축인 인물들에게로 환원된다.
이렇듯 영화 속에서 내러티브는 플롯으로, 플롯은 미장센으로, 또 인물은 이미지로, 이미지는 다시 인물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연결고리로써 기능하고, 그 중 파기된 내러티브와 해체된 플롯, 그리고 계산된 미장센 등은 그의 스타일을 결정하는 데에 기여한다. 즉, 안정적인 거대한 고리 속에서의 파격이 전체적 성격을 대변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영화로써의 영화'라는 연결고리 속에서 <저수지의 개들>은 일련의 창조적인 영화들과 계보를 같이 하고 있다. 그리피스의 내러티브의 발명에서부터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에서 나타난 대안적 내러티브, 장-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이면의 실험 정신 등에서 영감받은 듯하며, 특히 스탠리 큐브릭의 <킬링>은 이와 유사한 가장 구체적인 플롯을 소유하고 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여러 영화들을 잡종, 활용하여 어느정도의 전통은 고수해내면서 동시에 충분히 자기만족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이들에게 존경심을 표한다.
더불어 <저수지의 개들>은 <펄프 픽션>의 모태로써, 필름 느와르를 중심으로한 각종 장르들의 컨벤션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며, 여러 영화들의 모티브를 동원하여 또다른 영화의 문법을 발굴한다. 그로 인해 <저수지의 개들>은 표현주의에서 기인한 철저한 리얼리즘을 바탕으로하는 리차드 린클레이터의 <슬래커즈> 유형의 세계와 함께 양분되는 인디펜던트 영화의 다른 경향으로 자리잡았으며, 실로 많은 지지자들의 텍스트로써 군림하고, 또한 그 독특한 신태그마는 여러 아류작들이 양산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렇게 타란티노의 영화는 인디 영화가 자본과 결탁하여 메이저로 부상하고, 메이저 영화가 인디 영화에게 그 소프트웨어들을 빚지고 있는 요즈음의 경향을 형성하는 데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필름 느와르 스타일의 부활과 각종 하이브리드 영화, 핏빛 내음의 영화들이 범람하는 현대영화의 조류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도 줄곧 출발선상에 있었으며, 그 흐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영화의 주변과 중심부의 두 축을 맴돌고 있는 중이다.
이와 같이 <저수지의 개들>은 형식과 양식적인 면에서, 또 영화사의 자리매김 속에서 하나의 고리를 창출해내고, 그것은 비틀어진 선형으로써 뫼비우스의 띠의 형태로 변환되며, 그 위의 중첩되지 않는 혹은 지각되지만 인식되지 않는 머나먼 길의 출발선상에는 다시 이 영화 <저수지의 개들>이 놓여지게 된다. 그렇게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이 창조한 선험적 질서를 바탕으로 함께 어울려 하나의 연결고리를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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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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