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 레오폴드> 남자가 아니라 신사가 필요해

리뷰

<케이트 & 레오폴드> 남자가 아니라 신사가 필요해 :::

윤현호 | 2003년 11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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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의 매력적인 신사(휴 잭맨)와 2001년의 캐리어 우먼(멕 라이언)이 벌이는 로맨스라... 시차를 어떻게 극복했냐고요? 그럴듯한 과학이론 하나면 타임머신 정도 준비하는 건 일도 아니잖아요. 적어도 <케이트 & 레오폴드>에선 말이죠. 어차피 과학적인 개연성 따위는 선남선녀의 로맨스에 묻히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소모품일 테니까요. 문제는 이 로맨스가 얼마나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느냐? 관객들을 얼마나 핑크빛 공상에 빠뜨리느냐 일겁니다. 글쎄요. 레오폴드 공작 때문에 여성 관객들의 남자보는 눈이 까다로워질 것 같긴 하군요. ㅡㅡ

남자가 아니라 신사가 필요해

승강기를 발명하게 될 레오폴드 공작은 가문을 일으키기 위한 맞춤 결혼을 해야 합니다. 그의 명예가 신부가 가진 재산에 달린 신세죠. 이런 그에게 일어난 깜짝 이벤트는 시간의 문을 통과해서 2001년의 뉴욕에 오게 된 것. 이젠 구식남자의 시대착오적 해프닝이 연달아 벌어지겠죠? 물론 로맨스도 함께...

하지만 영화는 그의 해프닝을 인스턴트 시대가 그리워하는 향수로 격상시킵니다. 양변기에 세면을 한다거나 자동차를 보고 기겁하는 식의 광대 짓은 레오폴드의 품위를 떨어트릴 뿐이거든요. 현대인들의 소비 욕구를 대변하는 CF의 주인공이 되는 에피소드처럼 레오폴드는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백마 탄 왕자님 노릇을 합니다. 과학 지식에 밝은 설정덕분에 100년 넘는 시차를 극복하고 현대인들에겐 삶에 대한 일장연설까지 하죠. 그야말로 시대를 초월하는 매력남 그 자체가 아닐수 없습니다.

영화는 마치 연애학 개론의 ‘신사되는 법’ 부분만 발췌한 듯합니다. <케이트 & 레오폴드>가 다루는 로맨스는 여성 관객들을 위한 판타지에 치우쳐 있거든요. 의자를 빼주고, 아침을 준비하고 로맨틱한 편지를 쓸 줄 아는 레오폴드는 남자가 아니라 신사입니다. 영화 역시 레오폴드의 활약에만 방점을 찍고 있고요.

레오폴드를 연기한 휴 잭맨 캐릭터가 워낙 선명했기 때문이겠지만 그것은 멕 라이언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도 해요. ‘멕 라이언 영화’로 만들지 못해 입지가 약해져 버렸거든요. 이미 광택을 잃어버린 이 보석은 영화에선 단지 남자 캐릭터에 끌려 다닐 뿐입니다. 커플 관객이 영화를 본 뒤 ‘레오폴드 같은 남자 없나?’라는 공격을 받았을 때 ‘케이트같은 여자 없나?'라는 반격은 어쩐지 궁색해 보이지 않나요?

<케이트 & 레오폴드>가 보여주는 시대착오적 매너는 시대가 변해도 사라지지 않은 가치들입니다. 딱딱한 격식에 갇힌 과거속에서도 얼마든지 되살릴 가치는 찾을 수 있죠. 글쎄요. 어설픈 타임머신 기계까지 동원해가며 일장 연설한 이 영화의 가치를 찾는다면 거기에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