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독: 사무라이의 길> Ghost Dog: The Way of the Samurai

리뷰

<고스트 독: 사무라이의 길> Ghost Dog: The Way of the Samurai :::

양유창 | 1999년 11월 01일
조회 2809

감독: 짐 자무쉬
출연: 포레스트 휘태커

도그마 3편 <미후네>는 <7인의 사무라이>의 스타 미후네 도시로에 관한 작은 에피소드에서 출발한다. 정신지체아인 형과 그를 사랑하는 동생은 어릴적 사무라이 놀이를 하며 자랐다. 그런가 하면 올해의 깐느에는 또하나의 사무라이 영화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고스트 독: 사무라이의 길>이 그것이다.

'고스트 독'은 중세 일본의 무사정신이 적혀 있는 "사무라이의 길"이란 책과 그 법도를 따르는 삶을 사는 미국 흑인의 이름이다. 아이스 큐브, 미니 미 처럼 고스트 독은 포레스트 휘태커의 예명으로 쓰인다.

포레스트 휘태커가 CD 한 장과 총 한 자루를 들고 차에 오른다. CD를 한바퀴 휙 돌리면서 자동차 스테레오에 꽂는다. 때로는 음울하고 묵직한 사운드가, 때로는 쿨한 트립합이, 또 때로는 포레스트 휘태커 자신의 색소폰이 흘러나온다. 우-탕 클란이 참여한 사운드트랙은 이 영화를 간직할 수 있게 해준다.

고스트 독은 옥상에서 비둘기와 함께 산다. 유일한 친구는 아이스크림 궁전의 프랑스인. 둘은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각자의 언어를 사용한다. 단지 느낌 만으로 무슨 말을 하는 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둘도 없는 친구지간이다. 우습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자무쉬는 농담하듯 영화를 찍는다. 하지만 그 농담 속에는 인간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예술적 기질과 낯선 세계에 대한 동경이 있다. <천국보다 낯선>의 여행, <다운바이 로>의 느림, <지상의 밤>의 다양한 삶, <미스테리 트레인>의 차가움, <데드 맨>의 조롱, 그리고 <고스트 독>은 "농담"이다. <데드 맨>의 조니 뎁처럼 고스트 독은 살인을 하고 일종의 경지에 이른다. 그것은 중세의 사무라이의 길을 따르는 경지다.

쿨하고 재지하고 느린 감수성이 화면을 감싼다. 포레스트 휘태커는 이전에 누구도 영화 속에서 킬러를 연기해보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간다. 사뮤엘 퓰러, 장-삐에르 멜빌, 오우삼, 마틴 스콜세지, 스즈키 세이준의 페르소나가 주변에 묻어난다. 그리고 고독한 킬러는 겁많은 자신의 주인에게 사살당한다. 자신의 주인을 끝까지 섬기는 것 - 사무라이의 길.

그 주인은 늙은 마피아의 일원이었다. <딱따구리> 같은 옛날 만화 보기에 열중인 마피아 할아버지들은 비둘기 외에는 도무지 존재 자체를 알 수 없는 의문의 흑인 킬러를 참을 수가 없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동료를 살해하는 실수를 범했다. 이제 할아버지들은 흑인놈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고스트 독은 생계수단인 총을 사무라이 칼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는 전문가다. 자신의 주인과 두목의 딸을 제외한 마피아 모두를 죽이고 친구 앞에서 쓰러진다. 그가 유품으로 남긴 것은 책 두 권 뿐 - "사무라이의 길", "라쇼몽".

사실 그의 죽음은 비장하거나 측은하지 않다. 그는 살 만큼 살았고 사는 동안 스스로의 길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살아남아야 할 때와 죽어야 할 때를 알고 있는 인간은 추악하지 않다. 시대를 초월하여 현대에 고대 법규를 따르고, 고대에 이미 현대를 예견한 적지 않은 사람들. 아쉽게도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 시간을 재단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고스트 독 혹은 짐 자무쉬처럼 그들의 시대를 각각 영적인 공간에, 혹은 스크린 속에 담음으로써 자신의 길을 지켜나갔다.

짐 자무쉬가 되기. 올해 선댄스 영화제 출품작 중에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가 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존 말코비치를 고유명사처럼 사용함으로써 그의 연기에 경의를 표했다. 그렇다면, 매번 그럴 듯하게 뉴욕이라는 도시를 탈색해온 짐 자무쉬. 그리고 그의 최고걸작일 <고스트 독>. 이 영화는 천재 영화감독에서 무정형의 작가로 나아간 짐 자무쉬가 되기 위한 지침서가 될 만하다. 충분한 자격이 있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양유창 님의 다른 기사 보기 >>

<< 양유창 님과의 대화

Readers' Comments

내 의견 쓰기

More Articles to Explore

<딥 블루 씨> 살아난 상어의 악몽 (1999/11/01)

<매트릭스>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1999/05/11)

<고스트 독: 사무라이의 길> Ghost Dog: The Way of the Samurai (1999/11/01)

<큐브> 근대? 악취미? 편지? 혹은 한 인간의 나불거림 (1999/11/01)

<엑스파일>과 음모이론: 90년대를 살다보니... (1999/10/01)

기사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