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 김기덕 감독은 왜 그랬을까?

리뷰

<해안선> 김기덕 감독은 왜 그랬을까? :::

강병융 | 2002년 12월 10일
조회 3061

김기덕 감독은 왜 그랬을까?

제가 이 영화, <해안선>을 보면서 계속 든 생각입니다.
사석에서 김기덕(A) 감독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의 영화는 반추상(半抽象) 영화이다’ 그 말을 들은 뒤, ‘아, 구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의 영화를 봐서는 안되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나니 자연히 다른 영화들을 보는 시선과는 다른 시선으로, 다른 잣대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려고 노력하게 되었답니다. 그럼에도, 제가 부족한 탓인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면 항상 수많은 의문부호들이 머리 위를 둥둥 부유하곤 했답니다. 이번 영화도 예외가 될 순 없었습니다.

첫째, 왜 군인인가?

김기덕 감독은 전작 <수취인불명>에서 미군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 이력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미군이 아닌 국군입니다. 보병도 아닌 해병의 이야기입니다. 왜 김기덕 감독은 군인을 주인공으로 삼았을까요? 제가 보기엔 군인은 힘의 상징이자, 억압의 알레고리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군대라는 소재, 군인들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김기덕 내면의 억눌림, 더 나아가 사회의 억압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거기에 남북문제까지 엮어 좀 더 효과적으로 주제를 보이고자 한 것 아닐까요? 우리나라에서 군인의 이미지는 밝지 않습니다. 어둡고 우울하고 음침함에 가깝습니다. 어때요? 어둡고 우울하고 음침한 것, 바로 김기덕 영화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군요. 그러고보니 김기덕 영화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의 직업군으로 군인만한 것도 없군요.

둘째, 왜 비현실적인가?

<해안선>이라는 영화는 검증 없이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리얼하기를 완전히 포기한 영화 같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해병대 내에서의 생활 정말 엉터리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군인들은 하극상을 밥먹듯이 하고, 외출인지 외박인지 알 수 없지만 마구 부대 밖으로 나가고, 총은 남들이 가져가라고 방치하고, 무슨 일만 있으면 비밀로 덮고… 해병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가만히 있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이 밖에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김기덕 감독은 왜 검증하지 않았을까요? 김기덕 감독이 원하는 반추상이 바로 이런 비현실적인 것들까지 포함하고 있을까요? 전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환상적인 내지는 추상적인 무언가를 통해서 자신의 메시지를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면, 환상성이나 추상성을 극대화하려는 부분 이외의 부분에서는 철저히 현실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강조하고자 하는 환상성과 추상성이 돋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해안선>에서 보여준 다른 모든 것이 철저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면, 미영의 기행(내지는 발작)이 더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이번 영화에도 김기덕 감독은 자신이 편한대로 한쪽 발은 구상에 다른 한쪽 발은 추상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느껴지는군요.

셋째, 왜 노골적으로 잔인한가?

제가 김기덕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잔인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화 속에 잔인, 잔혹함은 슬프면서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그는 그렇게 노골적으로 잔인할까요? 예컨대 수류탄을 맞은 남자 친구의 떨어져나간 팔을 꼭 들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마지막 장면에서 왜 장동건은 행인을 찌를까요? 아니 감독은 왜 행인을 찌른 장면은 명백히 보여줘야 할까요? 잔혹미학이나 폭력미학이라는 말은 있지만 그것이 반듯이 노골적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혹시 김기덕 감독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관찰보다 상상이 더 리얼하다는 사실을.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프리재즈를 듣는 듯 합니다. 어찌 들으면 음악 같지도 않고, 어찌 들으면 심오한 무언가가 있는 듯한.

그럼에도 전 김기덕 영화를 계속 볼 것입니다. 프리재즈도 계속 들으면 귀가 열리듯이 그의 영화도 계속 보다가 보면, 의문점들이 풀릴테니까요.

강병융
오넷콜맨, 살바도르 달리, 무라카미 하루키, 이제하, 장 비고, 키애누 리브스, 정성일, 쿠엔틴 타란티노, 무라카미 류, 이무영, 존 드 벨로, 김영하, 로이드 카우프만, 장정일, 디지 길레스피
- 상기 거명된 자들을 한꺼번에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마시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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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s' Comments

	역시나 다 같군요 egoist2718(최경희) - 2002/12/25

	저는 김기덕 작품을 보면 폭력의 미학이라는 말이 정말 가장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그가 왜 폭력을 집착증 환자처럼 매 영화마다 쓰는 이유를 모릅니다..그의 영화는 다 보았지만 언제나 추상적인 그의 말처럼 언제나 내 맘대로 답을 적고 또 지웁니다... 추상은 답이 없는 거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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