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큰일냈다, 큰일났다 :::

이종열 | 2002년 09월 12일 조회 3502
내가 올해 가장 기다려왔던 영화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하 <성소>)이였다. 때문에 두근거림이 심해져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했으며 간만에 나타난 강한섭 씨(영화평론가, 서울예대 교수, 장선우 지지자)를 시사장 앞에서 보았을 땐 도둑질하기 전의 쿵쾅거림이었다. 모두가 장선우의 문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공개.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생뚱 맞게 '목포의 눈물'이 흐른다. 레코드판의 소음까지 전달하는 그 노래와 어우러지는 무성영화 같은 풍경은 재밌게도 처절하다. "라이타 사세요. 라이타요…". TTL소녀 임은경이 지시된대로 착하게 움직이며 라이터를 팔고 있다. 아무도 라이터를 사주려는 사람은 없고…. 신파조로 시작된 이 도입부는 장선우 감독이 앞으로 펼칠 대장난질, 대유희판을 예고한다.
장 감독은 <성소>에서 한 치도 100억을 갖다바친 제작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작가적 열망과 해소에 바친다. 때문에 영화는 일반사람들이 이해하기엔 다소 난해한 코드로 점철되어 있다. 여기선 규정되어왔던 모든 것이 해체되고 새로 쓰여진다. 장난감총이 레이저 총이 되는 것이나 그것이 다시 고등어로 변하는 것 그리고 온갖 영화가 패러디 되는 것이 그렇다. 장선우는 정말 신나게 장난치고 즐기고 있다. 장난을 통해 평론가도 엿먹이고 관객도 엿먹이고 제작사도 엿먹이고 한국사회 전체를 엿먹이고 있다. 그는 참으로 징그런 예술가요 몽상가다. 그가 따로 살만한 국가가 필요할 정도다.
이런 그의 영화를 이해하려 들려는 것은 골치 아프고 어리석은 짓이다. 그저 즐기면 그만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함이 무엇이었던가. 영화의 말미에도 등장하는 '모든 모습을 모습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본래 모습을 볼 수 있다(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라는 금강경의 한 구절과 같은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문제는 즐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모습을 모습이 아닌 것으로 보기란 오래도록 길들여져 온 존재인 인간에겐 힘든 일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영화를 만든 장선우는 저만치 앞서가는 감독이다. 그래서 그는 즐겁고 외롭다. 앞으로 장선우에게 돈을 대줄 제작사가 있을까? 돈벌어 오랬더니 예술을 하는 감독에게 기꺼이 투자를 할 거인이 있을까? 나라면 돈을 대주지 않겠지만 그의 영화가 보고싶어 또 끙끙거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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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열 *취미-비디오 테잎 모으기, 영화일기 쓰기
*해보고 싶은 역할-엑파의 멀더
*내 인생의 영화-수자쿠
*이상형-스컬리+강철천사 쿠루미
*좋아하는 배우-소피마르소, 줄리 델피, 전지현, 조재현, 김유미
*감독-이와이 슈운지, 장선우, 에밀쿠스트리차, 키에슬롭스키, 기타노다케시
*싫어하는 것-아프다는 말, 로빈윌리암스 출연 영화, 가루약, 교복이 어색한 꼬질꼬질한 여중생, 스페이스 A의 루루, 양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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