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를 켜라> 박정우식 코믹, 이젠 식상하다!

리뷰

<라이터를 켜라> 박정우식 코믹, 이젠 식상하다! :::

강병융 | 2002년 07월 22일
조회 3920

<주유소 습격사건>이 나왔을 때, 관객들은 양분되었다.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으로 그 좋고 싫음은 비교적 명확했고, 확고한 편이었다. 작품의 질과 상관없이 흥겨워하는 파가 있었는가 하면, 반면 ‘그것은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거품 문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난 즐거웠다. 그 영화는 분명히 즐거운 영화였다. 적어도 나에겐.

<신라의 달밤>은 어떨까? 이 역시 즐거운 영화였다. 역시 적어도 나에겐. 김상진, 박정우 콤비가 만든 업그레이드 <주유소 습격사건>이라 불릴 만했다. 우선, 배우들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두 작품에 다 출연한 이성재는 전작에 비해, 놀랄 만큼 떴다. 그리고 차승원 역시 이미지 변신을 통해 즐거움을 줬다. 그리고 김혜수의 왈가닥 연기 역시 사람들을 신나게 했다. 그리고 그 외의 사악 발랄한 조연들, 이원종, 성지루, 김영준, 이종수 역시 흥겹게 했다. 그들은 이제 모두 주연급 배우가 되었지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말 그대로 정말 감초 배우들이었다. 게다가 박반장(조상건 분)은 나오기만 하면, 관객들이 웃어버리는 캐릭터가 되었다. (나중, 한동안 한국 코믹 영화에는 의례 이런 류의 인물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예를 들면, <달마야 놀자>의 김영준이 맡은 고시생, <두사부일체>에서 이유 없이 등장하는 누드 청년, <공공의 적>에 나왔던 녹음하는 정부요원, 이들은 그냥 나와서 웃기는 일만 한다.)

결국 앞서 말한 영화 둘은 즐거운 난장이 벌어지는 영화였다. 알다시피 두 영화 모두 마지막에 거의 모든 출연진이 한 장소에 모이는 형국을 보였다. 그리고 솔직히 처음에는 이런 류의 결말이 생경했다. 물론 그 생경함은 즐거웠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내심 기대되었다. 그런데 세 번째라면?

<라이터를 켜라>의 감독은 장항준이다. 그는 방송작가였고, 시나리오 작가였다. 그의 연출작은 소문으로도 들은 적이 없고, 보지도 못했다. 아무튼 처녀작으로 <라이터를 켜라>를 선택했다. 혹은 <라이터를 켜라>에게 선택 받았다. 하지만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라이터를 켜라>는 연출가를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라이터를 켜라>의 얼굴 마담 역은 박정우 작가의 몫이었다. 어떤 면에선 이 영화는 박정우의 것이기도 하다. 장항준 감독에게는 미안한 말이겠지만. 장감독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만큼 신인으로서 매끄럽게 연출했다는 뜻도 되겠지만. 나 같은 문외한은 이 영화를 김상진이 만들었다고 우기면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왠만한 관객들도 다 그렇지 않았을까?

각설하고, 그런 시각으로 보면 이 영화는 더욱 실망스럽다. 박정우 작가는 반복 재생산의 이제 조금 지루하고, 어떤 면에서 제 맛을 잃었다. 전술한 것과 같이 박정우 작가의 작품들은 사람들이 모인다. 결국 난장판으로 결말을 맺는다. 그리고 모이는 사람들의 구성원은 주로 경찰과 깡패가 된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역시 그런 식의 결말이었다. <라이터를 켜라> 역시 같다. 중간에 깡패들과 경찰들의 대대적인 집합이 한번 있고, 결말부에 역시 한바탕 소동과 더불어 난장이 벌어진다. 더군다나 약간은 <다이 하드>적인 모습도 독창적이지 않다. (사건은 처리한 히어로는 군중들 밖에서 한숨을 내쉬며, 여유를 부린다.) 또한 <신라의 달밤>에서 보여주었던, 엘리트 조폭과 깡패급 선생의 재미난 대결 구조와 별 차별성을 찾아볼 수 없는 허접 백수와 조폭의 막부가내식 대결도 식상하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앞서 제작된 영화의 등장인물들인지라 더욱 식상하다. 역할 바꾸기를 했을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역할 바꾸기 조차 안했다. 한국 영화계에 워낙 배우가 없는 탓도 있지만, 그 전에 캐스팅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정형화된 것을 이용하여 쉽게 가려는 발상이 데뷔하는 감독에게 적합한 것인지 의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욕이나 쌍소리로 웃기는 형식까지 같다. <주유소 습격 사건>의 경우, 당시 유오성의 대사 ‘대가리 박아’ 수준의 욕이 나와서 관객들을 웃겼지만, 이번 <라이터를 켜라>의 욕은 웃음 전에 협오감을 주기도 한다. 극중에서 주로 욕은 찐바(이문식 분)가 다 도맡는데. ‘대가리를 뽀개서 골을 쪽쪽 빨아 먹는다’는 식이나, ‘창자를 꺼내서 줄넘기’를 한다는 식의 말장난은 주제의식에도 부합하지 않고, 결코 재미있지도 않다. 새롭지도 않다. 그리고 찐바의 캐릭터를 설명하는데도 적합하지는 않는 듯. 혹 리얼함을 위해서라면, 욕을 막하는 것이 리얼하게 만드는 요소는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전에 나왔었던, 조폭 영화들, 예컨대 <넘버 3> 같은 경우,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지만, 리얼하다. 쌍욕은 <투 캅스>에서 시작되었고, 요즘에 조폭물의 범람으로 극에 달하고 있지만, 그것이 너무 과용되는 것은 욕을 사랑하는 나로서도 이해할 수 없다. 찐바의 욕은 확실히 욕을 위한 욕, 웃기기 위한 욕이다. 찐바의 욕하는 장면을 보면서, <4발가락>의 바텐더와 웨이터가 생각났다. 이제 폭력과 욕설로 웃기려는 음모는 사라져야 한다. 또한 한정된 공간이라는 점 역시 반복된다. <주유소 습격사건>에서는 말 그대로 ‘주유소’, 그리고 <신라의 달밤>에서는 조금 확장된 ‘경주’라는 지역 그리고 <라이터를 켜라>에서는 ‘기차’ 등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역시 뭔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다행히 <선물>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닫혀 진 공간에서 몇몇의 이야기가 벌어진 공간에서 군중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은 처음 접한 사람에게는 즐거울 수 있지만, 다른 것을 기대하는 자들에게는 곤욕이다. 마치 처음 잔치를 벌이는 사람과 자주 잔치를 벌이는 사람의 차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박정우가 자주 보여주었던 밀어 붙치기식 이야기 구성(한마디로 막나가는 이야기), 직설적이고 원색적인 욕설, 오버된 캐릭터의 과잉 등은 이제 조금씩 식상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처음에는 그만큼 즐거웠다. 그러나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으로 이미 충분히 박작가의 능력을 표현된 것 같다. 차리리 <선물>처럼 변주하거나,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박정우식 코믹 영화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박작가는 이제 감독으로 입봉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과연 그가 연출한 작품은 어떻게 나올까?

<라이터를 켜라>를 보고 분명히 실망했지만, 난 또 그에게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다. 분명히 그를, 아니 그의 세계를 좋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또한 장항준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그 역시 좋은 시나리오 작가였던 만큼 그가 직접 쓴 작품으로 다음에 연출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강병융
오넷콜맨, 살바도르 달리, 무라카미 하루키, 이제하, 장 비고, 키애누 리브스, 정성일, 쿠엔틴 타란티노, 무라카미 류, 이무영, 존 드 벨로, 김영하, 로이드 카우프만, 장정일, 디지 길레스피
- 상기 거명된 자들을 한꺼번에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마시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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