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 2002년 한국영화의 불안한 출발 :::

이종열 | 2002년 01월 01일 조회 3357
<아프리카>는 2002년 한국영화의 불안한 출발을 보여준다. 창작정신 없이 기존의 유행만을 모자이크한 이 작품은 심각한 수준이다. 게다가 이 영화가 신인 아닌 <수탉> <얼굴> 등의 호소력 짙은 사회성 영화를 연출했던 중견감독, 신승수의 작품이라는 것은 심히 유감이다.
그를 짓눌렀던 압박감은 무엇이었을까? 역시 흥행에 대한 부담감이 제일 컸을 것이다. 영화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는 누더기처럼 깁다 만 흔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우연히 갖게된 총으로 인한 여자들의 애환(?)을 담은 <아프리카>의 기본 골격은 조나단 캐플란의 94년작 <나쁜 여자들>을 따른다. 여성버디무비가 전무한 한국영화계에서 이 영화는 좋은 교본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 최근의 <미녀 삼총사>는 <아프리카>를 제작하게끔 하는데 결정적인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프리카>는 잘만하면 뜰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진화된 감각없이 그저 몸에 좋을 것만 같은 타영화의 장점만을 가져다 깁는, 무모함을 저지름으로써, 아주 볼품없는 영화 한 편을 양산해 냈다. 도대체가 영화의 구심점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영화는 <신라의 달밤>과 <조폭 마누라>, <주유소 습격사건> 등의 가십적 농담을 주저리는데 온 신경을 모은다. 주유소를 털러 간 이요원이 박영규와 나누는 농담이나 성지루의 입으로 <신라의 달밤>을 논하는 것이 그렇다. 이런 것이 저급한 유머의 일부로 쓰이면서 영화의 질은 한참 낮아진다. 거의 이런 식이다. 느닷없이 조폭이 등장하거나, 약발이 달았다 싶으면 변보는 소리나 먹을 것에 가래침 뱉는 원색적 행위로 위기를 모면하는. 그러나 이처럼 아무 이유도 없이 흥행영화를 논하고, 조폭 소재를 긴급 수혈하고, 화장실 유머를 차용하는 것은 이 영화의 정체성만 궁금케 만들 뿐이다.
패러디하려면 더 적극적으로 패러디하던가, 망가지려면 확실히 망가져야 한다.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자세는 그 자체로 끝이다. <아프리카>는 어땠나? 무엇을 지향했는가! <7인의 새벽>(김주만 감독)처럼 확실히 망가짐을 보여주었나? 혹시 연결이 잘 되지 않은 부분에선 무시하기나 시치미떼기로 넘어가지 않았나?
신승수 감독 스스로는 이 영화를 만족하고 자신 있어 하는지 새삼 궁금하다. 나는 이번 작품은 아무리 봐도 그의 작품이 아니라고 본다. 시간이 더 흐른 뒤, <엽기적인 그녀>와 같은 쿨한 감성을 들고 나온 곽재용 감독처럼 재기에 성공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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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열 *취미-비디오 테잎 모으기, 영화일기 쓰기
*해보고 싶은 역할-엑파의 멀더
*내 인생의 영화-수자쿠
*이상형-스컬리+강철천사 쿠루미
*좋아하는 배우-소피마르소, 줄리 델피, 전지현, 조재현, 김유미
*감독-이와이 슈운지, 장선우, 에밀쿠스트리차, 키에슬롭스키, 기타노다케시
*싫어하는 것-아프다는 말, 로빈윌리암스 출연 영화, 가루약, 교복이 어색한 꼬질꼬질한 여중생, 스페이스 A의 루루, 양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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