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의 크리스마스>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랑 :::
정종구 | 2000년 0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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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는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랑을 시작하고 있다
1. 정원이 어렸을 때
그는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난 텅빈 운동장에 혼자 남아있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모두 어디론가 사라질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자신도.
2. 사랑
작가들은 영화속에서, 자신이 만나고 이루고 싶어했던 사랑을 적어나가면서, 항상 꿈꾸어오던 이상형을 그려나가면서 자기만족을 이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사랑이란건 생각보다 훨씬 유치하고 생명력이 없다. 누군가 말했던가? 생체학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느낌이 절실하게 이어지는 기간은 2년이라고. 그 이후부터는 그 사랑에 식상해하거나 헤어짐을 꿈꾸고, 다시 새로운 누군가를 영화처럼 만나는 것을 꿈꾸지만 그저 현실에 만족하며, 또는 포기하며 살아가는 거라고.
 그래서 가장 가슴을 저리게 하고 아름다워보이는 사랑은 짧은 순간 불꽃같이 사랑하다가 그 사람의 변한 모습이 남기도 전에 자신에게서 떠나버리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죽음앞에서 사랑은 그 생명과 아름다움을 더해가고 그 사랑이 떠나고 나면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 자신안에 남기 때문에.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한석규의 대사가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더욱 공감이 가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2시간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고 나오면 재미는 있지만 허탈해지는 영화가 있다. 그런가하면 마치 현실의 다른 인생속을 살다나온 기분이 드는 영화도 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그랬고, 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도 그랬다. 술을 마셨으면 2차를 가고, 오줌을 갈기려면 가끔은 나오지 않아서 고생하고, 경찰서에서 난장도 부려보고, 가끔은 햇볕드는 마루에 앉아 발톱을 깍는 이 영화가 바로 그랬다. 리모콘 작동법을 모르는 아버지에게 공손한 가르침대신 버럭 화를 내고는 버르장머리없이 문을 쾅 닫고 나가고, 다시 빼내려는 편지는 끙끙대다가 오히려 안으로 밀어넣어져 버리고, 밥먹다가도 주차 단속원이 뜨면 일제히 일어나 뛰어나가는 그런 영화.
영화다 생각하면 지루하다 싶지만 어제 내가 했던 행동을 영화속의 주인공들이 하고 있을 때, 공감할 수 있는 그런게 이런 영화들의 매력이다. 액션이나 스릴, 반전 하나없는 영화에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공감을 주는 영화. 그래서 난 이 영화를 사랑한다.
3. 죽음
 죽음이란건 그렇게 무서운게 아닐지도 모른다. 가슴아프거나 슬픈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의 제사상에 놓을 영정 사진을 이쁘게 찍으려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어 넘기는 할머니나 자신이 사라지고난 공간을 대신할 아버지를 위해 기계 조작법을 하나하나 백지에 적어 두는 정원에게선 죽음의 공포는 찾아 볼 수 없다. 어쩌면 우린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지도 모른다. 죽음은 또 삶의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자신은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살아 남아 있을 것이고, 그것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꺼내어지고 눈물을 먹을 테니까. 더불어 죽는 이도 많은 사람들과의 추억들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간직한 채 떠나갈 수 있다. 그래서 죽음은 오히려 아름다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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