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한일 민족감정? 깨부셔버렷!

리뷰

<고> 한일 민족감정? 깨부셔버렷! :::

성재원 | 2001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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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날개를 활짝 펴고 자신의 꿈을 일구어가는 젊은이의 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게 억누르는 역사적, 사회적인 굴레를 젊음의 패기와 차가운 이성으로 깨부수고 비상하는 젊은이의 모습은 눈부시다.

그 눈부신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반항적인 눈매를 띤 심상찮은 녀석이 있다. 권투선수인 아버지로부터 받은 정신적 육체적 훈련덕분에 탄탄한 몸과 굽히지 않는 주관으로 무장하고 있다. 겁없는 녀석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퍽 감당하기 힘든 장애물이 있다. 녀석에게는 한(韓)민족의 피가 흐르지만 한국말보다 일본어를 훨씬 자연스럽게 구사하며, 일본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서 호흡하는게 쉽다. 그는 재일교포 4세다. 한국인, 일본인.. 어느쪽을 선택하고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그 녀석에게 한민족, 일본인같은 구분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것을 이유로 차별과 불평등을 양산해내는 주위환경일뿐이다.

영화 고(GO)는 일본사회에서 살아가는 재일교포 4세들의 이와같은 정체성과 삶의 문제의식을 담아낸 원작소설 고(GO) - 2000년 나오키상 수상 재일교포 3세인 가네시로 가즈키 작 - 의 진수를 그대로 흡수하고 그것을 기초로 역동적인 화면과 웃음, 눈물을 샘솟게 하는 영상으로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에게 반세기를 짓눌러온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버리라고 자극하고 있다. 기성세대가 주인공이었다면 영화가 무겁고 어두웠을테지만, 젊은이가 주인공이었기에 영화는 생기발랄하며 긍정적이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오랜 역사적 경험으로 체화된 차별의식을 피해자들인 사자머리의 반항적 재일교포 신세대 청년 스기하라(이정호)와 일본인 소녀 사쿠라이를 통해 멋지게 극복해내고 있다.

영화의 주제는 명확하지만 그것이 구체화되는 과정은 단순하거나 감상적이지 않다.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으며 자칫 왜곡될 수 있는 민족간의 갈등문제를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것은 우선 같은 처지인 정일이라는 친구와의 우정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친한 정일이 우발적인 사고로 일본인 청년들에게 살해당했을때 다른 재일교포 친구들은 그 살인범에 대한 린치를 가하려고 했지만 스기하라는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정일이가 원했을 방식을 택한다. 즉, 그 사건의 원인을 민족감정을 근거로 한 일본인의 차별, 억압에 돌려 일본인과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은 구태를 반복하는 것이며 그런 문제를 사회의 법과 제도에 일임하는 것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재일교포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피해의식과 원망으로부터 먼저 자유로와함을 역설하고 있는 부분이다.

두번째는 사쿠라이와 사랑하는 과정에서 겪는 사건을 통해 한국인과 일본인의 내면을 모두 조망하고 있다. 서로에 대해 호감이 생긴 후 사랑을 키워가다가 결국 처음 육체적 관계를 맺는 장면에서 스기하라는 그동안 숨겨왔던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에 사쿠라이는 처음 겪는 성관계를 앞두고 갖는 두려움과 부모님으로부터 주입받은 재일교포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지 못하고 만다. 여관의 침실에서 서로 사랑하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을 두고서 다가서지 못하는 젊은 연인의 모습에 관객은 쓰라린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젊음은 강하고 젊음은 비합리적인 관습, 편견을 용납할 수 없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에 스기하라는 사쿠라이를 향해 "내가 누군데? 내가 어떤 사람인데?" 하며 자신의 존재를 묻는 물음을 포효하며 국적, 민족의 구별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또한 사쿠라이는 재일교포라는 관념은 하잘것 없는 것이며 스기하라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여 사랑을 고백하고는 구세대의 편견을 던져버린다. 보통 장애물을 극복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은 그간의 받은 상처와 고통으로 눈물, 콧물 범벅이 되기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스기하라의 포효와 사쿠라이의 신실한 고백과 발랄함이 조율되어 오히려 통쾌한 느낌이 든다. 오... 캡 짱이다..

아울러서 일본사회의 한국인 차별을 다루기 때문에 옳지 못한 일본인의 모습만을 부각하기 쉽고 그 가운데 과거의 역사적 경험이 없는 일본 신세대의 의식이 왜곡되거나 재일동포 내부에 있는 또다른 편견을 은폐할 위험이 있는게 사실이다. 영화 고(GO)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상당부분 고민을 한 흔적이 보인다. 재일동포들은 조총련계 학교나 민족학교에 진학을 하는게 일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인공 스기하라는 스스로 어떤 구분되어지는 것에 저항을 하고 "넓은 세계로" 라는 구호를 외치며 일본 고등학교로 진학할 결심을 하게된다. 그 사실을 알게된 보수적인 선생으로부터 "민족 반역자"라는 욕설을 들으며 구타를 당하는 장면은 재일동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어떤 패쇄성이나 국수적인 부분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과거에 누가 상처를 주었는가에 대한 책임의 소재는 역사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그 판단을 분명히 해야겠지만, 그 상처에 매몰되어서 변화하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체 자기 안에만 갇혀 있다면 스스로에게 해만 되지 않겠는가? 주인공의 아버지는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제공해주는 힘든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쟁중에는 일본인, 전후에는 조선인, 그리고 하와이에 가기위해 마지막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아버지의 엽기적인 국적 변경은 아들인 스기하라에게 보다 자유로워지라는 암시였을것이다. 일본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연출로 뜬금없이 웃기는 소재가 바로 이 아버지와 아들간에 벌이는 격렬한 권투씬이다. 좋은 마음에 이 부분을 재일동포 구세대와 신세대간의 거리를 좁히는 그런 소망을 담은 행위라 보고 싶다.

심각한 주제까지 받아 안고 있는 영화 고(GO)는 또한 아름답고 아기자기 에피소드와 영상으로 영화보는 즐거움을 증폭시켜준다.스기하라가 지하철 철로에서 벌이는 치기어린 "슈퍼 그레이트 치킨 레이스", 사쿠라이와 스기하라가 도로의 하얀 중앙선을 오랫동안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 농구장에서 재일동포라 왕따를 하는 일본친구들하고 일대다로 싸우는 무모하기 그지 없는 장면, 싸움짱 토너먼트전. 권투로 얽혀진 아버지와의 자잘한 에피소드 등.. 장면 하나하나가 귀엽고 재밌기 그지없다. 갑자기 이와이 순지 감독의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를 떠올린다. 일본에 사는 이민자들의 정체성을 다루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참으로 슬픈 삶의 모습이 아름다웠던 영화로 기억한다. 아마도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이와이 감독의 조감독으로 작업했던 경력에서 그 이유를 찾을려면 찾을 수 있을까? .

한일 양국 공동기회과 양국 스탭, 배우들의 공동참여의 성과 영화 고(GO)에 만족한다. 현재 일본사회에 거하는 수많은 스기하라와 사쿠라이들이 과거의 상처로 형성된 내적 외적 관습들을 거침없이 깨부셔 버리고 마음껏 활개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