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방> 평균보다 아래의 삶이 주는 감동 :::

강병융 | 2001년 11월 02일 조회 3155
<라이방>을 보았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택시 운전사들의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유명한 배우도 나오지 않고, 요즘 흔해빠진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도 붙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스타 감독의 작품 역시 아닙니다. 예술성으로 똘똘 뭉친 영화도 아닙니다. 그냥 즐기는 영화라고 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런데 전 이 영화가 참으로 좋습니다. 왜냐구요? 이 이야기는 평균보다 아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요즘 우리나라의 영화들은 너무 극단적이고 너무 독특한 것들만 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를 간만에 만나게 되었으니, 당연히 즐겁고, 온당히 좋을 것이지요.
최근 흥행 몰이를 하고 있는 <조폭 마누라>와 <킬러들의 수다>를 보세요. 이게 어디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까? 물론 그러한 네러티브 속에도 리얼리티는 담겨 있지만요. 또한 독특한 상상력과 위트는 인정하지만, 솔직히 우리들 삶의 이야기를 아니라고 할 수 있죠. <엽기적인 그녀>는 너무 세련되고, 너무 젊은이들의 냄새가 나는 영화구요. 물론 이런 영화도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신라의 달밤> 역시 극단적인 코메디입니다. 근 수개월 동안 엽기적이고, 극단적인 한국 영화들이 영화판을 점령한 듯 합니다. 그것이 영화적으로 혹은 영화 산업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든 아니든 그것을 둘째 문제입니다. 이제 조금은 식상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라이방>은 조금 색다릅니다. 마치 옆집 웃기는 아저씨를 만난 기분입니다. 아시죠? 약간 머리 숱 없고, 산전수전 다 겪은 그런 옆집 아저씨요. 음담패설부터 어설픈 신세대 흉내까지 내시는 그런 분. 그런데 알고 보면 아픈 과거와 애잔한 사랑의 추억을 간직하신 그런 분. 예, <라이방>을 본 저의 기분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 아저씨와 자주 혹은 매일 만나 술을 마시고 말동무가 된다면, 당연히 답답하고 구시대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가끔 그런 아저씨들과 한잔하면서 인생사에 대해 한 수 배운다면 즐거운 일 아닐까요? 그래요, <라이방>을 본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라이방>은 제목의 느낌 그대로 세련된 척 하지만 세련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세련되고 싶지만 세련될 수 없는 인생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라이방>을 보면서 즐거웠습니다. 신나게 웃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관을 나와서는 계속 웃지 못했습니다. 대신 자문했죠? '정말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있을까? 그렇다면 내겐 몇 번의 기회가 지나갔을까?'
덧말 : <라이방>은 세련되게 포장할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이 나옵니다. 첫째, 유혹, 둘째, 자동차, 셋째, 속도감을 겸비한 추격전, 넷째, 범죄 바로 이 네가지 요소가 주요 키워드라고도 할 수 있죠? 마치 이것들만 들으면 헐리웃 범죄 영화 같죠? 하지만 <라이방>은 한국 영화랍니다. 그리고 중간보다 약간 못한 사람들의 삶을 다루고 있죠? 영화를 보시기 전에 한번 상상해 보세요? 유혹, 자동차, 속도감, 범죄가 장현수식으로 어떻게 용해되어 보여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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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병융 오넷콜맨, 살바도르 달리, 무라카미 하루키, 이제하, 장 비고, 키애누 리브스, 정성일, 쿠엔틴 타란티노, 무라카미 류, 이무영, 존 드 벨로, 김영하, 로이드 카우프만, 장정일, 디지 길레스피
- 상기 거명된 자들을 한꺼번에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마시고 싶은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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