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폭 마누라> 아무리 오락 영화라도 그렇지 :::
박우진 | 2001년 10월 05일
조회 7373
한국 영화계에 '조폭'의 돌풍이 계속되고 있다. 모 영화의 제작발표회에서는-홍보전략으로- 앞서 만들어졌던 조폭 영화를 낱낱이 열거하며 자신들의 영화가 그 계보를 잇는 작품임을 자랑스레 강조하더라. 이렇듯 조폭 영화가, 항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처럼 난립하고 있는 가운데 탄생한 또 한 편의 영화가 있으니, 바로 <조폭 마누라>이다.
이제까지의 조폭 영화가 피가 튀기고 폭력이 난무하는 그 세계를 마치 사내들만의 의리가 충만한 현장처럼 묘사했다면, 그래서 주로 남자관객들의 불끈 쥔 주먹에 적중했다면, "오오, 저것이 바로 여자들은 모르는 남자들의 의리지." 그들만의 카타르시스를 뽑아냈다면 이 영화는 뭔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폭'이라는 문화코드가 그닥 달갑지는 않다만 그래도, 국내 초유의 '여자 조폭'이 등장하는 영화가 아닌가.
하지만, 이 영화는 가부장적 사고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고리타분한 시각을 보여준다. 남자들만의 세계에 뛰어들어 부두목이 되기까지, 그리고 부두목의 자리를 지켜나가면서 은진(신은경)이 여자로서 숱하게 부딪혀야 했을 정체성의 진정한 고뇌따위는 기미도 없다. 가끔 생각날 때마다 '여자는 이래서 안 된다니까.' '너도 여자 보스 모시는 거 뒤틀리냐?' 따위의 폭언을 늘어놓긴 하지만, 그 부조리함은 단지 남성 중심 사회의 여성을 향한 폭력에 그치고 있을 뿐 은진의 대항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은진은 여성을 압박하는 현실을 격파하고 새로운 길을 터나가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을 남성으로 단련시킴으로써 현실에 순응한다. 즉 은진은 남성 사회에서의 여성이 아니라, 허울만 여성인 남성 캐릭터인 것이다. 이 영화는 단지, 우리가 남성이 쥐고 있다고 생각한 주도권-특히 폭력과 섹스에 있어서-이 여성의 얼굴로 나타날 때 그 상황이 얼마나 우스울 수 있는지 만을 열심히 보여준다.
 영화의 가부장적 사고는 '결혼'이라는 상황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은진이 결혼하기 위하여 벌이는 에피소드를 살펴보면, 마치 조폭 은진의 과장된 무례하고 과격한 행동들만이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남성성의 전부이며,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것처럼 그려진다. 또한 남성이 베푸는 '결혼의 시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개중에서도 가장 다소곳하고 상냥한 여성성을 지녀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은진과 수일의 결혼 생활을 조명하는 카메라는 그녀가 남편을 위해 된장찌개를 끓이는 부분을 가장 행복한 순간처럼 묘사한다. 마치 집 밖을 떠돌던 여성이 방황을 끝내고 돌아와야 할 곳은 부엌이라는 듯.
페미니즘에 대한 잘못된 인식 중 하나가, 여성의 해방이 여성의 남성화와 동일하게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폭 마누라>는 이러한 거짓 페미니즘을 바탕에 깔고 은진을 무리하게 남성화시킴으로써 플롯을 풀어나가더니 결국 결혼 문제에 부딪히자 한계를 느끼고 케케묵은 가부장적 사고를 드러내는 영화이다. 제작자 서세원이며, 주연 신은경의 당부처럼 '이 작품은 그냥 오락 영화이니까 즐겁게 보자'는 주문을 아무리 머리 속에 누누히 주입해도 즐겁기는커녕 되려 씁쓸해지는 것은 단지 내가 한국 사회를 답답해하는 '여자'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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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우진
시간이 가파르고, 섬뜩한 세상의 기운이 산산이 부서져 맨 몸에 사근사근 부대낄 때.
공기의 파편이 폐와 심장을 예리하게 질러대서 도무지 숨쉬기조차 버거울 때.
긴 한숨으로 아득하게 내리 감은 얇은 눈꺼풀에 아련하게 떠오르는 영상.
'나를 닮은 당신'에게 나누는 '우리를 닮은 영화'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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