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놀리아> 삶의 균열된 틈으로 비추는 인생의 햇빛

리뷰

<매그놀리아> 삶의 균열된 틈으로 비추는 인생의 햇빛 :::

손정호 | 2001년 09월 18일
조회 2651

어느 날 저녁. 나는 그 날 오후에 친구와 친구의 여자친구를 만났다. 늘 어느 사람에게서 안식을 찾지 못하고 상처만 받던 나의 수호천사는 무지 행복해 보였다. 나는 너무 너무 기뻤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창 밖을 내다보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그 날 저녁.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생각을 되새겼다. 그 친구는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그런 양아치 정도로 보인다. 사람들은 항상 그를 그렇게 생각하고 대한다. 잘 놀고, 잘 잊는, 그런 가벼운 인간으로... 하지만 내가 알게 된 그는 상처가 많았다. 그리고 그의 눈은 너무 맑았다. 교복을 입고 담배연기를 내뿜어도 그는 피터팬 같았다. 하지만 그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알게 된 것이 있었다. 그의 주변이 그가 그런 식으로 있는 것을 싫어했다는 것을...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어느새 슬픔을 감추고 눈물을 삼키는 법을 배워버렸었다. 그것은 그제까지 내가 알아온 가장 슬픈 이야기 중의 하나였다. 그것을 알고 난 뒤로 난 그 친구 앞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추악한 나의 모습부터, 버림받은 이야기까지. 나라는 인간 안에 존재하는 가식적인 가면들을 모두 팽개쳐 버리고자 노력했다. 물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터득해 버린 내 생의 보호막을 벗기는 데에는 그 친구 자체의 영향도 컸다. 하여튼 나는 내가 그런 관계를 가진다는 것에, 정말이지 미치도록 기뻤다. 그래서 나는 기도를 했다. "신이시여! 저는 당신의 심장을 도려내어 당신의 제단 위에서 당신을 위해 불태우겠습니다. 저의 제물을 받아 주십시오!"-픽션이 가미된 저의 이야기입니다-

삶의 균열된 틈으로 비추는 인생의 햇빛

매그놀리아. 우리의 삶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너무나도 많은 균열을 안고 있다. 그러한 균열은 어찌하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모두 다르기에 생기는 운명적이고 당연한 결과일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식으로 생겨 나와 너에게 박히는 서로의 파편들이 전혀 상대의 안에서 곪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의 고통을 느끼기에는 너무 바쁘고 너무 바라는 것이 많다. 하지만 눈을 돌리면 몇몇은 파편이 깊게 박혀 썩어진 자신의 흉터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누가 안아줄까? 그리고 그런 비명이 도처에서 들린다고 하여도 우리는 고작 그곳에 앉아서 자신의 흉터를 핥는 것이 대다수의 경우일 것이다. 그것은 죄악이다.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크나큰 죄악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매그놀리아"에서 그러한 우리의 뒤통수에 박힌 죄악을 눈앞으로 끄집어내어 보여 주려한 것이라고 느껴진다. "매그놀리아"에는 7명의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생의 파편이 가슴에 박힌 인간들이다. 그들은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생이 극으로 치닫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설정됨으로서 그러한 자신의 파편의 존재를 느끼고, 자신이 상대에게 쏘아버린 삶의 파편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너를 인지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들의 사이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인물들 사이의 관계이다. 신문의 영화 평을 보면 "매그놀리아"를 일곱 가지 에피소드 내지는 일곱 명의 하루 동안의 이야기라 하고 있는데 그건 상당히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는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매그놀리아"를 보면 각기 다른 주인공들은 서로에게 얽혀있다. 톰 크루즈와 그의 죽어 가는 아버지, 돈을 보고 결혼한 그의 아내... 퀴즈쇼의 사회자와 그에게 성폭행 당한 그의 딸과 그 딸을 사랑하게 되는 순진한고 평범한 경관... 예전의 퀴즈쇼의 챔피언인 동성애자와 지금의 챔피언인 아이... 언뜻 보면 이들은 세 가지의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세 가지의 그룹 또한 하나의 공동체로서 엮어져 있다. 일단 이건 "매그놀리아"를 세 번째 보고 나서 알게 된 것이지만 그 퀴즈쇼의 후원자는 톰 크루주의 죽어 가는 아버지의 소유회사라는 자막이 올라간다. 이런 것은 감독이 시나리오를 쓸 때(토마스 앤더슨은 시나리오도 직접 쓴다) 넣은 고리이리라 생각된다. - 물론 감독은 관객들이 한번에 그것을 알아차리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동성애자 챔피언은 퀴즈쇼가 수십 년간 계속된 프로라는 것을 통해 그가 그 프로의 챔피언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그들은 그런 식으로 전자의 사람들과의 고리가 생긴다. 한마디로 그들의 상처는 그들을 오가는 것이며 어느 한 곳에서 싹튼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그런 설정으로 통해 "매그놀리아"는 "아메리칸 뷰티"와 비교하여 인류적인 이야기를 논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다음은 퀴즈쇼의 장수이다. 오줌을 싼 아이의 입으로 감독은 세상을 향해 외친다. 그 외침은 영화 속의 현재만을 보고 외친 것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퀴즈쇼가 장수하였다는 것은, 퀴즈쇼의 진행자의 가면인 쇼가 장수하였다는 것은 우리의 아픔과 어긋남이 보다 근원적이고 오래된 것에서부터 생겨난 것이라는 것을 얘기해 준다.

그렇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이 모든 슬픔들. 어찌하면 그러한 것들은 인간이라는 우리가 탄생할 때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모두 다르다. 그것은 우리에게 개성이라는 축복이 될 수도 있지만 너와 내가 하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크나큰 고통의 근원일 수도 있다. 마치 사방 1m간격으로 뿌려져 사방의 유리 속을 살아가는 점들인 것만 같다. 우리는 그러한 불완전함을 이겨나가기 위해 많은 것들을 생각해 내었다. 하나를 예를 들어 얘기를 하자면, 그 중에 하나가 종교라고 생각한다. 그래... 신-종교의 신-은 위대하다. 하지만 인간은 더욱 위대하다.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가장 가깝고 아름다운 길은 내 안의 너와 네 속의 나를 끄집어내어 끌어안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신을 믿어도 진심으로 믿는다면 그러한 곳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종교의 신이 아닌 정말의 신을 제대로 믿고 다가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고 범인으로서는 쉽게 보여지는 길이 아닌 것은 사실인 거 같다.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종교의 신을 위해 투자했던 시간과 열정을 바로 옆의 보잘것없는 너에게 쏟았다면 우리는 보다 절대적인 너라는 신에게서 위로를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커다란 성전을 짓기 위해 헌금을 하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정치가의 선거를 위해 돈을 내기보다는 굶어 죽어 가는 걸인에게 한끼의 식사를 준비하는 게 훨씬 현명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결국 말하자는 것은 인간의 슬픔을 배제한 행위에는 인간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것들을 위해 관심을 쏟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인간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이 가야한다는 것이다. 부수가 주체가 되는 곳에서 주체는 죽어 간다.

"매그놀리아"의 후편 부에서는 개구리비가 내린다. 영화 안에서도 액자의 글귀를 통해 암시되었듯이 영화에서 그것은 너라는 존재를 끌어안지 못한 우리의 죄악에 가해지는 징벌이다. 하지만 영화 속의 암시가 성경에서 인용된 것이기는 하나 그것을 종교적인 것으로 귀결시키는 것은 잘못이라 생각한다. 대체적으로 느끼기에 서양인들의 머리 속에는, 우리의 머리 속에 불교나 유교의 관념들이 무의식중에 들어 있듯이 크리스트교라는 것의 관념들이 들어 있다고 본다. 그러한 징벌의 형태는 조금 더 신선하면서도 근본을 자극할 수 있고 인류 전체적이며 신화적인 신비로움의 효과를 낳는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개구리비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습니까 라는 질문에 그냥 멋있게 보여주려고 라고 답하였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영화 속의 개구리비를 영화를 보는 나 또한 맞았고 우리도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한번도 누구의 가슴을 아프게 하거나 추한 짓을 해보지 않은 사람을 없을 거다.

개구리비는 파괴한다. 하지만 새로운 것들을 낳는다. 끝까지 자신의 죄를 부인한 퀴즈쇼 사회자는 개구리에 맞아 죽고, 톰 크루즈는 아버지를 만나 흐느끼고 퀴즈쇼 진행자의 딸과 어머니는 만나고... 이 부분에서 오줌을 싼 퀴즈쇼 챔피언 아이가 아버지에게 던지는 한마디가 있다. "저를 사랑해주셔야만 해요" 나는 이 대사가 가장 슬펐다. 하지만 아버지는 돌아눕는다. 그래... 불완전한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것은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 아버지에게 강간당한 여자에게 경관은 손을 내민다. 이 부분의 대사는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이 영화의 핵심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래... 우리는 완전히 서로를 포함할 수는 없어, 하지만 나는 너의 손을 잡아줄 거야, 이리로 와, 왜 거기에 있어, 나의 손을 잡아, 내가 너에게 또 상처를 줄지도 몰라, 나는 인간이니까, 하지만 나는 너의 아픔을 안아줄 거야, 덜 슬프게, 덜 아프게, 우리는 그래야만 해."

그렇다. 우리는 그래야만 한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려 했던 것은 이런 것이리라 생각한다.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그런 불완전함 속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 영화는 다소 균열된 삶을 어두운 화면들로 이어가지만 어둠 속의 한줄기 햇빛은 너무나도 찬란한 것으로 보인다. 내게 들어오는 햇빛 한줄기. 그것은 인간이기에 낼 수 있는 빛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다보고 나는 두 시간 동안 울었다.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나를 생각하고 너를 생각하고 우리를 생각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울먹거리며 사랑한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사랑할 것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이 바라는 것처럼... 그것이 불가능하다 하여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할 것이고 노력할 것이다. 나는 인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