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효정 감독의 '인디안썸머'는 그가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했던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로"의 연장선상에서 읽혀지고 감상되어야 할 영화이다. 법정에 가정 불화로 서 있는 이신영(이미연)의 모습은 원미경의 옹골찬 여성의 그것과 어느 정도는 다르지만 그 축은 많이 다르지 않다. 물론 '인디안썸머'는 전형적인 법정드라마는 아니다. 거기다가 사회성도 결여되어 있다. 감독이 밝혔던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의 미진한 법정부분의 보완이라는 측면은 어느 정도 갖추어 졌는지는 몰라도 영화를 안내하기에는 여전히 미진하고 취약한 모습이다. 하지만 장르적 특성에서 여성에 관한 소외를 다뤘다는 점은 어느 정도 타당한 명분을 지니는 듯 하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짜깁기 한 영화의 흔적은 도처에서 발견되는 이 영화의 맹점으로 작용한다.
샤론스톤이 출연했던 영화 "라스트 댄스"의 신디와 릭을 연상하게 하는 서준하(박신양)와 이신영(이미연)의 이룰 수 없는 사랑과, 영화 "야망의 함정"의 미치 맥디어(톰 크루즈)를 그대로 닮아 있는 서준하의 캐릭터 설정은 달아도 한참을 달아있는 장력 안에서 감독이 무엇에 새로움을 부여하고 노력했는지 영화를 위한 별스러움을 찾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영화를 보는 내내 주위를 더욱 어둡게 조망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극중에서 부패한 최회장의 변론을 거부하는 서준하를 보면서 한국적 변호사의 기질을 조금씩 느껴보는 것도 괜찮았지만 그것 역시 식상함 그 자체였다. 왜 항상 불을 뿜듯 고집스런 정의감을 앞장세워야 하는 것인지 놀라울 정도의 일반화에 주눅이 들어버릴 지경이었다.
더욱이 감독은 법정드라마와 멜로라는 두 가지 주사위를 굴리면서 영화를 교묘하게 조합해 나가지 못한 혼란스러움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가시킨다. 영화는 1시간의 법정드라마와 나머지 40분의 사랑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40여분의 사랑을 느끼게 끔 만들어 주는 연결고리는 매우 취약하다. 감정의 이입 정도로 어물정 넘어가기에는 아무래도 설명이 부족하다. 단지 우습게 생각해 본다면 피고인의 미모에 반했다고 밖에는 생각해 볼 다른 도리가 없다. 그것은 서준하의 캐릭터를 반감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며, 감독 자신이 박신양이 그 전작에서 보여준 멜로의 남성전형을 그대로 안이하게 차용해 왔다는 빈축을 사기에도 충분한 소지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서준하가 이신영을 경찰의 포위망에서 탈출시키는 장면은 어거지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이 영화의 극한이다. 법정드라마라는 과대 포장을 한 순간에 벗겨 버리고 스스로 마스터베이션 에 몰두하는 상투성의 무한을 질주하는 아이의 생떼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덮어주고 묵인하기에는 그 수법이 너무 유치하다. 탈출의 과정을 도와주는 양아치들의 등장 또한 디즈니의 가족영화를 떠오르게 하는 어색한 무안함에 제목이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인디안썸머'는 중구난방으로 수다떨며 왁자지껄하게 아무런 개연성 없이 보기만 하면 별 탈 없는 영화다. 그러나 이야기의 기승전결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무리수들은 이 영화가 내세우는 갖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도통 영화 자체를 사랑할 시간을 주질 않는다. 그것은 이 영화가 멜로드라마라는 분류에 속해 있으면서도 새로운 이야기의 전형을 찾는 요즘의 추세에 편승하여 법정드라마라는 수법을 차용하여 이야기의 외줄타기를 시도한 탓으로 결국은 낙마를 우려한 까닭에 이도저도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한 엉성함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시각적 이미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끝임없는 교감을 유도해내야 성공을 이룰 수 있다. 영화라면 말이다. 그 교감에는 동정, 동경, 동행이라는 3요소가 절묘하게 동승해야 관객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마스터의 권한을 얻는 것이다.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리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혹은 미혹하는 마스터의 화려한 능력일 것이다. 그 능력의 정점에서 길게 호흡을 다시 한번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 곧 '인디안썸머'로 변화되길 바란다.
윤상열 아..아름다워라....
여..여자가 그렇게 보일 때...
사..사내는 그 여자를 본다...
아..아직도 모르는가 그대는...
여..여태 깨닫지 못했는가...
사..사랑은 당신에게 허용되지 않는 유일한 삶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