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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란>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


양유창 | 2001년 04월 21일
조회 4133


외로움은 무능력과 낯선 땅에서 시작된다. 무능력하고 나이들면서 후배들에게 무시당해 외로운 이강재(최민식). 낯선 한국땅에서 생면부지의 남편을 그리워하며 고된 노동에 외로운 파이란(장백지). 그들은 영화 속에서 딱 두 번 마주쳤을 뿐이다. 살아서 한 번, 죽어서 한 번. 파이란은 강재가 살고 있는 인천까지 찾아와 그를 만나려 한다. 하지만, 강재는 경찰에 체포되고 그때 둘은 우연히 마주친다. 이 장면은 파이란이 죽어 영안실에서 강재와 만나는 장면과 교차편집되어 있다. 강재는 비로소 파이란의 얼굴을 본다. 삼류인생, 국가대표 양아치, 삼십줄이 넘도록 변변히 제 능력으로 일 해본 적 없는 무능력자를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그녀. 그녀가 죽기 전까지 떠올리며 그리워했던 남자 이강재.



그녀는 고아였습니다. 유일한 혈육을 찾아 한국으로 왔지만, 이미 이민 가버린 그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살아야 했습니다.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어느 세탁소에서 마음씨 좋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픕니다. 그렇게 순수하고 예쁜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는 <카라>로 적지 않은 실망을 안겨주었던 송해성 감독의 두번째 작품 <파이란>은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카라>에 비해 훨씬 세련되고 사실적인 연출이 돋보입니다. 비록 후반부가 질질 끌려다니는 느낌이긴 하지만, 필자가 눈물 흘리는 데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홀로 죽어가는 스물 넷의 여인. 아무도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아무도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아무도 그녀가 어떻게 와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갔는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영화를 슬프게 합니다.

구성 또한 독특합니다. 마치 <번지점프를 하다>처럼 영화는 이분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강재의 일상을, 후반부는 파이란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두 개가 전혀 다른 이야기같아 전환점에서 약간 혼동스럽긴 하지만, 오히려 그게 이 영화의 매력입니다. 한참동안 삼류 양아치였던 인간 이강재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또, 그렇게 달라짐으로써 파이란의 사랑이 유효하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초반부에 전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장백지는, 하지만 이 영화의 모든 것입니다. 신데렐라풍 드라마의 진짜 착한 캐릭터처럼, 그녀의 맑은 영혼은 욕으로 물들어 있는 이 영화의 전반부를 정화시켜줍니다. 정말 도태된 한 인간의 추악한 사생활을 엿보았던 관객이 영화가 끝난 후 그런 기억을 말끔히 잊고 단지 사랑과 죽음만을 기억하는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이 영화에 장백지가 없었다면 <파이란>도 없었을 것입니다.

2001년 상반기, <번지점프를 하다> 이후 모처럼 좋은 한국영화를 만나 기분이 좋습니다.



외로움이란 감정은 혼자서 편지를 쓰는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언어로, 이국땅에서, 사진 속의 그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그리고는 부치지 않는 것이다. 아니, 부치지 못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감정은 잘 드러나지 못하니까. 정말 좋아하는 감정 뒤에서 그 사람은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니까. 하지만, 정말 외로움이란 것은 누군가 자기를 사랑해주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을 때 찾아온다. 부치지 못한 편지를 그녀의 죽음 후에 받는 그리움.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발견할 때의 서글픔. 그는 허공만 바라보며 신음할 뿐, 남겨진 감정의 잔재들만 소복히 쌓여 있는 바닷가에 그 외로움이 묻어 있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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