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몽> 처음부터 잘못된 게임

리뷰

<천사몽> 처음부터 잘못된 게임 :::

윤상열 | 2001년 0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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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기획되고 투자되기 시작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영화 한 편이 줄 수 있는 여러 이익창출의 모델들을 제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 영화가 가장 기본적인 목적대로 흥행과 여론몰이에 성공해서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느냐, 집중시키지 못했느냐에 따라 영화와 공생관계에 얽혀 있는 산업들의 부흥까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영화 '천사몽'은 캐스팅부터 관객들의 호흡과 시선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성진(딜문-딘)역을 맡은 여명의 국제적인 인지도와 상품성, 남홍(딜문-로제)역의 박은혜가 가져다 주는 공중파 방송을 통한 친근함, 이세신(딜문-샤닐)으로 분한 윤태영의 대중적이고도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특성, 여기에 쇼쇼역으로 임한 이나영의 폭넓은 인기도는 '천사몽'이라는 영화 자체가 가져다 주는 홍보효과와 더불어 영화의 관객몰이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관객의 시선을 빼앗을 것이고, 관객의 기대에 찬 호흡까지 조절할 수 있을 듯이 보인다. 적어도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기다렸던 상영시간 10분 전 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면 나면 상황은 최악으로 뒤바뀐다.

현대판 '단적비연수'의 업그레이드로 변전한 영화 '천사몽'은 딜문이라는 특수한 전생 공간을 기본으로 그 골격을 세우고 있다. 영화 속에서 딜문을 구경하다 보면 그 조악한 셋트에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게임의 데모 버전에서 오프닝 그림을 보듯이 투박한 전경 처리는 내부로 들어설수록 유치함의 끝을 알 수 없는 부실에 경악하기 일보 직전에까지 다다른다. 다른 곳으로 관심사를 돌려 영화에 대한, 특이나 우리 영화에 대한 애정을 보듬길 원한다면 아예 이쯤에서 포기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는 -여명의 더빙 사실을 차후에 따져 묻더라도-여명부터 주연으로 포스터를 도배한 단 한마디의 대사를 갖고 있는 이나영까지 모든 걸 엉성하게 덮어 버린 느낌이다. 차라리 70년대 반공만화 영화의 성우들을 데려다가 목소리를 더빙했어도 무방했을 지경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줄거리를 나열하는 것은 이 영화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 영화가 '천사몽게임'으로 출시된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진(여명)이 전생체험의 공간으로 빠져드는 순간 이 영화의 주무대인 딜문(Dilmoon)이 열리기 시작하는데, 영화는 이 부분부터 게임프로그램을 설명하기에 딱 좋은 인물과 구성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영화의 모든 것은 성진의 전생체험으로 끝나 버린다. 영화의 2/3를 차지하는 이 부분을 두고 감독은 어떻게 뻔뻔하게 결말을 오려 붙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결말조차 게임의 마지막 레벨을 유치하게 치루어 내는 듯한 착각을 유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사랑의 이야기라는 애초의 설명은 다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결국 시공간이라는 영화적 개념은 게임의 맵 수준의 지리멸렬한 크기로 오그라들고, 전생과 후세 거기다가 윤회까지 아우르는 복잡한 구성을 사랑이라는 구도에 걸쳐놓으려는 발상은 애초의 불순함과 부실함, 거기에 배우들의 기본적인 연기력까지 부재해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한낱 휴지조각으로 날려버리지나 아닐지 걱정될 뿐이다.

게임엔 리플레이가 있지만, 영화는 복제예술이라는 고답적인 선언에도 불구하고 리플레이가 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출발부터 그릇된 항로를 선택했음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Z. 사랑이라는 것을 그 무언가와 조합하려면 엄청난 내공을 필요로 한다. '광시곡'은 사랑+액션을 천사몽은 사랑+SF를 택했다. 하지만 제작은 블록버스터였고, 배우들은 사랑에 이미지에 부적합했다. 둘다 사랑>장르의 형식으로 영화를 몰고 들어갔지만, 주행에는 실패했다. 장르영화에서는 사랑을 설정하고 즐기기만 할 뿐, 몰입하기는 아무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