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리 폴스> 죽거나 혹은 동침하거나 :::

윤상열 | 2001년 02월 10일 조회 2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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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는 영화 자본을 확대 재생산해 주는 창구이다. 그 일련의 도정이 유쾌하게 뒤범벅된 또 한편의 영화가 출현했으니 바로 '체리 폴스'다. 트윈 픽스가 가져다 주는 음산한 마을의 으스스함부터 스크림의 10대 슬래셔 전통까지 혼합시키고, 싸이코의 전통적인 장르적 답습까지 마구 들이밀고 갈아 만든(?) 공포영화의 법칙 알아가기의 순서를 배우는 공동의 장(場)을 연출해 놓은 것만 같은 영화. 하지만 여기에는 또 한 가지 첨가해야 할 것이 있다. 스스로 유머를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는 점이다. 관객들에게 벽에다 씹다 남은 껌을 붙여 놓았으니 알아서 심심할 때 다시 단물이 나오는지 씹어 보라고 권하는 모양새를 취하고선 말이다. 그렇지만 남이 먹다 남은 음식물을 다시 즐기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인기척 없는 어느 숲 속,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두 남녀 앞에 나타나는 살인마. 그리고 이어지는 여자의 비명. 사지가 나뭇가지에 묶인 여학생의 시체에는 '처녀(virgin)'라고 새겨진 칼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흥분과 두려움이 목덜미까지 차고 올라와서 가슴에 난 솜털을 곤두세울 지경까지 첫 장면의 컨셉은 여타의 유사장르의 영화들과 다를 바가 없다. 섹스에 몰입하는 두 남녀, 이걸 지켜보는 살인마의 시선, 하지만 이 영화에는 유별난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숫처녀들만 골라서 살인을 저 지른다는 것. 공포영화에서 여성에 관한 도식적인 상품성을 극대화한 부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회의 고정관념에 대한, 순결에 대한 일방적인 강요를 풍자해 보고 싶다는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살인마의 처녀성에 대한 고지식한 무모함의 출발은 너무도 안이하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의 보안관 브랜트(마이클 빈)는 자신의 딸 조디(브리트니 머피) 또한 살해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감지하고, 각별한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나 연쇄살인이 계속됨에 따라 브랜트는 마을회의를 열고 주민들에게 살인마는 숫처녀만을 살인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얘기하게 된다. 이 때 우연히 학교에 남게 된 조디는 살인마에게 쫓기게 되고,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 조디가 밝힌 살인범의 인상착의가 25년 전 마을 학생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사라진 '리사 셔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나이트메어'에서 프레디가 출생하게 된 배경은 윤간이다. 70년대 이후 미국의 공포영화는 두 가지 사조를 띠게 된다. 하나는 여성의 방어적인 지위에서의 성 역할 변화이며, 슬래셔(slasher)영화에서의 역할분담이다. 그러나 이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의 대부분은 강간을 복수하려는 여성들에게 치중되어 있었다. 프레디가 출생한 80년대는 레이건의 신보수주의 정치 논리가 공포영화의 진보적 성향을 퇴저시키며, 그 대항으로 엉뚱하게 10대로까지 살인의 범위가 확산된 시기였다. 이때 제작된 갖가지 공포영화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내세웠지만 한결같은 음산함은 여성의 성기 언저리에 자리잡고 있는 듯이 보였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가설로서 내세운 '여성의 성기 기관에 대해 신경이 예민한 남성들은 음흉한 음모를 꿈꾸고 있다는 심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것과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한 것이다. 이에 새로운 변수항으로 떠오른 것이 90년대의 '스크림'이였다면, '체리 폴스'는 80년대의 그 고리타분한 해석에 다시금 귀를 기울이게 하려는 짓궂은 의도가 섹스를 코미디화 하려는 헐리웃의 분위기와 맞물려 제작된 경우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 결국 처녀들만 죽이겠다는 얄궂은 코드만 이리저리 써먹어 볼 뿐인 것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를 그대로 닮아 있는 맨 마지막 장면은 '사이코'에서 노만이 그랬듯 이중성격자인 레오나르도(제이 모어)를 배치시키지만, 다중적인 성격의 복잡 미묘한 자기 분열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자기 어머니(리사 셔먼)가 자신을 성 폭행한 친구들 중에서 브랜트를 사랑했었다는 엉뚱한 사실을 늘어놓으면서 관객들에게 아버지 세대의 위선에 가득찬 이면을 파헤치겠다면 영화의 풍자적 지점에서 한 발 물러나는 양보(?)의 미덕까지 선사하는 순간을 연출한다. 이것으로 이 영화는 코미디도 아니며, 공포도 아닌, 그렇다고 옛 공포영화들에게 오마쥬를 바치는 성의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디까지가 처녀들이고, 어디까지가 처녀성을 잃어버린 것인지 엉뚱한 선문답 같은 영화의 말초적인 컨셉에 관객들은 끝가지 정신을 빼앗겨 버릴 것만 같은 영화다. 그 꼬리를 물지 않고, 뛰쳐나가는 행동을 두고 아마도 사람들은 이렇게 조롱할 것만 같다. "너 처녀 아니지"라고 말이다.
p. 이 영화의 팜플렛 맨 뒷장에는 생존을 위한 10계명이란 글귀가 쓰여 있다. 열 번째 결구가 우습게도 이렇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직도 처녀일 경우 '나 처녀 아니야'라고 거짓말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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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상열 아..아름다워라....
여..여자가 그렇게 보일 때...
사..사내는 그 여자를 본다...
아..아직도 모르는가 그대는...
여..여태 깨닫지 못했는가...
사..사랑은 당신에게 허용되지 않는 유일한 삶이란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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