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를 하다> 기다림에 관한 영원한 변주곡

리뷰

<번지점프를 하다> 기다림에 관한 영원한 변주곡 :::

윤상열 | 2001년 01월 30일
조회 3088
스크랩 1

딸꾹질의 첫 순간

회교 신앙의 근본인 '코란'에는 윤회와 환생의 개념에 관해 이렇게 언급되어 있다. "신이 생명을 창조했고, 생명은 거듭거듭 태어난다. 신에게 돌아올 때까지...."

1983년 국문학과 82학번 서인우(이병헌)는 조소과에 다니는 같은 학번의 인태희(이은주)와 우연히 우산을 함께 쓰게 되고, 그녀에게 첫 눈에 반해 버린다.

"내가 당신에게 마법을 걸었어요. 이 새끼손가락처럼"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그들은 서로간의 약속을 정한다. 그것은 플롯 안의 복선이 될 수도 있으며, 정형화 된 감성코드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소울메이트의 인지 방법 가운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서로의 기억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조건반사에 관한 충분한 토대를 기본으로 행해지는 깨달음의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또한 인우와 태희가 산 속에서 비빔밥을 먹는 숟가락을 쳐다보며 숟가락의 양면에 관한 이야기를 나룰 때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숟가락의 양면처럼 오목과 볼록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하나로 그들을 매개해 주는 소울메이트의 연결 고리로 생각되는 플롯 안의 이중 복선으로 집어넣어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초반부의 수업 내용 중에 은연중에 내재되어 있던 '절묘한 대칭'에 관한 잘 짜여진 포맷으로 알아 둘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동성애와 소울메이트가 가져다 주는 엄청난 어감의 차이를 김대승 감독 스스로 연출상의 해법으로 풀이하려는 절충에서 나온 답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그것이 어떻게 보여지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도 없다. 다만 동성애는 육체적인 관계의 편견의 덩어리이며 - 우리나라에서의 관습상 정서만 놓고 본다면 - 소울메이트는 영혼의 공감이라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이해되는 부분의 차이가 크다. 물론 둘 다 올바른 해석과 편견 없는 바라봄이 중요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상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대로 있어줘. 그러면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지" 소울메이트는 운명과 인연에 얽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서 유독 사랑에 관련된 임상보고가 많다. 그것은 자각하고 인지하며 깨닫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고 느끼게 해줄 수 있는 힘이 사랑이라는 영원 불멸의 테마밖에는 인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일까, 그러나 운명과 인연은 항상 다른 축으로 사람들의 인생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그 모든 원류에는 사랑이라는 시류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을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인생일 것이기 때문이다.

"알아버리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까봐 겁나요." 사랑을 한다는 것과 사랑을 느끼는 것의 차이. 사랑을 한다는 것은 사랑을 알고 있다는 얘기가 되고, 사랑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서 사랑을 느끼는 것은 사랑을 알고 싶다는 욕구와 사랑을 경험하고픈 마음이 서로 충돌을 거듭하면서 갖게되는 묘한 설레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태희와 인우는 사랑을 하지도, 사랑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들은 사랑의 정의에 휩싸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애정에 관한 시선에서 멀리 떨어진지 오래다. 태희가 죽었다는 것. 현수라는 17살의 소년이 인우의 소울메이트라는 것. 결국 알고 보면 그들은 사랑의 굴레에 둘러 싸여 있지만, 우리들이 말하는 사랑을 한다는 것도 사랑을 느낀다는 것도 태희의 죽음과 함께 끝나버린 셈이다. 소울메이트의 문제는 사랑 이후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갖게 끔 하는 대목이다.

"너만 찾아 다닐꺼야" 준비 없이 떠난 이별. 예고도 하지 않고 사전에 기별도 없었던 무책임한 사람. 그렇게 잊어 가는 수순을 밟아왔던 인우에게 이 말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17년의 간극을 두고 기억 속에 묻혀 왔던 첫사랑의 그림자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주문의 전령으로 생각하지는 않을까, 혹시나 저어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태희를 알아본 인우의 잘못일까, 인우를 알아보지 못하는 현빈(태희)의 아둔함 때문일까, 이 모든 오류들을 섭렵하고, 수정하며, 억측들을 반박하고, 다시 한번 순진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이 되돌아올 때 인우는 혼잣말로 뇌까리기 시작한다.

한 마리 새처럼 자유로운 비행을 꿈꾸듯이 현빈과 인우는 뉴질랜드 어느 이름 모를 계곡 어딘가의 번지대에서 신에게 돌아갈 길을 찾아 낙하를 시작한다. 이제는 서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곳으로 안내할 인도자를 만나기 위해서.....

덧붙이기: 개인적으로 사회적 관습과 학교라는 제도권 내의 이중적인 관습에 둘러싸인 영화의 후반부를 조금 답답하게 느꼈는데, 아마도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를 봄이 오는 소식쯤으로 산뜻하게 느끼지 못할 구석이 있다면 동성애를 소울메이트와 혼동하는 나의 아둔함을 탓하는 수밖에 없겠다. "번지점프를 하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나 같은 아둔한 족속들에게 동성애와 소울메이트의 차이를 확연하게 겉으로 드러나게 얘기해 주어야만 할 것 같다. 이 영화는 놓치기 아까운 사랑의 알레지가 듬뿍 발라진 당신의 지금, 나의 지금과 함께 하는 과거와도 같은 영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