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사랑해야 할 순간
글: 양유창
2000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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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의 소심함
그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비좁은 아파트 셋방살이. 같은 날 이사온 그들은 자주 마주쳤다. 하지만 그것은 의례적인 만남이었다. 그는 그녀를 처음부터 사랑할 수는 없었다. 그는 신문사에서 일한다. 그녀는 어느 회사에서 경리일을 한다. 각각 부인과 남편이 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의 것과 같은 핸드백과 넥타이가 서로의 남편과 부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말한다. "인생은 짧은데.. 새로운 것을 향해 살고 싶다"고. 새로운 사랑. 상대방에게 자신의 파트너를 빼앗겨버린 동병상련의 만남. 하지만 그들은 으례 그저 그런 속물들은 아니다. 아니,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 남의 눈을 피해다닌다. 그들의 소심함. 자신의 남편 혹은 부인과 달리, 그들은 결백하다고 주장한다. 서로 이별연습에서도 가슴 무너질 만큼 사랑하고 있었으면서.
2. 미장센
낡은 아파트, 붉은 커텐이 둘러쳐 있는 호텔 2046호, 옛 가요 '화양적연화'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카메라는 건물 안에 갇혀 있다. 좁은 공간을 비추는 카메라는 현미경 같다. 인물의 내면심리를 꼼꼼히 비추는 현미경. 그가 외로울 때 카메라는 멈춰 있고, 그녀가 흔들릴 때 카메라 역시 흔들린다.
영화의 처음, 이사 오는 아파트 장면. 필자는 색감에 반했다. 아파트의 벽과 그녀의 얼굴과 그 뒤로 비치는 햇살이 만들어내는 색깔. 보라빛이 도는 그 색깔은 중국의 붉은 색과 홍콩의 푸른 빛을 섞어놓은 듯한 색깔이다. 비가오는 골목, 먹어대는 국수, 그녀가 어깨 기대는 택시, 그가 가져다주는 우산, 결혼한 남자와 여자, 왕가위는 세밀하게 인물을 탐구하고 미장센을 그린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장숙평의 색감과 크리스토퍼 도일의 카메라가 있다.
3. 1967년 앙코르와트, 캄보디아
화양연화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뜻하는 말이란다. 사랑하기에 좋은 순간. 하나뿐인 순간. 싱가폴로 떠난 남자,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끊어버리는 여자. 사랑하기에 좋은 시간들을 놓쳐버리고 1962년에서 66년까지 4년을 삼켜온 그들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다.
프랑스의 드골이 캄보디아에 도착한 어느날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흔적을 새겨넣는 그 남자, 아이와 함께 옛 추억의 집을 떠나는 그 여자.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해피 투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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