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속으로> 깨버리면 사라지는 공포
글: 윤현호
2003년 0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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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인명피해가 있었던 백화점. 개장준비가 한창입니다. 화재관련 피해자들의 반대만으로도 개장이 어려운데, 더욱 골치 아픈 일이 터지게 됩니다. 원인 모를 살인사건이 백화점 내에서 일어난다는 것. 죽은 자는 있으나 죽인 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미궁사건이죠. 전직 형사였지만 동료를 죽게 한 뒤로 백화점 경호실장이 된 우영민(유지태)은 이 사건에서 묘한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사건현장마다 꼭 거울이 있었다는 사실. 이제, 우영민은 인간의 짓이 아닐지도 모르는 사건을 추적해나가기 시작합니다.
1. 최강 무기, 거울
영화는 매력적인 공포 밑천을 두 가지나 가지고 있습니다. 꺼림칙한 존재로 형상화 시킨 거울의 공포감과 삼풍백화점을 인용한 듯한 영화의 무대 공간. 반대를 무릅쓰고 삼풍 백화점이 다시 개장한다면? 그 비극의 공간에서 원인모를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면? 그리고 거울이 범인이라면? 이런 흥미 가득한 설정들은 계모를 죽이려는 자매보다, 여우에게 된통 당하는 여고생 이야기보다 기대를 갖게 합니다. 공포 영화에서 거울만큼 자주 사용되는 도구도 드물지만 의외로 ‘거울’자체로 승부를 걸었던 영화가 흔하지 않았다는 점도 포함해야 겠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공포효과인 거울은 효과적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거울에게 살해당하는 첫 장면처럼 영화는 거울안의 또 다른 존재를 잘 묘사하고 있어요. 거울을 보고 있지 않으면 분명히 내 뒤통수를 쳐다보고 있을 녀석의 낌새가 느껴지죠. 상상하던 그대로를 재현시켜주고 있는 영화의 인트로는 박차고 튀어나가는 1등 경기자의 탄력 그 자체입니다.
인트로 기능으로서 영화 전체에 탄력을 주면서 시작된 첫 장면은 그러나 두 번째 엘리베이터 살인 장면에 와서 동어반복을 시도합니다. 장소만 다를 뿐 같은 방식으로 공포를 조성하기 때문에 슬슬 이런 우려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혹시, 이 영화, 거울밖에 없는 거 아니야... ?’
2. 깨버리면 사라지는 공포
안타깝게도 <거울속으로>의 볼거리는 단지 ‘거울’ 밖에 없는 영화가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거울 없이도 ‘거울효과’가 나타나도록 고려된 공간들은 숨은그림찾기의 매력은 될지언정 즉각적인 공포를 전달해주지 못합니다.
영화에서 거울은 등 뒤의 나를 째려보는 존재지만 현실에선 곧이곧대로 반영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울을 신기해하던 아이들도 몇 분 지나지 않으면 싫증을 내는 것과 같은 이치죠. 거울의 신기한 기능은 효력이 짧아요.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기엔 말이죠. 거울을 부각시킬 수 있는 다른 장치들이 동반승차 해야 하죠. 영화는 거울이 효력을 다하면 공포를 이어받아줄 후속장치들의 부재가 느껴집니다. 그러니 내내 거울만 가지고 놀아야 해요. 싫증이 나는 건 순식간입니다.
<폰>의 마지막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후반부는 그래서 더욱 아쉽게 하는 부분입니다. ‘거울’이라는 효과적인 소재를 끌어들였던 영화가 결국 기존 공포영화의 한 토막에 의지하는 모습이 참 안타깝습니다.
거울이 위협하자 모든 거울을 깨트리는 장면은 곧 <거울속으로>의 한계를 고백하는 부분입니다. 거울속의 다른 존재를 상상하는 건 충분히 무서운 일입니다. 상상의 단계가 진척될수록 공포의 세계는 무궁무진해지죠. 하지만 벗어나는 길은 간단합니다. 그냥 깨버리면 되죠. 영화 밖 현실속의 거울은 그래서 나약한 공포 도구일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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