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개> 최대한 작게, 소박하게
글: 윤현호
2003년 08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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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칙 하나, 자급자족
서울 상봉의 꿈을 품고있는 정애(엄지원)와 달리 영화는 무대공간인 밀양을 벗어날 생각이 없습니다. 예의 곽경택 감독의 전매특허인 '자급자족' 법칙이 다시 지켜지는 순간이죠. 부산의 구석구석을 명소로 만든 것처럼 영화는 모든 의식주를 밀양에서 해결하려 듭니다.
단 하나 밖에 없는 주인공 철민(정우성)의 사고방식부터가 '자급자족'을 불가피하게 만들죠. 꿈도 희망도 없는 이 청년은 밀양이라는 무인도에 자발적으로 갇혀 있길 원합니다. 성장기를 다루고 있지만 철민은 단 한번도 밀양 밖에서의 삶을 꿈꾼 적이 없어요. 나갈 수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으니 완벽한 밀양 표류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죠.
시내를 질주하는 옹기종기 스쿠터 씬이 등장하고 밀양시 추천 명소에서 에피소드가 펼쳐집니다. 덕분에 영화는 <친구> 경우처럼 밀양이라는 지역 자체가 키워드가 되버리고 말아요. 이젠 밀양 시내 곳곳에 기념식수를 세우는 일만 남은 건가요? 잠깐, 일단 영화가 대박을 터트려야 겠죠. ㅡㅡ
2. 원칙 둘, 작고 소박하게
잔뜩 폼이 들어갔던 <챔피언>이 관객들로부터 미적지근한 반응을 얻었던 데에 대한 반발인가요? '어깨에 힘을 뺐다고' 강조하는 곽경택 감독은 대상을 날렵하고 간편하게 요리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힘만 뺀 게 아니라 자신감과 욕심도 빠져나갔다는 것.
영화는 최대한 작고 소박하게 진행됩니다. 전체적인 윤곽선은 야심없는 청년의 성장기면서 농촌 드라마의 디테일을 따라가죠. <친구>의 활발한 격투 장면을 기대하는 관객에게 <똥개>가 돌려주는 건 지역 청년 봉사단(자칭 MJK파)과 준깡패에 불과한 양아치들과의 소소한 개싸움. 우정을 강하게 확인하는 동수와 상택의 면회장면이 철민과 아버지(김갑수)를 화해시키는 도구로 재활용됩니다. <친구>의 인상적인 장면들이 다시 연주되지만 욕심없고 소박한 장단이라 관객들의 귀를 잡아 두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영화는 '농촌 드라마' 수준의 야심에 만족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손에 쥔 리모컨은 세트 티가 팍팍 나는 농촌 가옥이 나오자마자 잽싸게 채널을 돌려 버립니다. 밋밋하다 못해 황량한 이야기는 수 십 개의 채널을 두고 가볍게 갈등하고 간편하게 결정해버리는 관객의 잽핑에서 살아 남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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