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홍련> 잘 지은 집인데 정이 가지 않는 집
글: 이종열
2003년 0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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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가 끝난 후 많이 아쉬웠다. 김지운 감독은 너무 많이 본 사나이였다. 그가 다른 작품을 얼마나 참고했는지, 아니면 멀리하려 애썼는지는 몰라도 <장화, 홍련>엔 하필 내가 매우 좋게 봤던 작품들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디 아더스>와 <오디션>(미이케 다카시) 그리고 <링>까지. 영화는 이 모두의 영향력 아래에서 바로 일어서지 못한다. 김지운 감독의 개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말씀.
집 건축으로 얘기하자면 있을 거 다 있는 너무나 잘 지은 집인데 어딘가 정이 가지 않는 집. <장화, 홍련>에는 자기만의 독특한 공포색깔 혹은 기운이 없다. 심하게 말해 모델하우스에 들어와 있는 기분.
김지운 감독은 건조한 하우스공포물을 만들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 의도는 충분히 읽힌다. 절제된 영상, 정돈된 세트와 음악 등은 어찌나 결벽적인지 눈과 귀를 홀린다. 그러나 그 집안의 캐릭터들과 사연은 낯익다.
새엄마 역을 맡은 염정아의 이번 연기는 50점이다. 그녀는 기본 성량부터 갈라져 있다. 관객을 제압해 끌고 가야 하지만 역부족이다. 선이 강한 외모 덕으로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데도 역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니 두렵지 않은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디 아더스>의 니콜키드만과 비교하게 되기 때문에 더더욱 이렇게 밖에 말하지 못한다.
반면 임수정(수미)과 문근영(수연)의 연기는 계산되어 있지 않은 자유로운 리듬 속에서 펼쳐져 그녀들의 심리를 읽게 만든다. 특히 문근영의 타고남 혹은 욕심 없음의 연기는 십대소녀의 예민한 심리를 함께 잡아내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를 기대 이상으로 만족시켜준다.
그럼에도 아쉽다. 김지운 감독은 <메모리즈>에서 이미 자신의 에너지를 다 소모한 듯하다. <메모리즈>에서 자신의 죽음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한 여자의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한은 무섭고도 매우 슬펐다. 그리고 사회적인 기운도 함께 담았었다. 하지만 <장화, 홍련>은 품격 있는 하우스공포를 만들고 싶었던 감독의 소원 성취만 이뤄냈다. 그것은 그렇지만 한국에선 처음이지만 세계영화적으로는 관습화된 공포물에 지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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