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품행제로> 나의 80년대


글: 이종열
2003년 01월 07일

#1. 패싸움

나는 1980년대에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국민학교 시절 땐 종종 패싸움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대화국민학교(내가 다니던)대 앞 송포국민학교와의 패싸움이 예고돼 있었다. 반 전체(그래야 두 반)가 뒷산에 모여 적의 동태를 살폈고 모두 겁은 먹고 있었겠지만 각오가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모를 긴장된 시간 속에 넓게 펼쳐진 논밭을 주시하는 눈들은 생각해보면 <무사>에서 마지막 전투를 기다리던 무사들의 눈과 같았다.

그러나 나는 중도에 그 무리를 빠져 나왔다. 싸우다 죽을지도 모를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좀 비겁했다. 학교 등교길로 새나가는데 저쪽에서 다가오는 10여명의 애들이 보였다. 기습이었다. 녀석들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뒤쪽에서 공격해온 것이다.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그냥 지나치려는데 한 녀석이 내게 물었다. "너 대화국민학교 애지?" 난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녀석들은 그냥 지나쳤다. 이후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영화 <품행제로>의 과장된 첫 싸움장면을 보면서 당시의 기억이 났다. 그래서 피식 웃었고 감회가 새로웠다. 나도 중필(류승범)처럼 힘이 셌다면 아니면 무모함이 있었더라면 좀 더 멋진 추억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아쉽다. 류승범이 마지막에 보여주는 막싸움질은 정말 솔직하게 표현된 것 같다. 칼을 꽂는 것만 빼고는 우리의 80년대는 정말 그렇게 싸웠다. 악으로 깡으로. 그리고 무모함으로. 그 솔직한 재현에 눈물이 났다.

#2. 연애

중학생이 되고 내게도 사랑의 감정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당시 교회에 다니며 마음을 둔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애와 편지를 수줍게 주고받곤 했었다. 저녁 예배가 끝나고 그 애가 사는 동네까지 바라다 주기 위해 다리가 겨우 닿는 사이클(포장도로가 별로 없는 동네에 우리집엔 어쩐지 사이클 자전거가 있었다. 나는 그 사이클을 타고 논밭길을 달리곤 했다.)을 질질 끌고가면서 말더듬으며 대화를 나누며 걸었었다. 아, 그때의 유난히 까맸던 밤과 총총 뜬 별, 길가에서 나는 여름의 소리들은 결코 잊히지가 않는다. 그 애와는 어쩌다 우연히 읍내(일산)의 한 사설 독서실을 같이 다니게 되었는데 서로의 신발장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곤 했다. 풋사랑이었고 그 애는 지금 결혼했다.

<품행제로>에서 중필과 민희(임은경)의 사랑을 보며 그 당시의 일이 생각났다. 중필처럼 기타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지도 롤로스케이트를 타러 다니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김승진의 스잔과 박혜성의 경아는 간밤 라디오에서 들을 때면 가슴이 이유 없이 아파지고 한숨나고 그랬다. 영화에서 중필과 민희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은 건 개인적으론 참으로 아쉽다. 하긴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 법이라는데.

#3. 세운상가

딴 친구들이 롤러스케이트장을 다녔다면 나는 종로 세운상가엘 주로 갔다. 거기에 가서 민희처럼 레코드판을 사기도 하고(지금 가지고 있는 신해철 1집은 그때 싼값에 장만한 것이다.), B품 카세트테잎도 사고 여러 만물세계를 구경했다. 내가 아는 녀석들은 돈을 모아 포르노테잎을 사러 갔는데 틀어보니 유치한 만화영화가 나왔다고 했다.

#4. 신발

민희는 나이키를 신고 다닌다. 하지만 우리 동네선 이 운동화는 엄두도 못 냈고 프로스펙스만 신고 다녀도 폼 좀 낼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까발로나 슈퍼카미트 등을 신었는데 생각해보니 이 마저도 짜가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엔 새 신발을 갖기 위해 일부러흠집을 내기도 했었는데 그러나 새 신발은 언제나 학급의 나쁜 녀석들의 표적이 되어 종종 도둑맞곤 했다. 특히 새 실내화는 거의 없어져버린다. 나는 지금도 가끔 맨발로 학교 복도를 걷거나 더러운 화장실에 들어가는 꿈을 꾸곤 한다.

#5. 짱의 손길

중학교 때 나는 매일 싸움질로 피를 봐야하는 교실에서 별로 맞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2년 꿇은 창규라는 형이 나를 특별 보호했기 때문이다. 날 예뻐해준 이유는 잘 모르겠다. 민희 같은 여자를 내가 알고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아무튼 그 형으로 인해, 코피가 나거나 살이 찢어지는 일은 없었고 몇 년 후 무사히 남녀공학 고교로 피신할 수 있었다. 창규 형이 보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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