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엠 샘> 틀린 건 샘이 아니라 우리였어
글: 윤현호
2002년 11월 07일
1.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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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까요? 나와 같지 않은 존재를 인정하지 않게 되면 결국은 나와 '틀린'사람으로 규정해 버립니다. '다양성'이 허용되지 못하고 반드시 따라야하는 하나의 법칙과 길이 정해집니다. 미리 선이 그어지고 선 밖으로 나간 사람은 모두 잘못되고 틀린 사람이 되버리고 말죠. 사람들이 샘을 '아버지'로 인정할 수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색다른 아버지가 될 수 있음에도 그는 언제까지나 '틀린' 아버지일 뿐입니다.
하지만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할 때 그것은 곧 상대방의 개성을 존중하고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왜 사람들의 가치관에는 '자기 자신'만 서 있는 걸까요? 다른 사람의 기준엔 자신 역시 '틀리게'보일 수 도 있는 가능성을 보지 못합니다. 던졌던 부메랑이 지금 저 뒤에서 당신의 뒤통수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아이 엠 샘>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샘을 위해 딸인 루시(다코타 패닝)가 동화책을 읽는 장면이었는데 루시는 책에 쓰여진 '다르다( difference)'란 단어를 읽으려 하질 않습니다. 친구들의 아버지와 자신의 아버지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세상을 지배하는 가치관은 고작 7살밖에 안된 어린 루시에게 마저 아버지를 '틀린'사람으로 인식시켜버리고 맙니다. 샘의 지극한 부정(父情)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하지만 정작 '다른'사람인 샘은 세상의 가치관을 거부합니다. 샘은 자신과 세상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단순히 힘이 없는 사람이 힘이 있는 집단에게 굴복했다는 의미가 아니예요. 그것이 올바른 길이 때문이죠. 샘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딸이 영리한 아이로 인정받으며 '다르다'라는 단어도 가볍게 읽어낼 수 있는 것이었죠. 왜 언제나 진실에 다가간 사람은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이어야 할까요?
2. '사랑'의 가치없음 이여
<아이 엠 샘>은 7살의 지능을 가진 '샘'을 통해서 '사랑'이란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루시의 성장을 위해 샘이 가지고 있는 건 고작해야(?) 딸을 향한 아낌없는 '사랑'뿐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사랑'이라는 고결한 보석의 가치를 1 달러짜리 지폐보다 쓸모 없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물질 만능사회에서 그까짓 '사랑'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샘에게서 루시를 떼어놓으려는 변호사의 말을 들어보세요. 루시가 사춘기가 되었을 때, 방황할지도 모르는 딸을 위해 샘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고? 그때까지도 샘은 빈곤한 생활일게 뻔하고 물질적으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며 공격합니다. 그러자 오히려 샘이 변호사를 향해 질문의 화살을 되돌립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이 가지고있는 돈과 지식으로 딸의 고통을 극복해 줄 수 있느냐고? 영화는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이 대사를 통해서 정작 하고싶은 속내를 드러냅니다. '그래. 사랑이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고 치자. 그러면 물질이 세상을 구해 낼 수 있을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샘보다 많이 안다고 인정되는 변호사들, 스크린을 통해 샘과 루시의 법정을 지켜보는 더 영리한 관객들, 이들 모두 정말 샘보다 많이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샘보다 용기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3. 우리가 틀렸다
샘의 변호를 맡은 리타(미셸 파이퍼)는 샘보다 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습니다. 알량한 자존심을 위해 샘의 변호를 맡게 되었으며 단지 '재판의 승리'가 중요할 뿐 정작 딸을 되찾으려는 '샘의 승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궐 같은 집을 통해 상징되는 그녀의 풍족한 물질과 '변호사'라는 사회적 계급은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최소한 샘보단 말이죠.
하지만, 정작 리타의 삶을 구원하는 건 가진 것 없는 샘입니다. 아들은 어머니와 멀어지려 하고 남편은 외도하고 있는 정서적 공황상태의 그녀에게 '사랑'이라는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쉬운 말이지만 쉽게 할 수 없는 말이죠. 잃었던 사랑을 되찾으라는 말....
샘 덕분에 소원했던 아들과 다시 가까워진 리타를 보면서 샘은 우리들과 단지 '달랐던' 것만이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틀렸습니다. 그래요. 샘이 아니라 우리들이 틀렸습니다. 우리들이 '사랑'의 진정한 가치에 관해 인식하고 있는 건 리타처럼 그저 껍데기일 뿐입니다.
아들을 위해 축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큰집에 살며,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세 시간씩이나 퀵보드를 사러 돌아다니는 게 사랑이라고 믿었던 어머니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사랑'의 실체를 알지 잡지 못하고 그저 떠도는 환영만을 잡고 있을 뿐입니다. 정작 아들이 어머니에게 바라는 건, '사랑해.'라는 따뜻한 관심과 감정이었지, 물질이 아니었으니까요. 리타는 그걸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합니다. 샘이라는 우리와 '틀린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죠.
<아이 엠 샘>은 참 오랜만에 마음속에서 큰소리로 울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사람을 바꾸어 놓지 못한다고 그랬나요? 그래요. 영화는 절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다만 영화를 통해서 삶의 한 단면을 배우게 되고 정작 변화의 힘을 내야 하는 건 우리들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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