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곤 못살아> 40대 열혈가장의 내집 지키기
글: 노정규
2002년 10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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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인 게임전문회사에서 유능한 인재로 인정받고 있는 최강조, 그는 스포츠카와 집, 명성과 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야망의 젊은 남자. 그러나 밤에는 남의 집을 터는 도둑질이 그의 취미이자 또 다른 직업. 30대 후반의 직장인으로써 집에서는 부인과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있는 고상태, 하지만 부인과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로 남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는 이 시대의 가장! 이 상반된 위치의 두 남자가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주요인물이다. 대략 이 대립적인 인물들의 배역설정만 봐도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일지는 짐작이 간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화제가 됐던 실화를 바탕으로 사무라이픽션를 집필했던 사이토 히로시에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극중 고상태로 출연하고 있는 배우 박상면은 '조폭마누라'에 이어 소심한 가장 역을 또 한번 잘 소화해 내고 있다. 최강조로 분장한 소지섭은 TV에서 보여준 연기이외에 그런 대로 첨단 엘리트도둑의 연기를 대역 없이 과감하게 선사한다. 고상태 부인 역으로 나오는 송선미는 전작 '두사부일체'에 이어 미맹 주부로써의 고감도 코믹연기를 보여준다. 거기에 영화초반에 '두사부일체'의 윤제균 감독이 특이한 가르마로 고상태의 직장동료로 출연하는 감초연기도 코믹요소로는 충분하다. 이렇게 배우 하나 하나를 따져서 보면 나름대로 재미있는 영화라고 느껴진다. 그러나 전작에서 느껴진 코믹연기를 배우들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대로 보여준다. 한마디로 변화가 없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영화의 포맷을 살펴보면 문제점이 발견된다.
영화는 당초 엘리트 도둑에 초점을 맞추고자 홍보했다. 하지만 시종일관 30대 후반 가장의 도둑퇴치와 위신 지키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신도시 개발에 실패하고 동떨어진 외곽지대에 홀로 집을 세워 고급화된 내부인테리어로 치장하고, 자동차는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협소한 경차를 등장시켜 배우 박상면의 위태로운 가장의 모습을 부각하려고 했다. 부인은 미맹인데도 불구하고 거침없고 쉴새 없이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자기만족에 근거한 그 요리와 도둑을 연관시키려는 의도는 있겠으나 잠시 도둑이 자기의 음식을 인정해준다는 이유로 도둑에게 관심을 갖는 부인이 스토리라인에 있어서 설득력 있는 요소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도둑의 퇴치를 위해 박상면이 도장에 가서 사범에게 운동을 배우는 장면에서도 억지웃음은 여지없이 나타난다. 도둑이 남자라는 점을 감안하여 급소만을 공격하는 정도에 맞지 않는 무술시범을 우격다짐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운동을 배우고 난 뒤 자신감에 찬 고상태가 부인과 밤일을 성공적으로 치르게 되자 부인이 예전과는 다르게 아침에 아버지를 무시하는 아이들에게 갑자기 버릇을 고치는 장면에서는 불쾌감마저 감돈다. 그러나 그 불쾌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또 한번의 허탈함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박상면과 소지섭의 예고된 한판승부! 박상면은 집을 완전히 베트남전의 요새기지로 만들어 놓고, 소지섭과 일대 혈투를 벌인다. 물론 여기에는 박상면의 아들이 만들어준 바주카포가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바주카포가 언뜻 1987년도 작 '별똥왕자'에서나 봄직한 아동영화에 쓰이는 소품이라는 점이다. 바주카포에서 날라 가는 야구공이나 머리에 쓴 안전모하며 분장에 있어서도 실망감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거기에 소지섭과 박상면이 공동으로 안전시스템사업을 한다는 결말구조는 연관성과 긴밀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픽션이고, 굳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재미있으면 된다라고 말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굳이 이렇게 분석하면서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련의 한국영화들을 살펴보면 이대로 무방비 상태로 방치 해 둘 순 없다. 지적이 필요하고 쉼표가 필요하며 생각이 필요하다. 앞으로 개봉될 영화들, 제작할 영화, 기획할 영화들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좋은 영화들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빨리 간판을 내린다거나 홍보와 기획의 승리로 단지 영화가 명백을 이어간다면 그것은 우리들만의 축제일뿐이다. 단지 시류에 편승하여 코믹이라는 허울좋은 마취제로 관객과 한국영화를 최면상태로 빠지게 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외 내부적으로 모든 것이 완벽하고 풍부한 젊은 프로그래머가 밤에 취미로 도둑질을 하러 간다는 실제 이야기를 생각하고 극장을 들어갔다가 30대 후반의 위기의 남자가 가정을 살리고 자기의 자존심을 지킨다는 정 반대의 주제를 가지고 영화관을 나선다면 그것은 다른 영향력을 줄 것이다. 차라리 '도둑맞곤 못살아' 라는 제목보다는 '아빠 없이 못살아' 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더라면 조금은 더 이해가 가는 영화가 됐을지도 모른다. 즉 스토리는 주제에 가장 충실해야 한다. 김의석 감독이 연출하고 박중훈 주연의 1992년도 작품인 '총잡이'라는 영화가 있다. 힘도 없고, 맥이 빠진 한 직장인 남자가 우연하게 총을 손에 쥐게 되면서 일시적으로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는 해프닝을 그린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메시지가 바로 <도둑맞곤 못살아> 에서도 전달된다.
영화를 제작하는 일은 힘들다. 더욱이 우리 나라와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른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려고 하는 취지는 높이 살만하다. MBC라는 방송국의 자본이 투입되고 스타크래프트의 일인자인 임요환이 출연하고, 미국 UCLA대학원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16년 동안 꾸준히 실력을 쌓은 임경수 감독의 첫 장편영화라는 점에서 우리는 아낌없는 응원을 해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자칫 예초에 기획하려는 영화에 본질과는 다르게 흐름이 비뚤어진다면 생각해 볼일이다. 프랑스의 카날플러스, 영국의 BBC, 일본 후지TV와 같이 이번에 MBC방송국이 자본을 투자했다는 점에서 막대한 자본에 걸맞게 영화 또한 심사숙고하게 제작 되야 한다. 긴 세월동안 연출에 몸담은 감독 자신에게도 지금은 중요한 시점이다.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기획자, 연출자, 제작자, 배우, 스텝, 그리고 국민 모두가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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